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이하여 추운 겨울날씨에도 불구하고 200명에 가까운 이주민들이 서울 도심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 모였다. 18일 당일이 평일인 관계로 그 전 일요일인 14일 세계 이주민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는데 그날따라 눈이 어찌도 많이 내리던지……. 급한 대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따뜻한 커피와 핫팩을 준비했지만 눈발은 점점 거세어졌다. 하지만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우리의 목소리를 굽힐 수는 없는 법!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오히려 혼인무효소송을 당한 베트남 이주여성에 대한 공정한 판결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담은 집회가 시작되었다. 본국에서 13세에 납치강간을 당해 출산한 아픈 기억이 있는 이 여성은, 한국인 남편과 혼인하면서 출산의 경험이 있음을 통역자에게 고지하였다. 이후 혼인을 하고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하던 중,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두 번이나 성폭행하였고 이로 인해 결혼생활은 파탄 났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강간죄로 구속된 이후 남편은 아내를 상대로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 어릴 적 성폭행의 상처를 안은 이 여성에게 가족의 일원이 가한 성폭력에 이은 남편의 행위는 이 여성에게 심리치료가 필요한 정도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법원은 이 여성이 처한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피지 않았고 남편의 주장을 인정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피해자인 이 여성은 하루아침에 '거짓 혼인한 여성'이 되고 말았다.
이 날 집회에서는 여러 이주여성 단체의 발언과 함께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이주여성과 판사가 등장하는 퍼포먼스까지 함께 어우러졌다. 집회 뒤편에서 이주여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탄원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여고생2명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한국인으로써 이주민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면서 서명을 했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100%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약간씩의 존중과 배려만 있다면 내가 마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심각한 인권침해의 상황까지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이어서 2부 이주노동자대회에서는 각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나와서 현장에서 겪은 문제점들을 증언했다. 그 증언 하나하나가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중에 방글라데시에서 온 후세인(가명)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저희 회사는 합판 공장입니다. 합판 하나의 두께는 20mm ,25mm, 30mm입니다. 무게는 50kg, 60kg, 80kg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접특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합판을 혼자서 기계에 올리거나 내리면서 계속 일을 했습니다. ……과장님이 계속 저에게 나쁜 말을 했습니다. XX놈아, 개XX, 이런 말도 계속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너희 나라로 돌아가 같은 말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일 했습니다.……저는 오후5시에 과장님이 와서 30mm 합판을 빨리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30mm합판 빨리 올리려고 하다가 합판이랑 같이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허리가 다쳤습니다. 아프기 때문에 밤에도 잠을 못 잤습니다.…… 병원까지 허리가 많이 아프니 무거운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쉬라고 약도 제대로 먹으라고 말을 했습니다. 일 때문에 아픈 건데 병원비도 제가 다 냈습니다. 2014-10-20일 월요일 저는 일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사장님한테 아프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도 보여주었습니다. 사장님은 그 병원이 안 좋은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일을 재대로 안하면 나라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일이 힘들어도 일해야 하고 제가 죽어도, 사장님은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거센 눈발을 헤치고 민주노총이 있는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로 행진을 하며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구호를 외쳤다. “We are Labor!", "이주노조 합법화하라”, “퇴직금은 한국에서 달라” 등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정당한 요구들이었다. 우리들이 이 구호를 얼마나 더 외쳐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여전히 우리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고 이주동지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추운 날 열심히 투쟁한 이주동지들과 함께 민주노총에서 즐거운 송년파티가 열렸다. 각 나라 노동자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음식과 술을 마시며 한 해 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잠시나마 잊고 또 내년 한해 싸움을 결의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끝으로 1997년 3월 25일 영화인들의 공동 작업에 의해 조직된, "쌩 베르나르(Saint-Bernard)의 불법이주자들"에 헌사된 회합에서 에티엔 발리바르가 읽었던 글귀 중에 인상 깊었던 문구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난 넉 달 동안 <인권오름>에 기고했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하여 "배제된 자들" 가운데 "배제된 자들"(그리고 분명히 그들만이 유일한 배제된 자들은 아닙니다 )인
불법이주자들은 단순히 희생자들을 형상화하기를 멈추고
민주적 정치의 행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저항과 상상력으로
우리가 민주적 정치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크게 도왔습니다.
진정 우리는 그들에게 이것을 인정할 것을 빚지고 있으며
중단 없이 그들의 편에 최대한 함께 할 것을, 권리와 정의를
그들에게 회복시켜줄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출처] "불법이주자들"에게 우리가 빚지고 있는 것 - 에티엔 발리바르
덧붙임
박진우 님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