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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상임활동가들에겐 1년에 한 달 동안 휴가가 주어진답니다. 올해에는 이 한 달 휴가를 이용해 친구 한 명과 함께 중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베이징과 함께 중국의 가장 서쪽 지역이자 중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성, 위구르족 자치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는 곳인 신장위구르자치구로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우름치는 베이징에서 가장 빠른 기차로 서쪽으로 40시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카슈가르는 우름치에서 다시 서쪽으로 기차로 24시간 걸리는 거리. 또 타스쿠르간은 카슈가르에서 더 서쪽으로 버스를 타고 6시간을 가야 합니다. 꽤나 먼 거리죠? 이곳은 위구르족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고, 이슬람교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요. 실크로드의 주요한 교역로였기 때문에 역사·문화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한번 떠나볼까요?<Br><Br>
<b>6월 26일</b><Br>
버스를 타고 양떼와 소떼, 말떼들이 풀을 뜯으며 뛰어놀고 있는 대초원과 황무지를 지나 투루판으로 왔다. 이곳은 중국에서도 가장 더운 곳. 해발고도가 해수면보다도 낮은 이곳은 거대한 분지다. 이곳도 우리나라의 제주도처럼 세 가지가 많기로 유명하다. 불, 바람, 모래. 골짜기가 뚜렷이 보이는 높은 산들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없다.<br><img src="http://old.sarangbang.or.kr/kr/saram/151/img/1.jpg" border=0><br>
버스를 타고 오면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신기하고 낯설었다. 지평선 너머로 끝없을 듯한 초원과 황무지, 그리고 다른 한편엔 거대한 산맥들. 한 편으론 시원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황량하고 외롭게 느껴졌다.<Br>
그리고 도착한 투루판. 내리자마자 온몸으로 달려든 뜨거운 바람. 왠일인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버스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황량한 황무지에 불어닥치는 거센 바람으로 가득 찼다. 선선, 아니 서늘하지 않을까 라며 버스 안에서 한 예상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바람이 휘잉 불어왔을 때, 엇!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열풍에 깜짝 놀랐다. 바람이 이렇게 뜨거울 수도 있구나!<Br>
투루판의 바람을 기억할 것. 바람에 대한 기억을 지울 것.<Br><Br>
<b>6월 27일</b><Br>
투루판은 여러 오래된 유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투위고우와 쑤공타에 갔다 왔다. 투위고우는 오래된 위구르인 마을과 세계 이슬람 7대 성지 중 하나인 ‘마자르’, 그리고 수많은 석굴과 벽화들이 있는 천불동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쑤공타는 청나라 당시 위구르족의 왕이 청나라 황실에 ‘충성’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서 바친 탑이었다. 쑤공타 앞에는 당시 위구르족 왕으로 보이는 사람의 거대한 입상도 서있었다. 쑤공타는 탑이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긴 하지만 별로 볼거리는 없어 사실 멀리서만 보고 들어가지도 않았다. 입장료도 만만치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맹랑한 의문 하나.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것 같은 투위고우는 유물 유지와 관련된 관리조차 제대로 안되고 방치되어 있는 듯한데 비해, 별로 볼 것도 없는 쑤공타는 왜그리 관리가 잘 되고 있고 관광객들도 많던지. 심지어 입장료도 쑤공타가 더 비쌌다! 도대체 왜 그럴까?<Br>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위구르족에 대한 한족의 음모론(경내 선배가 좋아하겠군~)’이었다. 투위고우는 위구르족의 역사와 문화인데다 마자르는 이슬람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족 중심인 중국 정부로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곳일 수 있다. 신장의 위구르족들은 최근까지도 ‘이슬람해방당’을 건설해 분리·독립운동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쑤공타는 당시 위구르족왕이 청나라 황상에 ‘충성’을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오랑캐’와 관련된 교육 소재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쑤공타는 초중고등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올 법한 여러 교육용 문화유적지로 활용되고 있는 듯했다. <Br>
게다가 투루판의 중국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족이었다. 반면 은행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위구르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어(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고 위구르어만 할 줄 아는 위구르인들을 위해 보안(우리나라 은행에서 경비와 도우미를 동시에 하는 아저씨와 같은 역할을 하는)만은 위구르인이 하고 있었다. 한족들은 ‘데스크’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나마 한 명 있는 위구르인은 ‘경비’였다.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모습을 이곳의 위구르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바라보고 있을까?<Br>
실제로 최근까지도 이곳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는 위구르 독립세력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3월 쯤엔 중국 중앙정부 공안에 의해 위구르 독립세력들이 대거 검거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불만(혹은 저항...)으로 위구르 독립세력 중 한 명이 지난 6월 초에 천안문에 걸려있는 거대한 마오쩌둥 그림에 염산을 던져 항의를 표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과연 지난 번에 본 천안문의 마오쩌둥 그림은 왠지 이전과 조금 달라보였다.(조금 더 젋어보이는 마오...^^;)<Br><Br>
<b>6월 30일</b><Br>
