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2번지로 가기 위해서는 경사가 45도는 될법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한다.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다. 넓은 길은 이내 두 사람이 어깨 맞대고 걸을 수 없는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양옆으로 시멘트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계속 오르막이다. 그러니 산2번지겠지.
어느 지점에 서니 성북구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저기에 거의 다 지어 가는 하월곡4동의 20층 짜리 새하얀 재개발 아파트와 내 바로 아래 회색 슬레이트 지붕이 촘촘히 박힌 달동네가 동시에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 세련된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선 그 자리도 1년 전엔 달동네였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졌을까.
우리는 산2번지에서 그들 중 몇몇을 만날 수 있었다. 하월곡4동 재개발로 하월곡3동 77번지로 이사했다가 또다시 77번지 재개발로 산2번지로 옮겨온 사람들. 그리고 내년 가을쯤 산2번지가 재개발로 철거되면 이제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사람들. 그들에게 임대아파트 입주권은 안타까운 그림의 떡이다. 하월곡4동 재개발로 산2번지, 지금의 단칸방으로 이사 온 홍민수씨(가명)는 '임대아파트는 엄두도 못 낸다.'고 잘라 말한다. 막노동 임금과 정부보조금 9만원으로는 어린 자식 넷을 먹여 살리기도 벅차고,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단칸방은 걸려있는 보증금도 없다. 그에게 천오백만원에 가까운 임대아파트 보증금은 마련할 엄두도 못내는 그런 돈인 것이다. 주거환경개선이 목적인 재개발은 그들이 비로소 최소한의 인간다운 집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했건만, 오히려 열악하지만 악착같이 지켜온 생활터전에서 그들을 내몰았다.
그들은 또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곳을 향해 짐을 꾸려야 한다.
낮에 오른 산2번지는 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다. 새벽에 나가 늦게까지 일하고 쉬는 날도 따로 없는 사람들이 낮에 있을 리가 없다. 근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빈집 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 종일 홀로 누워만 있는 외롭고 병든 할아버지가 있고, 추운 날씨에는 막노동 일거리가 없어 자식들 먹여 살릴 걱정이 태산인 젊은 남자가 있고, 가족들은 하나 둘 떠나고 장기실업의 무기력한 상황을 술에 의지하는 아저씨가 있고, 공장에서 일감 떼어다가 단칸방 벅적거리는 어린 자식들 틈에서 종이상자를 접거나 구슬을 꿰는 엄마들이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무리한 노동이 부른 병든 몸을 이끌고는 50미터 떨어진 공중화장실 가는 길이 너무 두렵다는 사람, 새벽 5시에 나가 9시 넘게까지 일해도 가족들 최저생계비를 못 번다고 말하는 사람,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후유증으로 겨울만 되면 다리가 마비되어 일할 수 없는 처지가 너무 야속하다는 사람, 큰 아이가 장애등록을 해야 장애수당이라도 받는데 병원에서 요구하는 장애 진단비를 부담할 수 없어 포기했다는 사람, 혼자서는 이제 밥해 먹을 기력도 없어 당장 노인 요양원이라도 들어가야 할텐데 적어도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그 6개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사람, 정부가 최저생계비로 주는 돈 45만원으로 병들어 일 못하는 자신과 고등학생 아들이 한 달을 버텨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산 2번지에 살고 있다. 이들의 가난은 인간다운 생존권의 박탈이다.
이들의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총체적인 사회권 박탈을 야기한 국가의 의무 불이행의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워낙 할 얘기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재정부족의 이유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생존권 박탈을 방치하는 국가에게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의무위반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는 법이나 행정조치에 차별이 있는지, 제3자의 반인권적 행위를 규제하는 조치를 취했는지, 사회·경제적 약자의 인간다운 생존권 보장에 우선적으로 재정을 사용했는지 등이 되어야 한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회권 박탈은 차별적인 법과 행정조치에 의해서, 사용자나 고리대금업자, 개발업자와 같은 제3자에 의한 인권침해를 규제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반인권적인 재정배분을 통해서 일어난다.
'모든 사람'을 전제하는 인권의 보편성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우선성을 내포하고 있다. 산2번지 사람들이 오늘도 감당하고 있는 가난한 현실이 한국의 인권보장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