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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거리를 걸으며 짧은 생각

거리에는 백화점들이 휘황찬란한 불을 밝혔습니다. 수천 개의 전구가 화려하게 빛나는 건물 안에 수천 개의 욕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의 지하도에서는 배낭을 베고 누워 차가운 공기를 박스로 몰아냅니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면 어김없이 청춘은 높은 아파트에서 중력에 몸을 맡깁니다. 노동자들은 화학약품에 죽어가거나 천막을 치고 존엄을 위해 버티고 있고 가스가 끊긴 집에서는 이불 밑에서 몸이 오그라듭니다. 전기가 끊겨서 켠 촛불은 넘어지면서 생명도 같이 넘어뜨리고, 바다생명들은 검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임당하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굳이 이 지면을 낭비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으니까요.

어렵습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인간의 고통, 생명에 대한 공격들을 한꺼번에 풀어버릴 마법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애시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나의 힘은 미약해 보이기만 한데요.

당장 내가 해결해야 하고 아등바등하며 낑낑대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만으로도 짐은 무겁습니다. 가족 중 아픈 이가 있어서 일을 해서 병원비 내기만도 버겁습니다. 빌린 돈에 이자는 점점 붙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학생딱지는 예전에 땠지만, 오늘도 자격증, 공무원 책을 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독서실로 향합니다. 일터에서의 노동은 힘이 들거나 짜증이 나고 문득 문득‘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엄습하며 멍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늙어서 벌이가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아가나?’를 걱정하며 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런 마당에 남는 힘이 없거니와, 저 위의 무거운 풍경들은 나의 힘이 미치는 곳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위의 풍경들과 나의 문제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만의 문제인가?, 나와 너 우리 모두가 겪는 문제인가?’ 입니다. 투표 한번으로 이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경험으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연대를 복원합시다. 나를 둘러싼 문제와 내 밖에 있다고 여겨지는 문제들. 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들은 어느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닙니다. 연대 속에서 힘을 합치고 함께 하는 행동으로 거대하게 밀려오는 반대의 파도를 함께 맞으며 극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집회 한번 나간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늘 하룻밤 사이에 해결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생존하면서 준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