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자주 애용하는(?) ‘상임활동가 편지’에 손까지 번쩍 들며 글을 쓰겠다고 자청까지 한 상황임에도 사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경우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의 경우는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 것 같다. 그래서 그중 뭘 써야 할지 난감하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아, 병원비 청구서
모대학병원에 입원 절차를 마치고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원무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시 상의할 게 있으니, 만나서 얘기하자는 것. 잠시 후 원무과에서 만난 직원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비록 의료진이 아니지만, 엄마가 앓고 있는 병의 특징과 증상, 입원기간 등을 소상히 알리면서 보호자인 내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검증(?)해보고 ‘연대보증’을 세우기 위한 서류작성을 요구했다.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아마도 환자와의 관계, 기본적인 인적사항(물론 여기에는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도록 했다)과, 거주지의 보유상태, 승용차 소유 여부 등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약간의 패닉 상태에서 뭔가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순순히 서류를 작성했다. 환자에게 더 이상 물질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 그와 인적 관계로 연결된 사람에게 ‘연대보증’으로 끝까지 경제적 손실분을 채우겠다는 의지의 발현일 텐데... 그 이후로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날아오는 ‘병원비 청구서’는 내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때마침 병원로비에서는 “무상의료”를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농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강보험을 들어도 주단위로 빠져나가는 백만원 단위의 목돈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나,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 사람에게나 분명 쉽게 모을 수 있는 돈은 아니다. 개인의 경제적인 조건에 상관없이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인권’이 구호가 아닌 이토록 삶으로 내 인상에 절실하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을까?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
엄마는 약 한달 간의 급성기 치료를 끝내고 재활전문병원으로 옮겼다. 대학병원에서 약물치료로 두통은 가라앉았지만, 엄마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이라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와서 혼자서는 거동하는 일이 쉽지 않다. 뇌출혈로 인해 죽은 뇌세포를 살릴 순 없고 재활치료로 주변에 있는 뇌세포에게 학습을 시켜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것. 말하자면, 갓난아이가 걸음마를 처음 배우면서 겪게 되는 학습을 환갑이 지난 엄마가 다시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재활치료’ 과정은 환자 본인뿐만이 아닌, 엄마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즉 가족 구성원이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새롭게 엄마와 관계를 맺어야하고,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가사노동을 분담해야 하는데, 사실 이런 과정이 수월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엄마와 친밀한 혹은 의존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초저녁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에게 청소를 하라고 했더니, 쓸만한 물건들을 모두 버리는 바람에 속이 상하다는 것. 그래서 혼냈더니 동생은 문 잠그고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날 동생은 자기 상황에서 아빠와 함께 지내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아빠가 예전에 누리던 것을 그대로 누리면서 자신은 변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엄마가 했던 역할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나는 그 저녁과 새벽, 명치끝 통증을 느끼며 힘겹게 잠을 청해야 했다.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갈등과 긴장 때문에 환자를 비롯해 가족, 친구에게도 재활이 필요하다. 저녁 나절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가면 병원 현관에 크게 붙어있는 글씨를 언제나 마주치게 된다. “넘어지지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이 말은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에게 용기를 주는 말인 것 같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족이나 친구, 친척에게 더 적당한 말인 것 같다.
※추신 : 끝으로 위급하고 어려운 순간에 기도 많이 해준 분들과 용기 잃지 않도록 위로해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