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따따 보고 싶다” 이건 불치병이다. 고작 1주일 다바오에서 떠나있었을 뿐인데, 말도 잘 안 통하고 게다가 나를 골려먹을 궁리만 하는 따따가 보고 싶다니. 그것도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번번이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날 올 적마다 따따가 생각나다니, 이건 분명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이다.
말로 뱉어낸 그리움은 더욱 커진다. 전화를 걸어본다. ‘뚜~ 뚜’ 전화는 종일 통화중이거나 아무도 받는 이가 없다. 진작부터 주인장이 딸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갈 계획을 잡고 있었던 터라 허공에 울리는 전화벨 모양새에 주인장이 서울로 떠났음을 알아챈다. “살판이 났겠구만. 이제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고 다닐 수 있을까” 쩝하고 궁시렁 거려보지만 입가엔 묘한 웃음이 감돈다.
일주일을 예정했던 마닐라 행은 마닐라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수빅과 클락 방문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졸지에 2주일로 불어나버렸다. 3월 한국 떠나온 이래 처음으로 한국인들과 어울리면서 필리핀이 아닌 ‘한국’인 것처럼 살았던 1주일은 모두 끝나버렸다. 모처럼 맛보는 한국 음식에 넋이 나가 허리살 부는지 모르고 음식에 눈독을 들이던 날도, 역시 술은 ‘소주’가 최고라며 은근히 술자리를 탐했던 시간도, 영어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데다 비슷한 일을 했던 이들을 만난 즐거움에 얘기가 잘 통한다며 끊었던 담배를 슬쩍 다시 집어 들었던 새벽도 안녕이다.
우리에 갇힌 새가 하늘로 비상을 시작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비행기의 차창너머로 탁 트인 바다와 끝없이 이어진 산맥,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눈에 들어온다. “다바오다” 나도 모르게 반가움과 안도가 흐른다. 없는 게 없는, 그래서 삶의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마닐라지만 서울과 닮았기에 ‘숨’이 막혔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따스한 햇살이 전해져 온다. 뜨겁긴 하지만 분명 마닐라의 햇살과는 다르다.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 생면부지의 낯선 다바오 땅에 도착했을 때의 ‘평온’이 감돌면서 따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집안엔 잔치가 벌어졌다. 주인장 없는 틈을 타 따따가 그네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초대한 것. 도착할 것임을 알면서도 판을 벌였다는 것이 괘씸하긴 하지만 평생 못 누려보았을 ‘호사’임을 알기에 또 묘한 웃음이 스친다. ‘Oh, I miss you'라고 따따가 말한다. ‘진짜로’하며 얼굴을 찡그려보지만 금세 실토하고 만다. 나 역시 그리웠다고. 그렇게 지난 두 달 동안 우리는 하숙집 핼퍼와 하숙객의 관계를 넘어 ‘친구’가 됐다.
따따에게 배운 것들
고백하건대, 아마도 연민이었을 게다. 누구는 ‘연민’과 ‘책임’이 성립되는 관계는 불행한 것이라 거침없이 내뱉기도 하지만 따따의 친구가 되고자 했던 것은 그의 처지에 대한 안쓰러움과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에서부터였을 게다. 하지만 두 달을 지내면서 그는 더 이상 ‘연민’의 대상만은 아니다. 교만한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아무 것도 버리지 않았다. 가난함이 삶이되었기 때문일 수도, 아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삶을 너무 오래 동안 살아서인지 몰라도 따따는 남은 음식은 물론 비닐봉투 심지어는 종이 한 장도 쉽사리 버리지 않는다. 때론 내가 콩나물을 씻는다며 떼어낸 머리 꼬대기를 모두 모아 음식을 만든다. ‘이건 버려야 할 것들’이라고 말하지만 따따의 눈초리가 무섭다. 8년을 헬퍼로, 남의 집 살이로 아득바득 살았지만 따따의 통장에 든 돈은 고작 800페소(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6,000원). 두세 번인가 책을 산다며 따따와 장보기에 나서보았지만 따따의 주머니에서 10페소 이상 나오는 것을 본 적은 그네 딸에게 보내기 위한 속옷을 살 때뿐이었다. 한국에서 ‘짠순이’로 소문난 나도 그녀의 ‘씀씀이’를 따라잡기엔 너무 소비에 익숙해져 있다. 만들어 쓰기를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그에 투여되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싸다’는 이유로 ‘나중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물건을 사고 ‘필요없다’ 쉽게 버린다. 하지만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현실에서, 지구의 80%가 빈곤에 허덕이는 사회에서 이건 사치다. 그걸 따따는 내게 원망의 눈초리와 그의 삶으로 가르친다.
