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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강원 산불을 보며 세월호를 떠올리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함께 싸운 '세월호 5년',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세월호 참사 5주기, '벌써' 5년이다. '벌써'라니, 그 말은 누군가에 얼마나 사무치는 말인가. 시간의 속도에 대한 감각은 제각각이니, '벌써 5년'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오늘 같은 시간일 수도 있겠다. 시간을 붙들어 놓을 재간이 없으니,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

어떤 시간

광화문 광장에 공사가 한창이다. 광장 남단에 설치되었던 세월호 천막들이 철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설치된 이후 4년 8개월 만의 일이다. 단원고 기억 교실, 동거차도 인양 감시 초소, 팽목항 분향소에 이어 안산 분향소까지 세월호 참사로 상징되었던 공간들이 차례로 철거되고 있다. 어디 한 군데 의미 없는 장소가 없다. 최근 출간된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서 세월호 가족들은 저 공간들을 모든 걸 다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을 때 찾는 도피처이자, 다시금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오게 하는 곳이라 말했다. 외롭다 느낄 때 다른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얻고, 잃어버린 가족과의 추억을 더듬고,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웃고 울 수 있는 장소인 공간들이 철거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진상규명은 더디고 책임질 사람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참사가 만들어낸 흔적은 거의 다 사라져 가는 현실 앞에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라지는 참사의 흔적은 가족들의 가슴에 아주 커다란 구멍 하나를 남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참사의 흔적이 아닌 기억과 투쟁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기약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 믿고 있을 수만은 없는 사람들에게 지난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모이고 말하는 피해자

참사 초기 가족들은 정부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피해 가족들은 '정치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인 것'은 불온하다 여기는 사회는 피해자들에게 '순수하게' 슬퍼할 것을 강요했다. 그 누구보다 절박하고 참사의 진실을 알고 싶었기에 정부가 하는 말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도 한 줄기 눈물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전파했으니 믿고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국가는 진상규명 요구에 요지부동이었다. 국가는 진상규명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진실을 방해하는 거대한 힘이 되기를 선택했다.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 주체인 국가와 진상규명을 두고 싸우는 상황은 어색하지만 어딘지 익숙한 풍경이다. 국민과 국가 권력과의 싸움이니 이보다 더 정치적일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 국가에서 재난 참사 피해자는 필연적으로 스스로 '정치적인 존재' 임을 깨닫게 된다.

정부 부처들은 책임을 덜어내기 위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내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부가 입을 다물수록 가족들은 더 자주 모여 질문하고 의혹을 제기했다.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이 너무 화가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가족부터 먹고사는 게 바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관심한 채, 정치와 거리두기를 하고 살았다 고백하는 피해자들이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모였다. 그런 이들이 광장 한 복판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삭발을 하고 대중 집회에서 마이크를 들었고, 청와대를 향해 가두 행진을 하며 물대포를 맞았다. 진실, 정의, 재발방지, 회복, 기억과 같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가치들을 피해자의 권리로 주장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피해자들의 요구는 그 요구가 크던 작든 간에 지나치다는 논쟁을 일으켰고, 피해자 스스로도 자신의 요구를 검열해야 하는 상황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되었다. 지난 5년은 그야말로 세월호 가족들이 진실규명의 주체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감정적이어서 참사의 문제 해결 과정에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진상을 가장 원하는 진실 추구 집단으로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그래서 사건의 실체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현재는 바로 그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변화의 시간, 세월호 이후 5년

재난 참사의 피해는 부정의한 국가 권력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탁된 결과물이다.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대한 공적 인정과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국가의 모습을 통해 피해 당사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는 불가능해 보이는 신뢰와 회복을 겨우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 위에 기억을 만들 수 있다. 참사가 사회에 남기는 징표를 그 누구보다 잘 발견하고 무엇을 바꾸어내야 할지 잘 아는 주체가 바로 피해자라는 사실을 지난 5년의 시간이 말해준다. 실제로 많은 것을 이루었다. 1기 특별조사위원회를 거쳐 선체조사위, 그리고 지금의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 이르기까지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고성 산불 사태를 지켜보며 내 안의 변화를 보게 된다. 매스컴을 통해 드러나는 피해자들의 거처와 지원 상태를 자꾸 확인하게 된다. 피해 사실을 불필요하고 자극적으로, 폐허 속 망연자실한 모습으로만 피해자를 그리지는 않는지, 국민 성금이 많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에 행여 피해자들을 보상금을 노리는 사람으로 묘사하지는 않는지 살피게 된다. 세월호 참사 투쟁이 그저 피해자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재난 참사 피해자가 살아온 세상과 연결된 내가 함께 했던 싸움이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한 개인의 변화라기보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함께 겪고 있는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인권운동사랑방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 <재난참사 피해자의권리>를 발간했다. '재난참사로 인해 존엄을 훼손당한 피해자가 권리에 대한 인식을 통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 이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 몫을 나누어 가지며 함께 행동하고 싸워왔던 지난 5년을 다시금 기억하며 우리의 변화에 주목하자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5년이 흐른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말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고. 진실을 찾는 말들을 잘 주워 담아 세상을 함께 바꾸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