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북한인권’과 관련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2005년 발의했다가 결국 제정에는 실패한 ‘북한인권법’이 18대 국회에서는 제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몇몇 정치인의 경우 ‘북한인권 개선’과 ‘북한인권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국내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노동권, 갈수록 심화되고 확대되는 빈곤,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 등 시민·정치적 권리의 축소 등과 같은 문제를 외면한 채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는 반면, 북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여러 정황적인 조건들은 따지지 않고 ‘심각성’만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중적인 인권의식은 북의 인권 상황에 접근하는 진정성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인권법’이 과연 북의 인권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좀더 면밀한 검토 과정이 다시 한번 요청되고 있다.
현 정부의 이중적인 인권의식, 과연 북인권 개선할 수 있을까
‘북한인권법안’은 2005년 8월 11일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을 대표발의로 하여 29명 의원 연명으로 국회에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올바른 통일의 길은 단순한 남북당국자간의 합의가 아니라 광범한 남북동포간의 합의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라며 “북한인권 개선 등에 관한 국가의 책무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이바지하고 나아가 진정한 통일시대를 열고자 하는 것”이라고 제안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엄연히 독자적인 체계를 갖고 있는 다른 사회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법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북한인권 개선 등에 관한 국가의 책무와 제도적 장치’의 내용과 목적에 따라 애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법안이 탄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올바른 통일의 길은 ‘광범한 남북동포간의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하지만 ‘북한인권법안’이 담고 있는 북인권 개선의 방향에는 ‘북동포’의 어떠한 합의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제안이유’에서 “북한주민은…헌법에 따른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북동포’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만 엿보일 뿐이다. 상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관계에서 대결이 아닌 협력을 통한 인권개선은 불가능하다. ‘북한인권법’의 출발지점 자체가 전혀 인권적이지 않다는 데에서 인권을 지향한 법이지만 오히려 반인권적인 결과를 낳는, 이 법안의 비극이 시작된다.
‘북한인권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눈에 띄는 내용이 북한인권개선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기구들의 신설이다. ‘북한인권 개선 등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통일부 산하에 통일부장관을 위원장으로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국가인권위원회 등 조직의 차관 또는 차관급 공무원을 구성원으로 해 북한인권개선위원회를 신설하도록 하고 있다. 또 ‘북한인권 정책에 대한 자문을 청취’하기 위해 통일부에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북한인권자문위원회를 두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 안에서의 인권침해사례와 그 증거를 체계적으로 수집·기록·보존’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두도록 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증진하도록 하는데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진지하게 찾는다는 취지라면 필요한 일일 수 있겠지만, 북한인권에 대한 접근 자체가 반인권적인 상황에서 목표와 역할이 불분명한 기구를 신설한다는 것은 오히려 ‘북한인권’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악화시키거나 있으나마나한 기구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구서독에 있었던 ‘동독(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의 국가범죄에 대한 중앙기록보존소’를 모델로 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이다. 이는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독일 통일 과정에서와 같이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을 전제로 ‘통일 후 처벌’이라는 정치적 의도를 뚜렷이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남북 관계를 오히려 경색시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남북 대결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인권 개선 사업 마음에 안들면 인도적 지원 안한다?
‘인도적 지원’ 부분은 모순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오히려 ‘인도주의’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안’ 제2조 2호는 ‘“인도적 지원”이라 함은 동포애와 인도주의에 따라 북한주민의 기본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물품 지원 또는 구호활동 등을 말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13조 3항은 ‘정부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과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여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이 남한 정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인도적 지원을 줄이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 외에 아무런 조건도 달 수 없는 인도주의에 조건이 달리는 순간 이는 더 이상 ‘인도주의’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북한 주민의 ‘기본적 생존’을 위해 지원을 하는 것인데 이를 상황에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북한 주민의 기본적 생존조차 외면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북한인권법안 제14조 1항은 ‘통일부장관은 북한주민에게 정보가 자유롭게 전달·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 주민들이 스스로 원하는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인권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는 북 주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결정하고 북 당국과의 협의 및 투쟁을 통해 권리를 확보해야 하는 문제이지 외부의 누군가가 대신해서 필요한 정보를 결정하고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북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북 당국이 외부로부터의 무분별한 정보가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정보를 유입시키려 할 때 오히려 북 당국이 주민 통제와 정보 차단의 수위를 높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제3조 3항의 ‘국가는 해외에서 체류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인권보호와 국내입국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규정도 문제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을 보호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해외 체류 북한이탈주민을 국내로 입국할 대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해외 체류 북한이탈주민은 경제적인 이유로 북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 일부는 북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할 수도 있고, 일부는 유럽의 일부 국가나 중국 등 해외에서 정주하기를 희망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물론 일부는 남으로 들어오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그들의 의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북한이탈주민의 국내입국을 위해 노력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것일뿐더러, 브로커·기획입국 등 지금도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입국 과정에서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을 더 심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이 외에도 제16조는 “정부는 북한인권 개선 등을 위한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단체에 대하여 경비보조 등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민간단체’는 대부분 보수적 북한인권단체들을 대상으로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 중 많은 단체들은 보수적인 정치적 색깔이 비교적 뚜렷한 미국의 NED 등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온 단체들이어서 또다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정책,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북 사회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겠다며 ‘북한인권법’을 준비했지만 비극적이게도 정작 그 내용은 전혀 인권적이지 않다. ‘북한인권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면면이나 그 법안을 비호하는 세력들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이들이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이 ‘인권 개선’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과거의 냉전적인 역사관과 남북관계에 얽매여 있는 한 이들이 북 사회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진정성있는 방안에 다가서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북한인권법’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제정한 같은 이름의 ‘북한인권법’처럼 북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우려가 발생한다. 인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반인권적인 수단을 통해 인권을 개선하겠다는 것은 ‘달콤한 소금’이라는 말만큼이나 모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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