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이 걸어온 길 (2006.4.~2016.12.)
■ 1993년 인권하루소식 창간, 팩스 신문으로 매일 새벽을 깨우다
1993년 8월, 장기수 후원 운동을 하다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간 활동가를 구명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저기 팩스를 보내다 팩스신문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 달간 24호의 준비호를 발행하며 편집기술상의 문제점, 기사취재 방법상의 문제점, 발송 작업의 문제점 등에 대한 점검을 거쳐 9월 7일 팩스로 매일 400곳에 배달되는 신문 ‘인권하루소식’을 창간했다. “'안보'와 '질서'의 이름 아래 인권이 광범위하게 유린되고 있는 사회에서 참다운 자유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실을 전달하는데 주저함 없이 '시린 칼날'로 인권유린의 현장을 가차 없이 내리치겠다.”는 의지를 창간사에서 밝혔다.
■ 새로운 인권매체를 준비하며 인권하루소식 3000호로 종간하다
인터넷이 대거 보급되는 환경에 맞춰, 보다 깊이 있는 기사를 담기 위해 팩스 신문을 폐지하고 2005년 2월 1일 2745호부터 인터넷판 발행을 시작했다. 인권소식을 전하는 것만으로 운동이 되지 않으며 국가가 인권행위자로 나서고 자신의 이해를 인권으로 포장하는 시대에 진보적 인권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나가야 했다. 그 사이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소식을 전파할 공간은 더 넓어졌고 그 속도도 빨라졌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인권하루소식만의 속보성을 '기쁘게' 다른 매체들에 넘기기로 했다. 인권 전문 매체의 존재 이유는 여전하기에 달라진 상황에 맞는 새로운 매체를 준비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12년 6개월 간 발행해온 인권하루소식을 2006년 2월 28일 3000호로 종간했다.
■ 2006년 온라인 주간매체 인권오름 창간하다
2006년 4월 26일 온라인 주간인권소식 ‘인권오름’(매주 수요일 발행)을 창간했다. 흙빛의 인권현실을 헤치고 더욱 낮게, 더욱 깊게, 더욱 긴 호흡으로 인권을 올리는 데 작은 힘을 보태겠다며, 제주도의 오름처럼 인권이 굳세게 솟아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권오름이라 이름 지었다. 창간사에서 △‘갇힌 인권’의 경계를 넘어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다른 인권’을 이야기하겠다, △같은 소식도 다르게 뜯어보고 새로운 인권의 영역을 개척하며 도전하기와 경계넘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민중들의 삶 가까이, 듣지 못한 외면당한 목소리들을 나지막이 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솟을터(정책 섹션), 놀이터(교육 섹션), 세움터(학술 섹션), 나들터(사는 이야기 섹션)의 4개 섹션으로 구성하여, 섹션별 성격을 담은 고정꼭지들을 기본 배치하고 기획연재, 인권이야기 등을 비섹션 기사로 담았다. 2007년 창간 1년을 맞아 독자들과 함께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인권오름이 가야 할 길을 다시금 직시했다.
■ 100호를 맞이하며 인권운동 공동매체의 전망을 그리다
창간 2년을 앞두고 매체로서 지속가능하기 위한 개편방향을 논의했다. 진보적 인권운동 진영이 공동으로 만드는 매체, 그래서 서로서로 힘을 얻을 수 있는 매체로 방향을 잡았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주간인권소식 인권오름’에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으로 소개말을 바꿨다.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다양한 단체들과 기획연재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독자모임을 시작하고, 인권침해의 현장을 잘 전하기 위한 활동가 글쓰기 교실도 진행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런 시도들은 안정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 인권운동을 연결하고 교류하는 장이 되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매체 그 이상이 되기 위한 노력들로 인권오름은 다양한 인권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연결되고 교류하는 장이 되었다. 여러 단체 활동가들의 기고와 참여 덕분에 인권오름은 진보적 인권담론을 풍성하게 키워가는 매체가 될 수 있었다.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현안을 인권의 시선으로 뚫어보며 시대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 인권운동의 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의 관점에 기초한 정책들을 제안할 수 있었다. 제도화의 흐름 속에서 현장과 호흡하는 인권교육, 인권연구의 자리를 지키며 넓힐 수 있었다. 소수자인권운동의 작은 목소리들을 키우는 확성기가 되고 삶의 조각들로부터 운동의 담론을 벼리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인권활동가들의 글쓰기 도전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인권오름은 여러 활동가의 참여 속에 인권운동이 연결되고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기꼭지 개발과 콘텐츠 안정성을 꾀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단위인 각 권리영역별 팀들도 연재기사 기획을 하며 활동과 고민을 외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단체뿐 아니라 개별 기고활동을 하는 이들과의 인연은 다루는 주제나 영역이 더욱 풍부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온라인에서 인권오름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2012년에 SNS 연계기능을 추가했다.
■ 인권매체로서의 전망과 역할을 고민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심도 깊은 주제의 인권기사를 매주 기획하고 발행하는 것은 전문적인 매체 운동의 역량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체를 발행해온 인권운동사랑방은 이러한 역량을 조직적으로 키워내지 못했다. 주간매체로서 역할하기 위해 필요한 기사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동안 구성했던 섹션별 고정꼭지가 감소하면서 섹션 구분도 점차 모호해졌다. 발행일이 늦어지는 경우도 잦아졌고 매주 발행해야 하는 부담에 헉헉대기도 했다. 그럴수록 인권운동의 전망 속에서 인권오름의 위치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집중해서 논의하지 못했다.
■ 2016년 인권오름 종간을 결정하다
인권오름이 '매체'로서 어떤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진보적 인권운동의 담론을 생산하고 인권운동의 연대를 북돋고자 했던 인권오름의 목표는 기존 방식대로는 길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권담론을 전문적, 급진적으로 벼리는 것만으로는 인권의 위기에 맞설 수 없었다. 또한 급격히 변화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인권오름의 제한된 역량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인권오름 종간을 결정하며, 대중의 힘을 변혁적으로 조직하는 인권운동이 되자는 인권운동사랑방 20주년의 다짐을 되새겼다. 2016년 12월 512호로 인권오름을 종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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