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내년도 법정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립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는 허가된 사람 외에는 배석조차 불가능하고,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 이후 공개된 회의록을 통해 오간 이야기를 추측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알려진 최저임금위원회의 모습은 해당 년도와 금액만 바꾸면 작년 뉴스를 그대로 가져다 써도 좋을 만큼 비슷합니다.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이 인상액을 놓고 줄다리기를 합니다. 노동부 장관이 요청한 결정시한을 넘기고도 쉽게 합의가 되지 않으면, 공익위원들이 나서서 협상촉진구간을 설정합니다. 내년 최저임금을 대략 이 구간 안에서 결정하자는 거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메모에서 드러났듯이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최저임금가이드라인은 실제로 정부의 안입니다. 노사공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구색을 맞춰놓고 정부가 뒤에 숨어서 결정하는 식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법정최저임금은 결정돼 왔습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올해 최저임금 논의
올해 최저임금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관심이 컸습니다. 5월 대선에서 후보들 대부분이 시기는 다를지라도 최저임금 시급 1만원 공약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노동부는 2020년까지 시급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업무보고를 했습니다. 세상에나 정부가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대폭 인상을 발표하다니요. 금액도 중요하지만, 그 동안 노사 양측의 자율교섭을 강조하면서 정작 정부는 뒤로 빠져 있었던 그 동안의 행태와는 좀 다른 행보였습니다.
임금을 정부가 지급하는 건 아니지만,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최저임금은 그냥 당사자들이 알아서 협상하는 시장임금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아야 하는 사회적 기준을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문제가 아니라, 공익위원 뒤에 숨어서 어떤 책임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받아야 하는 임금수준은 얼마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모아나가야 합니다. 마치 선거를 치르듯이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은 바로 이 곳 노동자의 삶, 존엄의 구체적인 모습을 최저임금액을 통해서 그려보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꾸린 ‘최저임금 만원 공동행동’(약칭 만원행동)에 인권운동사랑방도 지난 4월부터 함께 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우리의 권리를 위임하지 말고, 2018년 최저임금액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임금, 존엄, 존중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되면서 결정하자며, 시급 1만원을 정부와 한국사회에 던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촛불의 염원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것처럼,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 자체도 사회적 투쟁이자 토론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만원행동이 그 불쏘시개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만원행동이 박근혜 퇴진행동처럼 가장 유명한 단체가 되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여전한 최저임금위원회
그래서일까요? 기대와 달리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보이는 모습은 정말 예년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용자위원들은 155원 인상안을 내놓고, 공익위원들과 정부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노사 양측의 합의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7월 15일까지 전원회의가 잡혀있다고 하니 그날 늦게 결정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날이 지나면 내년 최저임금 고시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대체 정부는 최저임금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한 도구? 노동자와 사용자 위원이 무조건 합의해야 하는 것? 뭐든 좋으니 선거 때처럼 국민들 앞에 호기롭게 나서서 제안하고 토론했으면 합니다. 대선 토론처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를 생중계 하든지, 다른 형식으로라도 사회적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으로 TV토론 잡으면 시청률 대박나지 않을까요?
어떻게든 올해도 최저임금은 결정되겠지만, 제발 내년에는 다른 과정을 거치며 결정되었으면 합니다. 최저임금은 단지 액수나 인상률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내년에는 꼭 만들어갔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