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입법예고와 차별금지 7개 조항 삭제 이후 시작된 차별금지법 운동이 10년 지났습니다. 10년간의 시기 동안 차별금지법 운동은 반차별운동만이 아닌 운동사회의 폭넓은 지지와 연대, 함께 공감하고 싸워나가는 사람들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확산되었습니다. 또한 이시기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집단의 확장, 차별과 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확산되어 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차별급지법제정연대는 2017년 첫 번째 '기지개' 워크숍을 통해 10년간의 시기를 돌아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위기와 기회를 논의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게 주어진 위기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집단은 '반동성애'를 기반으로 한 보수 개신교 집단이 중심입니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친미/반공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시기에 위기를 맞이합니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정부에서 친미/반공 이데올로기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연이어 터진 교회와 목사의 비리 사건, 대형교회 세습 문제는 보수개신교의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이 시기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에 전면적으로 나서며 단일 교회만이 아닌 교계 전체의 연합을 추진했습니다. 목사들이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며 삭발 투쟁을 하고 의원 낙선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논란을 바탕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본격화합니다. 자신들의 위기극복 방안으로 성소수자라는 집단을 공격하며 힘을 모았습니다. 성소수자는 사회적 편견에 노출된 집단이었고 당시 사회에 아직 드러나지 못한, 고립된 존재였기에 공격 대상으로 삼기 쉬웠습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성소수자의 존재를 사회가 인정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성소수자를 비난할 수 없고, 성소수자에 의해 '교회파괴-가정해체-사회분열-국가전복'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차별금지법을 공격했습니다. 실제로 성소수자를 종북 패러다임과 연결해 '종북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했습니다. 서울인권헌장을 비롯한 전국의 인권조례 제정을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목사를 중심으로 한 위계 속에서 보수 개신교 집단은 정치권에도 그 영향을 끼쳤습니다. 2013년 60여 명에 달하는 의원이 발의했던 차별금지법은 단 한 달 만에 반퀴어 운동의 압박에 굴한 의원들이 자진 철회했고 이후 국회와 정부는 차별금지법 발의조차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악법이라 불리는 군형법 92조 6 폐지안 발의조차 보수 개신교의 눈치에 발의하려는 의원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보수 개신교계가 한 축의 위기라면, 또 한 축의 위기는 혐오의 일상화, 그리고 혐오세력의 집단화입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성장한 일간베스트는 여성, 전라도, 성소수자, 이주민에 대한 혐오표현을 온라인을 통해 확산시켰습니다. 이들의 집단성이 처음으로 목격된 곳은 세월호 농성장이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에 대해 혐오표현을 일삼던 일간베스트는 급기야 농성장에서 폭식을 진행했습니다. 서로 '존중'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은 상처 받고, 사회는 경악했습니다.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범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범죄를 추모하며 등장한 페미니스트들에게 향한 공격과 혐오는 개별적 발화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집단을 형성하였고 여성을 혐오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자락들이 엉기성기 얽힌 채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집단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보수개신교의 정치세력화와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집단의 등장은 이들의 위험성을 발견한 진보운동과 반차별 운동의 연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진보운동과 반차별 운동의 연대 강화는 이들이 공격하는 것이 '인간 존엄성'이라는 직관적 판단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2013년 이후 진보진영은 반차별 운동의 목표가 체제 내에서의 평등이나 소수자의 시민권 획득이 아닌 '인간 존엄성'에 대한 투쟁이라는 공동의 감각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반차별운동에 대한 지지를 넘어 이것이 자신들의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의 프라이드 축제를 넘어 진보운동의 연대의 장이 되었고 강남역 여성혐오 범죄는 여성운동의 문제를 넘어 진보운동의 문제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감각은 운동사회뿐 아니라 사회 안에서도 점차 퍼져 가고 있습니다. 나의 '노오력'을 가로막는 것이 소수자가 아니며 차별은 '누군가'의 경험만이 아닌 '나'의 경험, 혹은 내 존재를 공격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확산되어 갑니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폭력에 노란리본을 가방에 맨 사람들이 늘어났고 여성혐오 범죄는 더 많은 페미니스트 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군대 내 동성애자에 처벌에 "나는 오늘 범죄자가 되었다."는 피켓시위 또한 이어졌습니다. 차별금지법 운동이 손을 내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기꺼이 그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첫 번째 PD수첩에서는 군형법 92조 6으로 처벌받은 동성애자 군인과 차별금지법에 대해 방송하였습니다. MBC 파업 이후 부당전보 징계를 받고 3년 만에 복귀한 이영백PD는 "대선 당시 여러 후보의 공약을 열심히 봤다. 대부분 서민·비정규직·학생·노인·여성 등 많은 분야의 계층을 잘살게 하겠다는 공약이었다."며 "하지만 딱 한군데가 빠졌다. 성소수자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나 또한 소외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하며 이 방송을 본 많은 성소수자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영백PD의 방송은 어찌 보면 차별금지법운동이 가지고 있는 기회를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숨죽여왔던 소외당하고 존중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국가와 사회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다시 소외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을 다시 전하며 개별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 기회, 그렇게 손잡을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습니다.
2017년, 다시 투쟁!!
첫 번째 워크숍에서는 우리의 위기와 기회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위기와 기회를 고민했으니 이제 이곳에서 우리의 싸움의 계획을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상반기 몇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계획준비를 이어가려 합니다. 단지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 입법을 할 수 있는 방안, 차별금지법에 필요한 더욱 풍성한 내용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하여 하반기 본격적 입법투쟁을 이어가려 합니다. 10년간의 긴 싸움, 이제 끝낼 시간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의 존엄과 평등을 지키기 위한 투쟁입니다. 함께 싸움을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