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교육 두 번에 나는 노동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첫 번째 임금 교육은 그 과정에서 두 번째 단계쯤 되는 것 같다.(불행히도, 이 단계에는 끝이 없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노동 조건이나 임금에 대해 큰 불만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별 생각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대충은 ‘만족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인권활동가’로서의 정체성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처음부터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터에서의 문제에 크게 민감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도, 퇴직금...은 먹는 건가요, 가산임금이나 연차휴가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시간제 노동자라는 것도, 해고 제한 사유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도, 3개월에 한 번씩 계약을 갱신한다는 것도 그다지 큰 문제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직장이라는 곳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어느 정도’ 포기하고 나니까 그럴 수 없을 만 한 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원래 그런 거니까. 어차피 당장 바뀔 수도 없고, 내가 바꿀 수도 없고.
하지만 사랑방에서의 임금 교육은 그런 나를 흔들어 놓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근로기준법만 살펴봤을 뿐인데도, 노동을 둘러싼 투쟁이 대단하다 실감했다. 그 투쟁의 역사들이 근로기준법 규정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어떻게 어기면서 악용하고 있는지를 들으면서 오히려 거기라도 가기까지의 노동자 투쟁의 치열함이 가슴에 더 와 닿았다. 그냥 따냈을 리, 그냥 넘어갔을 리 없는 투쟁의 역사. ‘근로시간’만 하더라도 법정근로시간, 연장근로시간, 휴일근로시간, 휴일연장근로시간, 야간근로시간, 이라니. 그 하나하나가 다 노동자들의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들 아닌가. 낮 시간뿐만 아니라 밤에도 일을 하고, 휴일에도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시간제 노동자인 나로서는 당최 접할 수 없었던 말들이기도 했다. 물론 대충 들어본 적은 있으나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 ‘천상의 말’들을 접하면서 한 편으론, 오오 노동-뭔가 대단해 보인다 싶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론 이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방학 때 일을 하면 휴일근로시간이 되는 걸까, 저녁 수업을 하면 야간근로시간이 되는 걸까...어쨌든 법정근로시간이 아닌데 일을 시키면 돈을 더 줘야 된다고 하니까. 하지만 시간제 노동자인 나에게도 이런 게 적용될 수 있을까? 가산임금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연습으로 가산임금을 계산해 보는 시간에도 기를 쓰고 전자계산기를 두드렸다. 마트에서 너저분해 보이지만 한 번쯤 들어봄직한 브랜드의 특별할인 판매대에 달려들 때의 모습처럼.
애초에 포기하고 있었던 퇴직금과 4대 보험에 대해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에서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는 강사의 말에 가슴이 덜컥 했다. 그럼, 우리도 받을 수 있는 건가? 받을 수 있는 건데 사측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 버려 모르고 넘어가고 있었던 것인가! 문제제기라도 해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가슴은 벌써부터 두방망이질치고 있었다. 그러다 잘리면? 아니, ‘잘린다’라고도 할 수 없게 그냥 ‘계약해지’된다면? 그럼 일단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일하다가 언젠가 그만 둘 때쯤 돼서 문제를 제기해볼까? 그 때까지 ‘인권활동가’는 잠시 보류...되는 건가? 뭐 어쨌든.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법적으론 아무 것도 챙길 수 있는 게 없었다! 3개월 계약의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자에겐. 그게 그 ‘똑똑한 사측 놈들’이 가지고 있었던 ‘조우커’ 꽃놀이패였던 것이다. 노동권이고 나발이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는 놈들이다. 하다 못 해 단결할 노동조합조차 없는 노동자인데, 시혜의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일이야.
우아하게 취미처럼 적당히 돈 벌면서 인권운동을 하고자 했던 애초의 순진했던 생각이 처참히 부서져 버렸다. 어느 덧 나는 운동의 조직화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 혼자 뭔가 다른 척했지만, 사실 나도 그 안에서 하등 다를 바 없이 그냥 무수한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다른 모든 사람됨의 개체적 특징은 삭제된 채) 중 익명의 1인에 불과했다. 이름도 없는, 아니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유일한 이름을 가진.
일단, 쥐 죽은 듯 조용히 일하기로 했다.(어울리지 않는 결론이지만.;;) 하지만 이 분노, 짜증, 화는 잊지 않을 거다. 이건 내가 ‘노동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 표식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잊혀지겠지. 하지만 단언컨대, 이 같은 분노, 짜증, 화를 돋우는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다 보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오겠지.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기약할 수도 없다. 약속이나 의지 따위, 나 자신조차 그다지 믿지 않는다. 다만, 그날이 오면.(단 한 가지 기대되는 건, ‘그날’이 나에게만 오지는 않을 거라는...막연한.)
이 자리를 빌어, 멀리서 와서 멋진 교육을 해준 김명수 사랑방 전 활동가(공인노무사)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