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인권을 무시해오던 정부가 결국 인권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제개정령을 최종 의결했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는 208명 정원이 164명으로 21.2% 감축되고, 5본부 22팀 4소속기관에서 1관 2국 11과 3소속기관으로 축소됐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축소의 범위가 아니라 국가인권위의 가장 핵심적인 본연의 성격이라 할 수 있는 독립성의 훼손과 이를 초래한 정부의 반인권적인 본질에 있다.
국가인권위의 위상은 설립 당시부터 인권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국가인권위를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두려고 했으나 인권단체들은 헌법상의 독립적 국가기구를 주장했다.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기 위해서 입법·행정·사법부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기구가 필요했고, 또한 권력에 조직이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서 헌법적 기구의 안정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맞선 인권활동가들의 시린 농성 끝에 결국 독립적인 국가인권위가 2001년 출범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고선 인권침해를 제대로 감시할 수 없고 ‘인권’은 결국 권력의 장식물에 불과해질 것이라는 인권활동가들의 경고에 사회가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인권의 기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줄곧 공격 받아왔다. 출범 당시 헌법적 기구로서의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인권의 가치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악의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 정부 출범과 더불어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산하 기구로 두려고 했던 것이나 이번 조직 축소 결정까지 결국 이러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국가인권위 축소를 둘러싸고, 지난해 촛불시위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결정 때문이라거나 국제사회에서 한국 국가인권위의 위상 우려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촛불시위 탄압에서부터 최근 언론인 체포를 통한 언론의 자유 침해까지 이명박 정부가 보여온 일련의 반인권적인 모습은 모든 시민을 잠재적 적으로 등 돌린 지난 시절의 군사독재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던져지는 질문은 또다시 인권의 가치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국가인권위를 지켜내느냐 마느냐는 ‘국가인권위’라는 조직을 지키느냐 마느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부당한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꼿꼿함으로 인권침해를 성역 없이 감시하고 두려움 없이 맞서는 인권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다. 국가인권위 조직 축소안의 국무회의 통과로 이제 인권의 가치가 또다시 냉혹한 겨울로 들어설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밤이 깊을수록 새벽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는 가까워진다고 하지 않나. 현 정부의 반인권성이 끝내 선을 넘었다. 이를 기억해내고 인권의 가치를 다시 불러올 몫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남겨졌다.
2009년 4월 1일
인권운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