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인간의 힘을 믿는다.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그럴 수 있는 힘’을 믿는다. 그래서 그 인간이 가진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려 한다.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어떤 억압과 차별에 의해서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슬을 너와 나 우리 모두와 함께 끊어냄으로써 자유와 평등 해방과 변혁의 길을 만들어 간다. 인권운동은 그 인간해방의 길에 끝없이 누가 인간인가를 묻는다. 누구의 시각으로 인간-되기를 만드는가. 보편성의 이름으로 관리되는 예외의 존재들을 항상적으로 살피고 나아가 죽어서도 하늘과 땅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유령들을 추모한다. 그리고 그 발걸음에서 모든 생명의 존엄에 대한 메아리를 뒤 돌아본다. 인간만을 위한 휴머니즘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비휴머니즘을 생각한다.
그래서 소금인형은 인권운동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소금인형은 인권운동사랑방의 상임활동가 신청을 하면서 바다에 기꺼이 들어가는 숙명을 생각했다. 바다는 모두를 위한 하나가 아닌 하나를 위한 모두의 보편이며 끝없이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는 물결이다. 바다는 상품- 화폐질서 속에서 다른 사람을 이겨야 내가 살아남는 질서를 녹여내는 파도의 울림이다. 그리고 바다는 무의식과 의식이 남근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는 잉여-인간의 시공간이다. 그 바다의 시공간이 인권운동가가 걸어 가야할 길이며 준비된 유토피아를 그려나가는 꿈꾸는 리얼리스트의 운명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야기하는 자본의 합리적 폭력성을 넘어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인간임을 선언하는, 그래서 누구나 인간-되기를 상상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인권운동가가 되고자 한다. 강자와의 동일시도, 강자에 대한 선망도 지양하며 적대를 마주하고 나와 내가 밟고 있는 땅과 그 땅위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연대를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로서 만들어가고 싶다.
사랑. 노동. 지식. 인권운동가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세 가지 키워드이다. 사랑. 남근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하는 사회 속에서 끝없이 성적 상품을 기계 소비해야 하는 육체와 무의식을 죽음충동으로서 부수는 것이다. 노동. 노동과정에 있어서 나와 너 우리의 자발적인 결정을 만들어 가는 능력을 키우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노동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결정에 있어서 아버지-민족-영웅을 우상으로 우러르는 일방적인 명령과 권위를 거부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지식. 사물의 근원적(radical)인 것에 대한 물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아는 것은 털어놓고 모르는 것은 끌어오는 과정을 통해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그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거부하는 과정을 말이다.
그것을 몸으로 익숙하게 하는 것을 ‘사랑방’이라는 공간에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자 한다. 유토피아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허무주의의 양면일 뿐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것을 몸에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사랑방’이란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반영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그 일상의 해방과 변혁의 꿈틀거림을 바다를 향하는 발걸음으로 한걸음씩 내딛을 것이다. 꿈꾸는 유토피아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외부를 만들어가면서 그 해방과 변혁의 세상을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소금인형은 바다-되기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곧 다가올 그러나 결코 다가올 것 같지 않은 그 바다-되기를 말이다.
전태일 열사의 인용문을 끝으로 자기 소개서를 마치고자 한다. 이 마지막 인용이 ‘지금 여기’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다짐이기에. 인권운동가로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걸음으로 향하는 그 길에 항상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나의 직장, 나의 행위는 분명히 인간 본질을 해치는 하나의 비평화적, 비인간적 행위이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인간을 비인간적인 관계로 상대함을 말한다. 아무리 피고용인이지만 고용인과 같은, 가치적으로 동등한 인간임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물질화 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어떠한 인간의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
ps. 2006년 겨울 면회 온 사랑방 사람들의 눈을 보고 돌아섰을 때, 고마움과 미안함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고마움과 미안함의 느낌을 항상 간직하련다. 그리고 그 느낌을 처음 사랑방의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전해질 수 있도록 이어 가련다. ‘지금, 여기에서’ 말이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