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영화제 첫 날, 쉬는 시간을 이용해 영화제 홍보를 하고 돌아오니 이제 막 영화가 시작하고 있었다. '대추리의 전쟁' 제목만 보아도 대충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확장계획 때문에 한동안 들썩였던 평택, 그리고 우리 사회를 보여주겠구나 싶었다. 이 영화, 그리고 뒤이어 상영된 '대추리에 살다' 두 편의 영화는 내가 사랑방 자원활동을 시작하면서 고민했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정치에도 관심 많고, 사회에도 관심이 많은(아니, 그렇다고 생각하는) 내가 매일 '뉴스'를 훑어보면서, 혹은 '집회'에 나가서 그 곳 사람들의 함성에 목소리를 보태면서도 어쨌든 그동안 나는 구경꾼으로만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군기지 확장 이야기가 문제 되기 시작한 즈음이 2004년부터였으니 나는 그 때 중학생이었다. 중학교 때, 존경하던 국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흔히들 이야기 하는 '전교조' 선생님이었고, 정말 '치열하게' 삶을 사시는 분이었다. '나도 꼭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고 생각해 왔는데 스무 살이 되고 나니 그동안 눈과 귀를 닫고 살았구나, 혹은 위선적으로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전까진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얻으려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내 욕심만 채우기 위한 고민을 했었다면, 이제는 좀 더 의미 있는 고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공부방' 자원교사 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방' 하면 아이들을 만나는 게 대부분의 활동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에서만 끝나지 않아서 더더욱 공부방에 이끌렸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만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내가 아이들을 존중해 주는 마음 없이 출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사가 '교사' 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휘두를 수 있는 권위적인 말이나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이 곳이 또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이 보다 더 사는 재미있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는 고민이 나를 새롭게 '사랑방' 이라는 곳으로 이끌리게 한 것 같다.
사회라는 것,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하고 내가 살고 있는 그 곳을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이 즐겁다. 그리고 좋다. 그런데, 정~말 단순 무식할 수 있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5000만 명이라고 하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무언가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해 본 사람이 최소한 1000만 명은 될 것 같고, 그 중에 정말 무언가 시작을 한 사람이 500만 명은 될 테다, 또 그 중에서도 정말 열심히 실천하면서 그 고민을 풀어간 사람이 100만 명은 될 텐데... ㅠ 아직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어줍잖은 지식이나 가지고 있는 내가, 거기다 언제까지 이 마음을 지켜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내가, 사랑방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점 하나 역할이나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지!' '점 하나면 어때?' 가 그 고민의 결론이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사람사랑'에 자원 활동가 편지를 띄우고 있다.^^ 어찌보면 소박한 꿈일지도, 또 어찌보면 거창한 꿈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고민하며 나누며 풀어가며 살고 싶다. 그리고 사랑방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제 그 가치들을 고민하고 나누고 풀어가는 일을 더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참 길을 잘~ 찾아온 것 같다.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