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전태일의 삶을 곱씹을 때가 있다. 그는 내 영혼을 맑히며 처음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이 일기 구절만큼 나를 아프게 질책하는 것도 없었다. 전태일은 내게 세상을 바꾸는 근원적인 힘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일깨우고 확신하게 했다.
그 후로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나를 드러내는 등의 ‘불순한’ 것이 섞이지 않고 그 일을 하는 이유만 남아야 한다고 다짐했으며, 이 생각을 실천하려고 자못 비장하게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또한 진심으로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가족이나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건 아닌 듯하다.
초등학생이 읽는 신문에 기사 쓸 일이 있어 둘째조카에게 연락한 일이 있다. 막 중학생이 되었으니 초등학교 때 기억이 남아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마침 녀석이 메신저도 켜놓아서 이것저것 기사에 필요한 것을 물었다. 녀석의 대답은 한결같이 “모르는뎅--;;;”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녀석은 풀이 죽어갔다. 제 오빠와 주로 통화하던 내가 모처럼 자기에게 연달아 질문을 하는데, 답변이 궁색하니 그랬을 것이다. 녀석은 생각해보고 좀 있다 말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다.
그날 결국 나는 큰조카에게서 기사에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둘째조카 말대로 30분 뒤 전화했는데 때마침 큰조카가 받았다. 마감 시간도 있고, 조금 전 상황으로 봐서 둘째조카에게서 그럴 듯한 답변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아 그냥 큰조카에게 물었던 것이다.
기사를 넘기고 드러누웠을 때에야 둘째조카가 눈에 밟혔다. 녀석이 서운해했겠단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이다. 인터넷에서 한참 자료를 찾고 있는데, 제 오빠와 내가 통화하는 소리를 옆에서 들었을 때 녀석은 얼마나 허탈했을까.
이런 사소한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내가 인권이니 진심이니 말하고 자빠졌다니. 어둠 속에서 괜스레 천장을 야려보았던 기억이 난다. 가족이나 절친한 지인들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인권이니 진심이니 하는, 밖에선 진지하게 외쳤던 것들이 날아가 버리는 건 왜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런데 정말 나는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