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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1997

9월에는 ‘내 인생의 1997’을 아그대다그대 이야기합니다.

ㅎㅊ
1997년 그해 햇살이 따스했던 봄날에 찾아온 그이는 내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봤던 친구가 새롭게 보인 건 아마도 그 따사로운 햇살 속에 설레이던 풋사랑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진부한 러브스토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해 봄날엔 오락실에서 게임하다가 중간고사를 띵쳐서 몇날 며칠동안 학교에서 맞았다ㅋㅋㅋ 아! 2학기 중간고사 때인가 컨닝을 너무 심하게 해서 성적이 300등 정도 오른 바람에 그 다음 시험에 300등 떨어져서 또 한 일주일 맞았다ㅋㅋㅋㅋ 뭐 그땐 학교에 진짜 맞으러 다녔다. 숙제 안해서 맞고, 친구들이랑 도박하다 걸려서 맞고, 복도 뛴다고 맞고, 성적 떨어진다고 맞고, 단체로 맞고;; 아 정말 뭐 이러지ㅠㅠ


바람소리
1997년은 20대의 열정을 한창 뽐내던 시기였지요. 연일 투쟁에, 지방출장에, 학습에... 그때도 대선이 있어서 더욱 정신이 없었지요. 장염으로 아픈 배를 꾹꾹 누르며 활동하던, 잠은 기차에서 겨우 자던 시절이었지만 그 시기가 좋았던 것은 '무언가를 향한 열정의 꽃봉오리'가 톡톡 피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돌진
1997년 여름 방학 때 유럽여행을 갔다 왔어요. 당시로서는 꽤나 '선도적인' 여행이었는데(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많이 남아요. 나름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갔다 왔는데,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여행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여러 나라를 많이 다니긴 다녔는데,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는 잘... 아, 몇 가지는 얻었네요. 유럽은 멋있는 곳이긴 하지만, 그 멋있는 것도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다 거기서 거기다.(무식해서..;;) 그리고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다시 여행을 간다면 유럽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좋은 점은 하나 있어요. 유럽 얘기 나오면 거기 갔다왔다고 잘난 척 할 수 있는 거.ㅋㅋ 아, 여행가고 싶다. 유럽 아닌 다른 곳으로.



1997년에 전 교복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고입시험을 봐야했던 중3이었어요. 그 당시 경기도는 비평준화였고, 성적이 안돼 원서를 넣은 학교를 떨어지면 야간고등학교를 다녀야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당락이 결정되는 시험이라는 것을 처음 보는 것이어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 시기 짝사랑으로 힘들어했던 단짝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예고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짝사랑하는 같은반 친구에게 고백을 할까말까를 많이 고민했지요. 중요한 시기니 좀만 기다렸다가 시험 치르고 고백을 하면 좋겠다고 말렸는데, 결국 어느 날 고백을 했다가 거절을 당했네요. 많이 슬프고 속상했을 텐데 전 친구가 제 말을 듣지 않았다는 서운함과 화남으로 절교(-_-:)를 했어요. 참 못됐지요. 운동장 구령대며, 학교 뒷산이며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왜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을까요? '친구'라는 관계를 제가 일방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문득문득 그 친구가 생각납니다.


승은
2회 인권영화제 하느라 엄청 고생한 기억만 생각난다. 그 이후 당시 서준식 대표님이 연행, 구속되고 보석으로 나오기까지 3개월 동안 우울하게 사무실을 지켰던 것 같다.


초코파이
1997년은 단대 학생회 선거 선본장으로 시작해 총학 선거, 국민승리21 선본까지 이어지는 선거의 해로 기억된다. 세 선거에서 총학을 제외하고는 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각 선거마다 나름 의미가 있었다. 그중에 국민승리21의 결성은 진보정당을 꿈꾸던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희망의 한 걸음이었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와 진보정의당이라는 이름의 새 정당, 그리고 성폭력 사태에 둔감하고 조직보위만 내세우는 진보신당까지... '변혁, 진보'만 이야기하면 진보정당인 것처럼 마스터베이션(자위)하는 지금에서 새벽부터 지역을 돌며 보냈던 그 당시의 추억에 씁쓸함을 더한다.


정록
↖↖초코 뻥치지마. 내가 97년 총학선거 뛰었는데, 떨어졌거든. 추운 와이셔츠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