카슈가르는 확실히 신장의 다른 지역과도 다른 것 같다. 중국에는 “不到喀什 不算到新疆(카슈가르에 오지 않고서는 신장에 왔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카슈가르는 정말 이슬람과 중앙아시아의 냄새가 확 풍긴다. 이곳엔 위구르족과 한족뿐만 아니라 타지크족 등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골목들은 카슈가르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자전거 패달의 동력을 이용해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칼을 가는 사람, 거리에 널려있는 양고기들, 놋쇠를 때려 주전자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악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에서 저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저렇게 살아온 것일까? 여기 나이든 할아버지들을 보면 그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img src="http://old.sarangbang.or.kr/kr/saram/151/img/2.jpg" border=0 align=left><br>
<b>◎ 카슈가르에서 주의할 점 </b><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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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구르족 식당과 시장 등에서는 술, 담배를 하면 안된다.<Br>
<2> 위구르족 식당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Br>
<3> 히잡이나 부르카를 쓴 여성들이 많다.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다.(길을 물어서도 안되는 걸까?)<Br>
<4> 중국이라고 한어(중국어)가 잘 통할 거라고 짐작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호텔에서도 한어가 잘 안통한다.<Br>
<5> 이슬람사원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되고, 사원에 들어가더라도 지역의 규율(local moralities)을 따라야 한다.(근데 그게 뭔진 구체적으로 안나와 있다. 즉, 나도 뭘 따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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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7월 2일</b><Br>
카슈가르는 중국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이곳은 역사적으로 이곳 신장 지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카슈가르는 중국 중앙정부로서도 영토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Br>
카슈가르의 구시가지를 벗어나 신시가지 쪽으로 가면 그 중심지역에 ‘인민광장’이 있다. 그리고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을 그대로 본뜬 것 같은 인민광장의 길 건너편에는 거대한 마오쩌뚱의 입상이 서있다. 날씨가 덥고 햇볕이 따가워서인지 광장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마오 상 주변 역시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어서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꽤나 아이러니컬하고 심지어 그로테스크해보이기까지 하는 카슈가르의 인민광장. 마오는 무슨 생각을 하며 저기 서있는 걸까? 이곳 위구르인들은 저 거대한 마오 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Br>
인민광장 옆에 있는 신화서점에 들어갔더니 서점 입구 왼쪽에는 한어(중국어)책과 함께 한족들이, 오른쪽에는 위구르어책과 함께 위구르인들이 있었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서점처럼 책도 사람도 분리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서서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통합’이라는 말의 아득함이 느껴졌다. 민족주의의 폐해를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민족과 상관없이 함께 어울려 살 수는 없는 걸까?<Br><Br>
<b>7월 3일</b><Br>
중국의 가장 서쪽 변방 지역인 타스쿠르간에 왔다. 만년설로 덮인 해발 7천미터의 봉우리를 바로 옆에 끼고 넘어오면 해발 3천2백미터인 파미르고원 위에 자리한 도시가 바로 타스쿠르간. 타스쿠르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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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도가 높아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가 곤란하다. 열 걸음을 채 걷기 전에 이내 숨이 차다.<Br>
<2> 한여름인 7월에다가 사막을 끼고 있는 신장성에 있는 도시이지만, 이곳의 바람은 선선하다. 심지어 조금 춥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팔옷을 입고 있다. 햇볕은 따갑고 강렬하다.<Br>
<3> 도시 어느 곳에서든지 만년설로 덮인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아침해에 비친 만년설 봉우리와 강렬한 햇빛의 낮시간에 본 만년설 봉우리, 저녁 해질녘에 본 만년설 봉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이다.<Br>
<4> 중국 중앙정부는 중국 국내에서 시차를 인정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베이징시간을 적용한다. 이곳은 실제로는 베이징과 2~3시간 정도 시차가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베이징시간을 적용하는데, 그래서 밤 11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Br>
<5> 이곳은 고원지대라서 날씨가 변화무쌍한 편이다. 맑은 날은 코발트 블루빛의 하늘을 볼 수 있고, 흐린 날은 손에 잡힐 듯한 구름을 볼 수 있다.<Br>
<6> 밤늦은 시간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까만 하늘에 빼곡이 박혀있던 수많은 별들. 그 별들만 보고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경북 봉화 시골에서 본 밤하늘 이후 처음으로 본 빼곡한 별들의 모습이었다. 그 별들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었구나...<Br>
<7> 파미르고원 넓게 펼쳐진 초원과 그 위를 뛰어다니는 소, 당나귀, 양들. 그리고 순진하고 귀여운 타스쿠르간 아이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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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인천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이번 중국여행에서 계획했던 모든 것을 잘 해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여행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때 조언을 주신 아버지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고자 합니다. “여행의 의미에 대해 지금 당장은 잘 모르더라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정신 속으로 녹아들어가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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