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힘으로 국민을 굴복시키려는 자 누구인가?
-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반인권적 발언들에 대해
1. 지난 19일 노 대통령은 5·18 항쟁 묘역에서 있었던 한총련의 시위와 관련, 참가자를 '난동자'로 지칭, 이들에 대한 엄격한 법 적용을 지시했다. 다음날인 20일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과 관련된 전교조의 시정 요구에 대해 "국가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부의 굴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며 전교조의 연가투쟁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같은 날, 국가기간 산업 종사자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갈 경우 '업무복귀 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안이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에 관한 대책 논의 과정에서 검토되기도 했다.
2. 우리는 이처럼 최근 노무현 정부가 쏟아놓는 일련의 발언 및 조처들을 보며 큰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대통령 선거 과정서부터 권위에 의존하는 정치로부터 탈피할 것을 표방했던 이 정부가 실상은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3. 5·18 항쟁의 정신의 고갱이는 권력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이번 한총련의 시위는 노 대통령이 방미 과정에서 군사적 수단의 배제와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대원칙을 위협하는 '듣기 좋은 소리'로 미국의 비위 맞춰 주기에 급급했던 점을 비판한 것으로 5·18 항쟁 정신을 계승하는 박수 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난동'이라거나 "자기 주장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을 모욕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한총련이 폭력적 수단의 사용으로 타인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은 이상, 엄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에 다름 아니다.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서, 선처나 관용을 받을 일도 아니다.
나아가 이 문제와 한총련 합법화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 또한 부당한 일이다.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이 보장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껏 한총련을 이적단체의 올가미에 가둬 온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성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는 것인바, 권력의 의지에 따라 상황 봐서 해주거나 말거나 할 것이 아닌 까닭이다.
4. 교육부가 강행하려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애초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들의 동의 없이 교육부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추진돼 왔다. 그리고 개인 정보의 집중에 따른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높아 국가인권위원회조차도 개인 정보 항목의 삭제를 시정 권고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결정을 내리면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하고서, 막상 권고가 내려지자 이를 무시한 것 역시 교육부였다.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국가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어긴 것은 교육부였다. "독선적이고 독단적"이라는 노 대통령의 전교조에 대한 비난은 사실 교육부가 들어야 할 비난이다. 또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갖고 있는 인권적 문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을 '정부의 굴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온당치 못한 처사'라 받아들이는 것 역시 상황을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노 대통령은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편에 서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5. 이른바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 중재 조항 등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지나치게 제한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기간 산업 종사자들의 파업을 강제 중단시키고 '업무복귀 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특별법 제정까지 검토하는 것은 분명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또한 파업 시 민간인력과 자원까지 징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전시 체제 하 군인이나 공무원에게나 적용될 수 있을 법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파업권을 침해하고 실질적으로 강제노동 명령권에 다름 아닌 '업무복귀 명령권' 등을 포함하는 특별법 추진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6. 최근 일련의 과정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 정부의 문제점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시정 요구에 대해 오만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권위주의적 성향까지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의 일련의 발언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거스르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힘'으로 정당한 요구와 권리를 짓밟는 것은 바로 노 대통령 본인일 수 있으며, 대통령이 최근에 쏟아내는 말이 결국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킬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책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국민들의 비판적 의견에 문을 열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민주 정부의 책임일 것이다.
<우리의 요구>
- 5월 18일 시위와 관련한 한총련 지도부에 대한 사법 처리 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을 철회하라.
-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대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내 개인정보 항목을 삭제해야 한다.
- 파업권을 침해하는 '업무복귀 명령권'을 신설하는 방안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 대통령은 국민들의 비판적 요구에 겸허하게 귀기울이고, 권위주의적 발상을 거두라.
2003년 5월 22일
인권운동사랑방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