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도 많이 오고 장사도 잘 될 테니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우린 못 들어가게 할 걸?" '고가공원이 생기면 뭐가 달라질까'라는 질문에 한 거리 홈리스가 짧은 한숨과 함께 건넨 답이다. '누구나'에게 열려있다고 하지만 홈리스인 자신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서울로 7017' 고가공원이 지난 5월 20일 개장했다. 15만 명이 다녀갔다는 이날, 홈리스행동 활동가와 홈리스 당사자분들과 함께 서울로 7017을 따라 걸었다. "철거가 아닌 재생으로, 자동찻길에서 사람길로" 재탄생했다는 서울로 7017이 "퇴거가 아닌 상생으로, 단속길이 아닌 평등길로" 이어지길 바라며 나선 길이었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원래 2015년까지 철거할 예정이었다. 2014년 구조안전성 진단으로 고가도로의 재활용 가능성이 새롭게 타진되면서 서울시는 이를 공원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교통 체증이 우려되니 철거 후 새로 짓자는 의견도 있었고, 인근 상권이 침체될 것이기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서울로 7017이 열렸다. 오르는 길 초입에서 1970년 고가도로 개통 당시 세워졌을 머릿돌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뉴타운을 비롯해 각종 개발사업의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서울의 옛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공간의 역사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 패러다임을 전환한 의미 있는 사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길을 따라 걸으며 이내 접하게 된 풍경들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지나다니는데 급급해 서울역 주변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몰랐다. 높다란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멀끔해진 서울역 주변을 보면서 자연스레 질문이 생겼다. 도시 재생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곳을 자신의 공간으로 삼아왔던 이들의 삶은 '재생'이라는 말과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오히려 더욱 멀어지진 않았을까?
'누구나'에 홈리스도 포함될까?
지난 1월 입법예고 되었던 '서울로 7017 이용 관리 조례'가 다음 달 서울시의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 조례 13조에서는 제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그중 2항에서 '눕는 행위'와 5항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라는 표현에 눈길이 갔다. 여타 공원의 이용 관리를 규정한 다른 조례에서도 흡연과 음주를 제한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토록 상세하게 제한 행위를 열거한 이유는 홈리스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서울로 7017 개장 전부터 노숙인 때문에 이용 시민이 불편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며 시민vs노숙인 구도를 부추기는 보도를 해왔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노숙인도 서울시민으로 공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이후 제정될 조례와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해 엄격히 규제할 것이라 밝혔다. 청원경찰을 배치하여 단속과 처벌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장소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조례로 규정하는 것뿐이라고 보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노숙인으로 여겨지는 이들에게는 집요하게 감시의 눈이 따라붙을 것이다. 각종 이유를 대서 공원으로 진입하는 것부터 가로막힐 수도 있을 것이다.
2011년 8월에 나온 '빈곤의 형벌화-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보고서'는 △공적인 공간에서의 빈민의 행위를 제한하는 법·규제·관행, △도시 계획이라는 명분하에 취해지는 규제와 조치,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 이용 조건의 강화, △과도하고 자의적인 형사처벌이 빈민의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형벌화 조치라고 설명한다. 국가나 자본은 이러한 조치가 공공을 위해서라며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에 저항하면 범죄자 딱지를 붙이며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내 빈곤과 배제의 악순환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원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서울시의 조치로 홈리스들은 사실상 자신들에겐 닫힌 금지구역이라 여기게 되지 않을까? 언론의 부추김도 문제지만 서울시가 내놓은 방침도 문제다. 노숙인과 시민을 분리하고, 시민에게 어떤 피해를 야기할 잠재적 위험으로 노숙인을 인식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공간의 역사를 함께 써온 홈리스
2011년 여름 강행된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가 겹쳐지며 떠올랐다. 이용객들의 민원 해소,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제공을 위해 노숙인 퇴거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코레일은 이를 강제할 특수경비용역을 고용했다. 강제퇴거 조치에 항의하면서 홈리스들은 "이곳이 내 집이다. 서울역에 사람으로 살고 있다" 이야기하고자 서울역을 주소지로 전입신고 신청을 했다. (관할 주민센터에서는 전입신고 대상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이후 서울역에서 시작된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는 다른 역까지 확장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없어서 노숙하는 건데 코레일 사장은 없는 것이 죄라고 한다"며 울분을 토해냈던 대전역 홈리스의 말이 귀에 맴돈다.
인생에서 저마다의 상실을 안고 서울역으로 모였던 이들에게 그곳은 물리적인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무료 급식으로 따뜻한 밥 한 끼를 누군가와 함께 먹고, 주거 지원이나 일자리 등 시급하게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곳이 홈리스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고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커뮤니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을 탈바꿈하는 과정에 홈리스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점유해왔던 공간의 변화는 홈리스에겐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때 홈리스는 그저 밀어내고 쫓아낼 '대상'일 뿐 이 공간의 기억을 함께 써온 '주체'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2011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012년 서울시 노숙인 권리장전도 만들어지면서 노숙인의 권리는 성문화되었지만, 현실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서울로 7017 개장을 앞두고 서울시는 주거 지원 등 노숙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시설 입소를 안내․지원하는 인력을 늘리고, 노숙인 임시 주거 지원 사업 예산을 작년보다 2배 확대하고,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고가공원의 정원관리사로 재활 노숙인 5명을 고용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그동안 코레일과 중구청 등이 아무런 대책 없이 강제퇴거 조치 단행에만 열을 올렸던 것과 비교하면 이런 서울시의 행보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란 그곳에서 살아온 가난한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닐까?
고가공원 공사가 한창일 때 인근 남대문 쪽방 건물들이 헐렸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았던 홈리스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조만간 그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28층의 쌍둥이 빌딩이 우뚝 들어설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서울역 주변 다른 쪽방 건물들에 살고 있는 이들은 언제 내몰릴지 몰라 매일매일이 불안하기만 하다.
2012년 9월 채택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원칙'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가 가난한 이들을 권리의 보유자이자 변화의 주체로서 인정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화려하고 깨끗해진 도시와 공공역사 그 이면에 숨겨지고 함부로 치워진 누군가의 삶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가난한 이들이 서울역 주변에 새겨온 삶의 기억들을,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현재진행형의 기록으로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서울로 7017의 화려한 모습 아래 오늘도 그곳을 떠날 수 없는 홈리스들의 삶이 함께 보이고 지켜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