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추모와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사고를 접한 대통령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반복되는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막겠다고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에 나섰다. 정부와 국회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이전 정권에서는 볼 수 없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와 비정규 노동자들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정부의 대책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이지 않아서는 아닐까?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위험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산업 재해와 관련된 규정을 담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업장마다 안전교육 실행 의무를 명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고가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는 안전교육을 3개월에 걸쳐 16시간 이상 시행해야 하는 사업장이다. 하지만 고 김용균 씨와 같이 일했던 동료 노동자는 3개월 동안 하던 안전교육이 1주일로 줄어들었다고 증언했으며, 실제로 고 김용균 씨가 이수한 안전교육은 2시간뿐이었다고 드러났다. 입사 3일 만에 현장에 투입하라는 압박으로 안전교육은커녕 업무 관련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외주화 과정에서 인력이 줄고, 현장의 노동강도가 올라갈수록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는 하청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청노동자의 안전교육 문제는 이미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행한 '산업재해 위험직종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하청노동자의 사망사고 비율이 높은 조선업에서 규정에 맞게 안전교육을 이수한 하청노동자는 53.4%로 절반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마저도 현장에서는 안전교육 시간을 업무관련 지시사항을 전달하거나, 생산 품질, 업무 태도 등을 지적하는데 할애하거나, 출석만 부르고 끝내기도 한다. 하청업체별로 안전교육을 진행하면서 안전교육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교육의 편차가 크고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외주화된 노동은 위험을 위험으로 인지하는 과정조차 생략시키고 있다.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위험을 마주할 때 적절한 조치가 가능한 조건을 갖추는 것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필요하다. 고 김용균 씨가 했던 컨베이어벨트 운전원은 화력발전의 원료인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를 주야간 교대로 점검하는 업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점검만 진행하지는 않고 석탄의 운송과정에서 떨어지는 '낙탄'을 처리하는 일도 동시에 진행하는데 이 업무는 할당량이 주어지는 고강도 노동이다. 낮이든 밤이든, 점검을 하든 낙탄을 치우든 컨베이어벨트는 멈추지 않는다. 업무의 위험성이나 노동 강도는 충분히 높은데 외주화 과정에서 인력까지 줄어들면서 노동자의 몸은 혹사당한다. 노동자가 위험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대처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는 사고를 대비해서 긴급하게 컨베이어벨트를 멈추는 '풀코드 스위치'라는 장치가 있지만 고 김용균 씨처럼 혼자 일하는 노동자에겐 제동장치를 작동시켜줄 동료가 없으므로 무용지물이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은 풀코드 스위치가 평소에 하청노동자는 건드릴 수 없는 장비였고, 사고 현장의 풀코드 스위치는 조작해도 작동하지 않도록 조치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사고가 발생해도 이미 막을 수 없는 작업 환경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컨베이어벨트 작업 자체가 지닌 위험성만이 아니라 위험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마저 무력화된 상태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누릴 수 없는 권리였다.
2016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하청노동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려면 열차의 기관사에게 주의운행을 요청해야 하는데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는 열차운행을 조정하는 관제실과 직접 소통할 수 없다. 소속 외주업체, 지하철 전자운영실, 해당 역무실 등 다단계 보고 과정을 거쳐야 관제실과 운행 중인 열차에 스크린도어가 수리 중이라는 사실이 전달되는 것이다. 태안화력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외주화 과정에서 인원은 줄었는데, 소통과정은 복잡하게 만들면서 노동자가 위험을 대처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최근 강릉에서 발생한 KTX 탈선 사고 역시 사고 당시에 승무원이 외주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안전업무를 해서는 안된다고 사고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 인명피해가 없었을 뿐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도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자를 대처불능 상태로 빠뜨린 것이다. 노동자가 위험으로부터 탈출할 경로를 외주화 자체가 가로막고 있다.
재발방지대책은 따로 있지 않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선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예방조치,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청업체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대책은커녕 문제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2015년 안전보건공단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하청노동자가 1명 부상 당할 때 원청노동자가 4명 부상을 당한다고 집계되었다. 하청보다 원청에서 더 많이 다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망사고의 경우는 하청노동자가 원청노동자에 비해 8배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청 노동자가 다치면 치료비 합의나 공상 처리 등으로 통계에는 집계되지 않다가 사망하는 경우에야 드러나는 것이다.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원청 서부발전도 예외가 아니다. 무재해 사업장을 인증받고 실적에 따라 산재보험료를 감면 받았지만 실상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명의 사망사고가 있었다. 전부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2017년엔 하청노동자가 부상을 당해도 산재보험에 집계되지 않기 위해 119를 이용하지 않고 부상자를 후송하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대로 된 예방조치, 재발방지 대책은 노동자에겐 생명과 안전이 달린 문제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비록 작게 들릴지라도 노동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하고 있다. 서부발전의 경우 이미 보도된 내용만 보아도 올해만 28건의 설비 개선 요구가 있었다. 고 김용균씨의 동료는 설비에 문제가 있다고 한해에도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개선되지 않았으며, 컨베이어벨트에 낀 이물질 제거를 위해 물을 뿌릴 수 있는 장비를 요청했지만 비용문제로 거절당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가 "죽지만 않게 해달라"는 말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서부발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노동자,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노동자 등 일터에서 위험을 느끼는 모든 노동자는 안전한 장비를 요구하기도 하고, 인원을 늘려달라 요구하기도 하며, 쉴 수 있는 시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문제는 듣는 귀다. 하청업체는 비용을 핑계대며 원청으로 떠넘기고, 원청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노동자의 요구를 듣지 않아왔다. 노동자가 뭉쳐서 소리라도 치려고 하면 법과 제도는 언제나 불법 파업 딱지를 붙이며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해왔다. 노동자의 말하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의 현주소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말을 듣는 귀가 필요하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권리 현실과 맞닿아 있다. 내가 하는 노동을 아는 만큼 내가 마주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하는 노동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어야 마주치는 위험도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함께 모여서 말할 수 있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더 말하게 하고, 또 들어야 한다. 들리지 않는다면 더 크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오는 12월 22일, 비정규 노동자들이 다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길을 나선다. 지난 11월 결국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고 김용균 씨를 대신해 어머니도 참석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만나서 직접 들어야 한다. 이들의 말하기를 들을 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