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테스트(notest)가 보여준 가능성
일제고사 폐기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농성장을 4일 저녁 종로구청과 경찰들이 침탈했다. 지난 25일 새벽 침탈 이후 벌써 두 번째다. 청소년 ‘보호’와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국가권력이 나서서 청소년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 하지만 청소년들은 순순히 ‘입 닥치지’ 않고 지금도 거대한 교육청의 횡포에 맞서고 있다.
일제고사의 문제점이 잇따라 드러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10일 예정되어있던 일제고사를 31일 이후로 미루었다. 표집집단에 해당되는 0.5% 학교만 시험을 치르며, 나머지 학교는 시도교육청에 따라 자율적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일제고사를 전면적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시도교육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숱한 비판에도 일제고사를 강행해왔던 교과부가 결국 ‘일제고사의 자율적 시행’을 발표했지만 ‘자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제’고사의 ‘자율’적 시행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방침이다.
일제고사는 본질적으로 반교육적인 정책이다. 이러한 점은 성적 조작 파문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일제고사가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제고사 결과 발표 이후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이 내놓은 정책 방향도 성적에 따라 학교별로 예산 및 인사 상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성적이라는 결과만을 교육 평가의 유일한 잣대로 들이대니 성적 조작도 필연일 수밖에 없다.
교육은 배우는 주체의 삶을 다양한 수단과 기회를 통해 풍요롭게 하기 위한 목표를 갖는다. 새로운 앎을 접할 때의 즐거움을 깨닫는 과정,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깨우치는 과정 그 자체가 교육이다. 시험을 통해서 이미 획일화된 학업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것이 교육의 최고 목적이 되는 현실에서는 교육의 가치를 결코 실현할 수 없다. 시험이나 평가가 아니라 자기가 서있는 지점을 학생들 스스로 다양하게 점검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시험은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시험 시간에 질문도 가능한 교육사회도 있다지 않은가.
이 점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 이름(www.notest.kr)은 두드러진다. 일제고사가 끼칠 교육적 폐해에 대해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사이 청소년들은 일제고사뿐만 아니라 모든 시험의 폐지(노테스트, notest)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시험 성적이 교육의 최고 목적이 되어 있는 교육 현실에서 교육적 가치에 어긋나는 시험을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험이라는 획일적인 성적 평가에 대한 괴로움이 아니라 스스로를 진단할 수 있는 지혜와 진단의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청소년들은 교과부가 발표한 0.5% 표집집단에 대한 시험평가마저도 거부하며 참된 교육의 권리를 스스로 옹호하고 있다. 누구도 이를 대신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나서 이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영화 ‘배틀로얄’에서는 오직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인다. 잔혹한 현실판 ‘배틀로얄’에 맞서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이들의 외침은 우리 사회를 절멸에서 구할 희망의 메시지다. 오늘도 찬바람을 맞으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청소년들은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2009년 3월 6일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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