해되지 않는 생명은 미워하지 않아야한다는 것도 따따에게서 배운다. 유난히 곤충(?)이 싫었다. 지하 방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집안에 유난히 온갖 종류의 곤충들이 많았다. 바퀴벌레가 밥상에 출몰하는 것은 기본이고 송충이가 신발장에 붙어있거나 이불위에 귀뚜라미가 출몰했던 일들은 유년시절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던 공포 그 자체였다. 음식물의 작은 잔재라도 남은 곳엔 어김없이 개미떼가 행렬을 짓지만 따따는 개미를 죽이는 법이 없다. 다만 손으로 툭툭 치거나 ‘오’하며 까르르 웃을 뿐이다. 집안 곳곳을 기어다는 도마뱀도 따따에겐 그저 나를 놀려먹기에 좋을 존재일 뿐이다. 천정 위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는 작은 도마뱀에 소스라쳐 그를 불렀던 시간에도 따따는 ‘It's good(해충을 잡아먹는 존재라는 의미)’이라며 ‘푸하하하’ 웃는다. 절대 쫒거나 잡는 법이 없다. 따따가 잡는 곤충이라곤 바퀴벌레 정도. 엄지손가락보다 훨씬 큰 바퀴가 날라 들어올 때면 사정없이 슬리퍼를 집어 던지며 ‘Not good'을 연발한다. 그래서 해되지 않는 곤충은 죽이지 못한다. 매일 쉬도 때도 없이 작은 개미들이 얼굴에 몸에 올라타며 미끄럼을 타지만 이제는 툭툭 쳐낼 뿐이다. 언제가 읽은 책 제목이 기억난다. ‘지구를 살리는 풍뎅이’라는.(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책인데, 당시에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다시 배운다. 책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삶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임을.
따따가 그리운 이유
하지만 무엇보다도 때론 되도 않는 똥배짱을 튕기는 따따를, 대책없이 게을러 가끔은 끼니조차 거르게 하는 따따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사람에 대한 따스함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이 아닌 무관한 존재들을 향해서도 닫히지 않는, 그 사람 눈높이에 맞춘 그의 배려다. 향수병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 슬쩍 자리를 피해주는 배려를, ‘아픈 것 같아’라는 말에 서툴게 끓여 내주던 죽 내음을, 매운 것은 죽었다 깨도 못 먹으면서도 한국음식 먹고 싶을 거라며 김치를 담겠다며 고춧가루 양념의 간을 맞추던 날도, 농담처럼 내뱉은 말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닭을 튀겨주던 모습도,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 흐른다. 동전 몇 푼을 얻으려 이집 저집은 전전하는 아이를 보면 주인장 몰래 만들어다 팔고 있는 아이스캔디의 수익을 내어주고, 자신의 접시에서 빵을 덜어주는 것도 따따다. 매번 종을 흔들며 온갖 잡일을 시키는 주인장이지만 내가 싫은 낯이라도 보일 때면 ‘no!’라고 말하는 것 역시 따따다.
‘연수’라는 명목으로 떠나오긴 했지만 마음 가는 데로 떠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는 여행이기에 짐 되는 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짐이라고 해봤자 갈아입을 옷 몇 벌에 책 몇권 든 가방하나가 전부. 여기에 ‘정’은 금물이었다. 그저 길 위에서 만난 ‘좋은 인연’정도로 스쳐가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벌써부터 따따가 그립다. 힘겨운 현실 앞에서도 웃음을 보내지 않는 그의 밝음이, 사람들의 발아래 선 듯하지만 가슴 안에 서있는 그가, 그래서 더욱 여행객의 가슴을 울리는 따따가 그립다. 나는 안다. 이곳에서 떠나면 다시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집 저집 핼퍼로 떠도는 인생이기에 편지 부칠 주소한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따따가 그립다. 이 그리움을 안고 다바오를 떠날 수 있을까?
- 필리핀 다바오에서 □
¹) 하루소식을 열심히 보시는 분들이라면 ‘따따’를 기억하시겠지요? 지난 4월 9일자 하루소식에 ‘동남아시아 ~~’로 시작되는 글의 주인공입니다. 글이 나간 후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아 살짝 2탄을 사람사랑 후원자들 분께만 공개합니다. 아직 내 친구 따따와 아베를 읽지 못하셨다고요? 빨리 하루소식을 검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