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티벳에서 무서운 이야기들이 전해오더군요. 티벳의 자치와 독립을 주장하는 많은 티벳인들이 시위 중에 죽기도 하고 잡혀가기도 했다는 소식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는 사람들이 많긴 한데, 경찰이나 군인들이 총을 쏘거나 하지는 않아요. 또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승려들을 절에 가두기도 했다는데, 많이 무서웠겠어요. 최근엔 분위기가 좀 어떤가요? 아마도 많이들 두려워하고 주눅 들어 있겠죠. 물론 여전히 그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티벳인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자치지역에 갔던 때가 생각났어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아름다운 이슬람 도시였지만, 이슬람 사원 옆에 있던 어느 관공서에선가 ‘이슬람해방당을 몰아내고 사회안정 이룩하자’와 같은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더군요. 그제서야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지역 주민들이 대부분 위구르어를 사용하는 위구르인들이었지만 은행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한족들이었죠. 은행에는 위구르인이 딱 한 명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바로 은행 경비를 책임지는 ‘공안’이었어요. 한어(‘중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많은 위구르인들을 위해 그는 통역 업무까지 책임지고 있었죠. 호텔에 가도 데스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족들. 청소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구르인들이었어요. 몇 천 년 된 도시에서 터를 잡고 오래 살아왔던 터라 오래되고 낡은 도시에서 사는 것도 위구르인들의 몫이었는데, 한족들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은 어김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신도시더라고요. 중국에서 가장 큰 마오쩌둥 동상 중 하나라는 그 거대한 동상 옆에 있던 대형 서점은 위구르어로 된 책이 있는 구역과 한어로 된 책이 있는 구역으로 정확하게 반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상대적으로 한산한 ‘한어책 구역’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던 ‘위구르어책 구역’의 사이 가운데에서 난 평등과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고작 며칠 왔다갈 나 같은 이방인들의 눈에 비치는 ‘고작 이 정도의’ 차별이 현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커다란 일일까요. 그 때부터였어요.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보호정책을 실시하고 소수민족 자치정부를 통해 소수민족들의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힘쓴다고 하지만, 사실은 더 큰 차별이 생활 깊숙한 곳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이슬람해방당’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어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위구르 청년들이 왜 이슬람해방당 활동을 위험을 무릅쓰고 하게 되는지 조금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번에 시위에 나선 티벳인들도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어떠한 정치적인 구호보다도, 생활 깊숙이 베여있는 차별을 티벳인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 최근에 라싸에 갔다 온 후, 뭔가 신성한 느낌이 나는 티벳 문화 대신 중국의 다른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돈냄새’만 맡고 왔다는 말을 하더군요. 자신들이 지키고 싶은 문화들이 점점 파괴되어가는 걸 삶 속에서 지켜보고 있는 티벳인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독립이냐 자치냐’,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등을 논의하는 동안 티벳인들은 차별받지 않고 자신들의 민주적인 의사 구조에 따라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결정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겠죠. 이는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인권의 가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티벳인들의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하고 싶어요. 독립인지 자치인지, 폭력인지 비폭력인지 등은 지금 당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티벳인들이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직접 토론하고 선택한다면, 그 과정 자체가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티벳 사회를 건설하는 길이 되겠지요.
지난 4월 27일에는 서울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가 있었습니다. 대규모의 ‘성화봉송환영단’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더라고요. 나는 ‘티벳의 평화를 위한 평화의 성화 봉송 행사’에 참가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우리는 ‘성화봉송환영단’들과 별다른 충돌 없이 행사를 무사히 끝냈습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티벳의 평화를 기원했지요. 그런데 그날 저녁 뉴스를 보니 ‘성화봉송환영단’의 일부 중국인들이 한국의 어떤 시위대들과 경찰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마치 한국에 있는 모든 중국인 유학생이 문제를 일으킨 주체인 마냥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더군요.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한국 사람이 시위를 해도 종종 그런 식으로 마녀사냥을 하곤 합니다. 시위를 하면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의 문제를 모든 ‘중국인 유학생’들의 문제인양 과장해서도 안 됩니다. 문제의 해결은 마녀사냥이나 처벌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티벳인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어떤 시위 현장에서는 전혀 충돌이 없었는데, 어떤 시위 현장에서는 왜 충돌이 있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는 한국인들과 중국인들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극단적으로 폭력이라는 방법으로 충돌이 표출된 걸까요? 시위의 내용이었던 ‘티벳 문제’보다 ‘폭력’과 ‘중국’에 대해서 논란이 지나치게 과잉되었던 것은 또 왜였을까요? 나는 이번 기회에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그와 그리 다르지 않은 한국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해 함께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날 ‘성화봉송환영단’들이 단체로 입은 티셔츠에는 “올림픽≠정치”라는 내용과 함께 “하나의 올림픽, 하나의 중국”이라는 구호가 쓰여 있었어요. ‘올림픽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내용이 너무나도 정치적인 내용과 나란히 있어 우습기도 했습니다. 민족주의는 정치이데올로기입니다. 모든 민족주의는 정치적인 것이죠.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불길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티벳인들이 더 걱정스러워졌습니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차별에 저항하고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티벳인들의 시위를 불법적이고 분열적인 폭도들의 행위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중화민족의 부흥’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티벳을 거론하며 중국을 비난하는 프랑스, 미국 등과 같은 서구의 많은 나라들을 역으로 비판하는 중국인들도 많더군요. 그래요. 프랑스, 미국 등과 같은 반인권적인 정부가 티벳을 지지한다고 하며 중국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역겨운 짓이죠. 정말 가끔씩은 그러는 게 꼴보기 싫어서 티벳 문제에 입을 다물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자기만 고상한 척 하는 서구 국가들에 대한 비판이 중국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한 옹호로 이어져서는 곤란합니다. 60여 년 전에 중국의 인민들이 서구 열강들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중국 인민들의 자치-독립을 획득하고 나라를 세웠던 것처럼 티벳인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들에 함께 저항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티벳인들에 대한 차별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티벳인들의 자치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등을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할 거예요. 그런 게 중국이 생각하는 사회주의가 아닌가요?
멀리서 큰 힘이 되지 못해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티벳인들을 지켜보고 있어요. 티벳에 평화와 인권이 깃들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좀더 지혜롭게 나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은 힘이나마 응원하고 있을게요.
2008년 5월
서울에서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