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은 8월 공대위 발족 소식은 물론, 최근 일본정부가 한국 거주 원폭피해자들에게도 자국의 법률을 적용해 피폭자 건강관리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소식까지 함께 다루면서 ‘원폭2세’, 그 중에서도 방사능에 의한 원폭후유증의 유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원폭2세환우’들의 존재를 알려내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공대위가 닻을 올리기까지
<인권하루소식>이 원폭2세 문제를 알게 된 것은 6월초 무렵이었다. 취재하느라 정신없던 오후, 한 남자가 사무실 문을 들어섰다. ‘깡마르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아주 작은 체구의 남자였다. 그래서였나. 콧등에 걸린 안경이 유난히 커 보이고 등짝에 붙은 커다란 가방이 유난히 버거워 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커다란 가방에 가득 담긴 자료들을 펴놓은 뒤, 마른기침을 연신 쏟아내면서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름 김형률, 키 163cm, 몸무게 37Kg, 폐 기능 70% 작동 중지. 원폭2세인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45년 히로시마에 거주하다 피폭된 그의 어머니는 평생을 악성종양과 피부병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형제들 중 그만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니다. 그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 동생도 태어난 지 1년 6개월만에 폐렴에 걸려 죽었으니 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선천적인 면역 체계의 결핍으로 유년 시절을 갖은 병치레로 보내야 했고, 지금도 계속 재발하는 폐렴으로 병원과 집을 오가며 병마와 씨름하고 있다.
서서히 죽어가는 몸! 하지만 병원비 걱정에 맘껏 아플 수도 없는 그는 이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원폭2세환우들의 문제라는 사실에 눈뜨고 지난해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원폭피해자의 자식이라는 낙인, 원폭후유증 ‘환자'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에도 그가 비로소 입을 열기까지에는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힘겨운 고난이 버티고 있었다. 처음엔 원폭2세 문제를 제기하는 데 반대했던 부모님도 죽어가는 자식의 호소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후 그는 힘겨운 몸을 이끌고 서울의 인권사회단체들을 돌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다녔다. 그 결과 비록 9개라는 적은 수의 단체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에 공감한 단체들이 모여 8월 5일 공식적으로 공동대책위를 결성하고, ‘원폭2세환우’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적 책임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시키기에 이른다.
원폭2세환우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현재 김형률 씨처럼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들은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돼 한국으로 귀국한 원폭피해자들이 약 2만3천명. 이들이 평균 3.5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보면, 약 8만여명의 원폭2세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 중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환우’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90년과 이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원폭1세 응답자의 41.1%가 1명 이상의 자녀에게 원폭후유증이 있다고 답했고, 4자녀 이상이 원폭후유증을 앓는다고 응답한 사람도 무려 23.6%에 달했던 점을 미루어볼 때, 원폭2세환우들의 존재가 상당수에 달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원폭2세환우들은 결혼이나 취업, 일상생활 등에서의 차별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김형률 씨의 사례와 80년대 중반 원폭피해자 가정을 방문해 2세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담은 『핵의 아이들』에 담긴 21명의 사례를 통해 원폭2세환우들의 삶을 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혈액장애(백혈병, 빈혈 등), 성장발육 장애, 정신질환 등 원폭후유증은 이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들의 것으로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1세들의 경우에도 일본 정부가 몇 차례 내놓은 인도적 지원금으로 제한적인 범위의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떠한 국가적 지원도 받지 못해왔다. 지난해 원폭1세 곽귀훈 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리함에 따라, 일본 국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내달부터 원호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피폭자 수당조차도 원폭2세의 존재는 전혀 고려에 넣지 않고 있다.
원폭후유증, 대물림되나
방사능 피해의 유전성은 최근까지 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지 못했다. 다만 2차대전에 참전했다 피폭된 미군이나 일본의 피폭자들, 86년 체르노빌 발전소 폭파 피해자들, 걸프전 참전군인들의 2세들 가운데 기형아 발생률이나 발암률, 희귀질환 등이 높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유전 가능성이 의심되어 왔을 뿐이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해 5월 영국과 미국 과학자들이 쥐 실험을 통해 ‘방사능 노출로 나타난 돌연변이가 3대까지 유전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원폭후유증이 유전된다는 주장이 더욱 신빙성이 높아졌다.
한국 정부의 책임, 왜 물어야 하나
원폭2세환우 공대위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은 이 문제에서 한국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의 궁극적인 책임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과 원폭이라는 대량학살무기를 투하한 미국에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할 당시 이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고, 90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에 지원금을 요청하면서 한국 역시 동일한 액수의 지원을 약속했으나 그마저도 이행하지 않았다. 나아가 특수하고도 심각한 질병으로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없는 원폭후유증 환자들의 상태를 방치한 것은 국민의 건강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야 할 정부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8월 6일을 기억한다는 것
원폭2세환우 공대위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8월 6일에 맞추어 발족식을 가졌다. 반면 대부분의 방송과 신문들이 이 문제를 조금씩이라도 다룬 것은 8월 15일을 앞두고서였다. 원폭문제를 제기할 때 8월 6일을 기억한다는 것과 15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6일이 전쟁과 대량살상무기의 참혹함과 핵 없는 세상에 대한 바람을 되새기는 날이고 그래서 미국과 일본 정부 모두에게 불편한 날이라면, 15일은 제국주의의 광폭함을 되새기는 날이지만 미국 정부에게는 오히려 ‘해방자’를 자처할 수 있는 날이다. 원폭2세환우 문제는 단지 ‘반일’(反日), ‘역사 청산’의 문제로서만 접근되어서는 안되며, ‘반제국주의’, ‘반핵’. ‘반전평화’, ‘반-대량학살무기’의 시각을 동시에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8월 6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가치를 지닌다.
김형률이란 존재의 의미
원폭2세환우 문제의 핵심 동력은 김형률 씨로부터 나온다. 그가 단체들을 불러 세웠다. 원폭 문제에 그 누구보다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가 바로 그다. 그럼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멀리 서울까지 올라와 공대위 발족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후 그는 좀처럼 병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항생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 때문인지 요즘 새벽녘이면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기침과 가래로 잠을 설치다 지쳐 쓰러지곤 한다는 그는 부산대 병원 병상을 벗어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살아남아야 이 운동도 산다. 그가 살아남아야 다른 원폭2세환우들도 양지로 나올 수 있다.
<알립니다>
원폭 2세 환우 치료비 지원을 위한 후원계좌
국민은행 463501 - 01 - 044188 / 예금주 강주성 (원폭2세환우공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