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10년을 지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긴급구호를 넘어서 개발지원으로 그 성격이 변화되어 보다 활발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많은 비판 또한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인도적 지원과 그에 대한 비판이 모두 ‘인권’이라는 보편적 개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에 대북 인도적 지원과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모두를 ‘인권’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 발목 잡는 ‘뻔한’ 문제제기
대북 인도적 지원을 두고 많은 문제제기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 중에는 보다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건설적 제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북 인도적 지원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들이다. 최근에는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이 대북정책을 발표하면서 이같은 의견들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게 계란을 던져 화제가 되었던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박상학 대표는 “정형근이 김정일 하수인이 되려고 작정했는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이 북한인민들을 굶겨 죽이는 김정일 정권에 경제지원을 하는 등 상호주의를 배제한다면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것이냐.”라며 철저한 상호주의를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상호주의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대북지원과 인권 문제를 철저히 연계시켜야 한다. 쌀과 비료가 인민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것을 검증해야한다. 현재 대북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게 아니라 독극물 든 독에 물을 넣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이들이 말하는 ‘상호주의’는 북의 김정일 정권 붕괴를 목표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북한인권 문제’와 ‘지원 문제’를 등가로 교환하자는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두 명의 주장은 언뜻 보아서는 북의 인민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위한 지원에 찬성하는 것 같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인도적 지원은 정권을 위한 것이므로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에 근거해서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지원에 대한 검증을 핑계로 정치적 대가를 요구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이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는 반대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낳는 희극을 보여주고 있다.
‘지원에 대한 분배 투명성’과 관련해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쌀, 비료 등과 같은 대규모 지원의 경우, <좋은벗들> 노옥재 사무국장은 “쌀 지원은 누구에게나 알려지고 보여지기 때문에 투명성 문제는 북한 내에서 오히려 자체적으로 해결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쌀과 비료 등의 대규모 지원의 경우 북의 평범한 인민들도 지원 사실을 인지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북 당국이 쉽게 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일부의 우려처럼 지원 물자가 장마당으로 유입되는 경우에도, 일부 관리 계층이 이를 통해 부정부패로 부당하게 이득을 보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장마당의 쌀 공급을 통해 쌀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인민들이 쌀에 대한 구매력을 가질 수 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두 번째로, 개별 대북지원단체들을 통해 지원되는 농업, 보건의료, 복지 분야 등에 대한 지원의 경우, 분배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기금집행 자체가 어려운 현재 대북지원 시스템을 볼 때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 의한 대북지원의 경우, 이미 모니터링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으므로 국내지원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의 단체 혹은 개인이 북측에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① 지원(반출)물품의 리스트, 매우 구체적인 지원지역 및 대상을 포함하는 반출승인서를 통일부에 제출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음으로 ② 지원이 이루어진 이후에 북측을 방문하여 원하는 장소에 보낸 물량이 도착하였는지 확인하고 북측으로부터 인도인수증과 분배내역서를 받아야 한다. ③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모두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을 증명할 제반 서류들이 갖추어져야 정부, 기업, 일반회원 등으로부터 기금을 받아 집행할 수 있다. 즉, 모니터링 체계가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삼을 일이 없다.
결과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인도적 지원의 경우, 모니터링을 문제 삼을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인도적 지원’이 바로 인권문제 해결의 첫 걸음
인도적 지원은 시급한 상황 발생 시 긴급하게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국제적 지원을 의미한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중립성, 형평성, 독립성을 기반으로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무상지원이기 때문에, 지원의 조건으로서 수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인도적’ 지원이기 때문이다. 일단 생명의 위협에 처한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는 인도적 지원의 정신은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인도적 지원은 특히 경제적인 문제로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지역에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인권개선의 첫걸음으로서 역할하기도 한다.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간 인권개선, 개발지원
대북 인도적 지원은 긴급구호의 성격을 띠는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발지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다시금 ‘인권’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긴급구호 성격의 인도적 지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급한 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한 필수요건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개발지원의 경우 논란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개발지원은 단기적으로는 농업생산성 향상 및 거시경제 안정, 중장기적으로는 빈곤퇴치, 인적자원 개발, 경제인프라 구축, 환경보호 등을 포함하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사회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1986년 유엔은 <발전권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 to Development)>을 채택하면서 발전권을 인권의 한 목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제3세계에 대한 발전권은 전세계적인 빈곤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세계를 포함해 모든 국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제이고, 또한 인민들의 삶의 ‘발전’과 민주주의, 인권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유엔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반도의 경우, 발전권에 기반을 둔 개발지원의 확대는 정치적 긴장상태를 완화하는 기능을 포함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의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권’은 무기가 아닌 실천
물론 대북지원이 북의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절대적인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대북지원이 결과적으로 야기할 수 있는 북 경제구조의 대남 경제 종속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긴장감을 끊임없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인권개선은 경제가 안정되고 발전된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재 한반도 현실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개발지원은 인권개선을 위한 첫걸음임을 인정하고, 대북지원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인권’에 대한 오해와 무지는 더 큰 인권의 재앙을 부를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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