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환자가 생겼습니다. 같이 사는 친구가 집 앞에서 잘못 넘어져 발등뼈가 부러졌습니다. 핀을 박고 끊어진 인대도 잇는 수술을 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저희 가족 중에도 깁스를 해 본 사람이 없어서 몰랐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더군요. 여름이 아닌 것에 감사하면서 깁스를 해야 하는 6주를 잘 보내자고 서로 격려했습니다.
초짜 간병인의 어려움일까요? 당장 필요한 물품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목발은 병원에서 주는 건 줄 알았는데, 판매점에서 구매하라고 하더군요. 왠지 아까운 마음에 대여해주는 곳이 없나 알아보니 보건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목발과 휠체어 대여서비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작구, 종로구를 다니면서 휠체어와 목발을 대여하고, 씻을 때 필요한 의자도 사고 이것저것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약을 먹어야 하니 알람에 깨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밥을 앉히는 일입니다.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가구배치도 바꿔봅니다. 그래도 부지런히 이것저것 갖춰놓으니 대충 6주는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급한대로 마트에 가서 잔뜩 장을 봐왔는데, 재료가 떨어져가는 지금 다음주 식단을 고민하게 되네요. 이런 게 도시락 반찬을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일까요?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름 고민을 한 건데도 제가 봐도 거기서 거기네요. 된장국, 김치찌개, 북어국, 다시 된장국... 아, 미역국을 하면 되겠네요. ㅠㅠ 저는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불편한 몸에 하루종일 집 안에 혼자 있어야 하는 환자에겐 이 시간이 녹록지 않은 시간인 게 분명합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면 유독 반가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합니다.
아, 이런 게 돌봄의 무게일까요? 달라진 생활조건과 거기에 적응하려는 노력, 환자와 간병인이라는 낯선 관계. 사실 이 상황이 저에게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게다가 6주라는 일시적인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저에겐 낯선 이 경험들이 흔히 말하는 돌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한 시도 곁에서 떨어져 있기 어려운 육아는? 수년이 되기도 하는 장기 간병은? 상상조차 잘 안됩니다. 육아나 간병을 하게 된다면 제 생활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으로선 부담이나 무게감이 더 다가오지만, 개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경험이 단지 부담만은 아니겠지요. 여튼 육아와 간병과 같은 돌봄노동을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어린이집이나 노인요양시설을 지원하는 것이겠죠.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받았던 반공교육에선 북한은 탁아소에 아이들을 빼앗기고 노인들은 양로원 같은 데서 죽는다고 비난 했었는데, 돌봄노동의 사회화였네요!
예기치 않은 간병 경험덕분에 상임편지를 빌어, 저를 먹이고 재우고 입혀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정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왠지 육아 중인 후원인들도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계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