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인권영화제 정기상영회 반딧불은 봉천동의 국지놀이터에서 열렸다. 4월부터 9월까지 봉천동의 국지 놀이터에서 매달 한 번씩 열리는 ‘놀이터 작은 영화제’와 함께 한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인권 교육팀이 두리하나 공부방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알게 된 ‘놀이터 작은 영화제’는 봉천동에서는 제법 유명한 행사이다. 두리하나 공부방 선생님들과 빛그림동화를 준비하는 어머니들의 모임인 ‘꼬마소리’, 그리고 차량 지원이나 사탕 같은 간식을 준비해주시는 동네 이웃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작은 영화제가 어느덧 3년째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높은 지역의 빼곡하게 들어선 연립주택들 속에서 놀이터 영화제가 열리는 ‘국지 놀이터’는 숲이 우거진 아늑한 곳에 들어서있다. 아래층과 위층이 계단으로 연결된 구조여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놀이터 위층은 돗자리나 벤치에 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야외극장이 되고, 아래층은 영화가 지루한 아이들의 그야말로 신나는 놀이터가 된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많이 찾아오는 놀이터 영화제에서는 이렇게 놀이와 영화가 스스럼없이 어우러진다. 아이들은 지루한 영화를 꾹 참고 보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엄마에게 하고 싶은 궁금한 질문들을 참지 않아도 된다. 미끄럼과 그네 타는 재미가 조금 시들해진다면 언제든 다시 영화로 돌아올 수도 있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오는 부모님들도 많지만, 놀이터 영화제의 주된 관객은 다섯 살, 여섯 살 또래의 어린 아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생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 영화제는 동네 어머니들이 읽어주는 빛그림 동화로 시작된다. 또 <피터팬>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프레드릭 벡의 애니메이션과 같이 아이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위주로 상영한다. ‘좋은 영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어린이들에게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그것이 어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유익한’ 영화일수록 더더욱 아이들에게는 외면받기 일쑤다.
올해 인권영화제 상영작이었던 <나의 혈육 My Flesh and Blood>(조나단 카쉬, 2003, 미국)을 상영하기로 한 후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조금만 화면이 단조로워도 바로 놀이터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눈을 붙들어두기에 11명의 장애 아동들이 모인 가족의 이야기는 조금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반딧불과 놀이터 작은 영화제의 만남에서는 영화 상영보다 부대 행사가 더욱 중요했다. 부대행사는 ?장애를 가진 친구와 친구하기?라는 주제로, 수화로 노래 배우기와 장애 인권을 다시 생각해보는 사진슬라이드 보기로 이루어졌다. '빛그림동화'에서도 다운 증후군에 걸린 동생의 이야기를 다룬 <내 동생 아영이>를 함께 보았고, 아래층 놀이터의 한쪽 담벼락에는 '장애인들과 친구되기'를 약속하는 손바닥 도장 찍기를 할 수 있도록 물감과 커다란 천을 준비해두었다. 영화가 재미없어 놀이터를 찾은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장애를 가진 친구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예정에 없던 '아콤다 '의 흥겨운 노래와 연주는 놀이터 공간을 금새 한 여름밤의 축제로 만들어주었다.
신나는 부대행사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하자, 달려드는 모기들, 아래층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 피부가 벗겨지는 질병과 화상을 입어 얼굴이 일그러진 아이들이 화면에 나타날 때 관객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조그만 탄식, 그리고 영화의 내용을 딸아이에게 이야기해주는 엄마의 나지막한 설명까지, 놀이터는 여느 극장이나 상영 공간에서 볼 수 없는 푸근한 풍경들로 가득 채워졌다.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자리를 뜨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남아 진지하게 영화를 보는 아이들과 어른들도 많았다.
피부가 벗겨지는 질병 때문에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어야 하고, 손가락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가느다란 팔목으로 물건을 잡아야 하는 영화 속의 소년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게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화면 속의 소녀를 보면서 어른들은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와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가면서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아래층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마치 엄숙한 의식을 행하듯 남겨놓은 손바닥 도장을 보면서, 앞으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 도와주고, 그들에게 거리를 두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진지한 '약속'을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사실 준비하면서 우려했던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서 영화를 보았고, 수화 배우기나 장애인 친구와 친구하기를 약속하는 손바닥 도장 찍기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물론, (여느 때의 놀이터 작은 영화제의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반딧불과 놀이터 영화제의 만남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두리하나 공부방에서 3년째 열어가는 놀이터 영화제가 가진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놀이터 영화제의 관객들이 재미있는 영화뿐만 아니라 조금 지루하더라도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는 놀이터 영화제가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온 시간과 경험의 힘이었을 것이다.
놀이터에 '영화'를 보러 가는 아이들, 매달 마지막 주말이면 음료수와 간식, 수건을 담은 커다란 가방을 메고 놀이터로 모여드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그 이상의 공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놀이터 작은 영화제와 함께 한 7월의 반딧불은, 인권영화제 정기상영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관객에게 밀착된 부대행사를 기획하고 교육 활동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해준 좋은 시간이었다. 상영하는 작품의 내용만 소수자나 대안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배급과 상영에 있어서도 그래야 한다는 대안 상영의 원칙이 반딧불에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