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북한인권법안 관련 보고서에 대해
2004년 5월 19일
우리는 한반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시민사회의 일원이다. 우리는 2004년 5월 4일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북한인권법안(H.R. 4011)에 관한 보고서(Report 108-478)에 대해 응답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해 11월 미 상, 하원에 상정된 북한자유법안(North Korean Freedom Act of 2003, NKFA S. 1903 and H.R. 3573)과 지난 3월 미 하원에 상정된 미 하원에 상정된 북한인권법안(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 H.R. 4011)에 대한 미 의회에서의 논의를 주목하고 있다. 위의 법안들은 북한의 인권 상황의 개선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우리는 이 법안들이 실제로는 오히려 인권문제의 정치화를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 의회가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에 주의해야 하며, 선의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 중인 평화와 화해의 과정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유념하기를 바란다.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보고서(Report 108-478)는 “이 법안이 북 체제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의 구실이거나, 현재 진행 중인 협상에서 부수적인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는 등 미 의회 역시 이 법안에 대해 제기되는 우려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는 이 법안의 통과를 권고하였다. 우리는 우려의 근거가 되고 있는 조항들이 사실상 거의 수정되지 않았다는 데 강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외국에 대한 간섭 혹은 침해의 소지가 있는 법안일 경우, 법안 집행에 따른 기대효과보다는 그 위험성을 보다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민주정부에 의한 한반도 평화 통일의 진전을 촉진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지난 해 리처드 루거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2003년 7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는 일부 탈북자들이 미국에 재정착하는 것을 허가하고 동맹국들도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이런 조치는) 1989년 동독의 대규모 탈출사태가 동독을 무너뜨린 것처럼 평양 정권의 붕괴를 재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제관계위원회의 보고서가 “북한인권법안은 난민 문제를 정치화하거나 난민을 다른 전략적 계산의 볼모로 사용하는 것을 피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 탈북자 지원이 북 정권의 붕괴를 촉진할 것이라는 인식이 미 의회 내에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 우려를 거두기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에 포함된 미 의회 예산청의 분석에 따르면, 법안이 승인하는 예산 중 일부를 전국민주주의재단(National Endowment of Democracy)이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 6년 간 한국에서의 전국민주주의재단의 활동을 살펴볼 때, 이는 우리로 하여금 우려를 갖게 한다. 1998년 이후, 전국민주주의재단은 한국 내에서 북 정권의 교체를 목표로 삼고 활동하는 일부 정치적 성향의 단체들과 긴밀히 연결된 활동을 벌였다. 따라서 우리는 전국민주주의재단의 이들 단체에 대한 재정적, 전문적 지원이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국민주주의재단이 외국에서 활동하도록 재정을 지원하는 미 의회가 한국에서의 사회적 갈등 유발을 의도하리라 믿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1998년 이라크해방법(PL 105-338)을 제정하여 이라크에서 민주정부 수립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으로는 이라크 반정부세력이 방송을 내보낼 수 있도록 자금을 제공하는 동시에 기타 원조도 이루어지도록 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라크 내 민주주의의 진작과 인도적 상황의 개선을 표방했던 이 법안은 이후 이라크 침략의 법률적 근거로 제시되었다.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ABC 방송 ‘프라임타임 목요일’, 2004년 3월 25일
이라크 해방법과 북한인권법안은 목표에 있어 유사성이 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인권법안이 향후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로 사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우리는 북한의 주민들의 상황에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압박과 고립을 통해 북한인권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이 법안의 기본인식과 접근법에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이 법안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북 인권 상황의 개선 기회를 차단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북 인권 상황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 북한인권법안이 함의하는 것과 같은 일방적인 접근이 아니라 북한을 한 국가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동안 남북한은 상호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남북교류협력사업을 꾸준히 확대해왔고 서로간의 이해를 증진시켜왔다. 또한 한국민의 대다수가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포용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다시 한번 미 의회가 이러한 한국 시민사회의 의견과 입장을 인식하고 존중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사랑방, 좋은벗들,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네트워크, 통일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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