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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성명서] 서울역에서 사라져야 할 것은 노숙인이 아니라, 한국철도공사의 차별적 방침

[성명서] 서울역에서 사라져야 할 것은 노숙인이 아니라, 한국철도공사의 차별적 방침



지난 7월, 한국철도공사는 서울역 안의 노숙인을 강제퇴거시키는 방침을 세웠다. 여론의 반발이 있자 서울역은 혹서기를 피해 8월 22일부터 야간 노숙을 금지하겠다고 다소 순화된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노숙인’이라는 특정 집단을 구분해 서울역 이용을 금지하겠다는 차별적 발상은 버리지 않고 오히려 노숙인들을 테러 혐의자로 호도하는 등 공공기관의 지위를 망각한 차별적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역은 현재 새벽 1시 반부터 모든 출입구를 폐쇄한 후, 새벽 4시 반부터 개방하되 노숙인의 출입은 금지하고 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특정 집단을 서울역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서울역은 민원이나 테러 위험 등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를 통해 ‘노숙인’을 시민들과 대립되는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여 분리하고 구별하는 것 자체가 차별의 시작이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명백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 그 사람을 통제하면 된다. 그 사람은 노숙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서울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편과 위험의 가능성을,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인 노숙인들을 겨냥해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

노숙 그 자체는 처벌되거나 금지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사회 극빈의 현실이 드러나는 현장이다.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아 거리에서 추위와 비를 피하며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거리 노숙으로 건강 역시 취약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어렵다. 주소가 불명확하고 건강이 악화되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노숙은 하나의 측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적 배제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노숙인에 대한 혐오범죄나 명의도용 등은 단지 길에서 잔다는 이유로 당해야 하는 폭력이다.

제 한 몸 누일 공간이 없어 거리에서 추위와 비를 피하며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사회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한다면 선택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에 다가갈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적절한 주거 지원과 일자리 제공, 의료서비스를 비롯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제공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책들이 모든 노숙인들에게 당장 제공될 수 없다면, 비와 바람을 피해 잘 수 있는 공간, 씻고 먹는 등의 기본적인 조건이라도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철도공사는 노숙인들의 복지는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볼 멘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서울역에 복지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잠을 청할 수 있도록 지붕을 잠시 내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서울역은 집이 없어 갈 곳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처음 찾아들고, 가장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곳이다.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철도역은 그 입지적 특성 때문에 다양한 위기계층이 모여드는 곳이 된다. 한국철도공사는 오히려 심야 시간대에 노숙인들을 위해 역사를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복지부, 국토해양부 등과 연계하여 노숙인들이 적절한 서비스를 지원받고 장기 노숙생활에 접어들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매개공간이 되어야 한다.

한국철도공사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하고 노숙인과 ‘시민’을 구분하여 대립을 조장하며 차별을 가하고 있다. 또한 노숙인들의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서울역에서만 보이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 발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한국철도공사의 허준영 사장이 경찰청장 재직 당시 과잉 진압으로 두 명의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임을 기억하고 있다. 서울역이 아무리 노숙을 금지하더라도 그 곳은 홈리스들의 장소다. 서울역이 노숙을 금지하는 방침을 고수할수록 폭력적인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홈리스가 처한 현실은 그 사회의 인권 현실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인권이 영하로 내려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추위가 찾아드는 시간에 우리는 노숙인들과 함께 서울역으로 갈 것이다. 한국철도공사와 서울역은 당장 노숙 금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2011년 8월 31일



인권단체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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