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 대한 인권담론을 만들어보겠다며 시작한 임금팀은 요즘 자료 찾아 삼만리입니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고, 그래서 본격적인 임금팀 모임 전에 4차례에 걸쳐 교육도 받았는데 역시 만만치 않네요. ‘누구나 ~권리가 있다’고 선언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는 많은 부분 시장에서, 수입이나 임금을 통해 실현되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인권보장의 의무주체로서 국가의 책임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공적 영역을 갈수록 축소하고 사적 영역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국가의 태도는 권리실현을 위한 우리의 싸움이 거쳐가야할 지난한 과정을 가늠케 합니다. 실제로 권리보장 주체로서 국가의 책임과 의무는 이미 셋팅된 사회시스템 속에서 너무하다 싶은 부분을 무마하거나 돈벌이가 되지 않아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영역을 맡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조직화나 임금에 대한 인권담론을 만드는 작업은 ‘이미 셋팅된 사회시스템’이라는 것을 의문시하고 균열을 내는 것, 그래서 정의로운 사회적 규범을 새롭게 만들어내고자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임금만 해도 그렇잖아요. 자유로운 계약 관계라는 허울 속에 우리는 자신의 스펙으로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임금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계약은 그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물론 그 스펙은 성별, 나이, 학력, 장애 등 사회적 계급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임금이 적어서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넘어서 내가 이 정도 임금만 받는 건 말도 안된다와 같은 임금에 대한 권리의식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게 임금팀의 고민입니다. 임금이라는 일반적인 노동의 대가에 대해 우리가 의문시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죠.
그래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노동운동의 경험을 우리의 문제의식으로 돌아보면 중요한 이야기들을 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특정 기업 노동자들이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이고 임금단체협상을 하는 것으로만 비춰지는 노동운동의 임금투쟁에 대해서 말이죠. 저희가 본 몇 개 안되는 자료에서도 사측은 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임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복장, 근무태도등과 같은 요소를 인사평가에 포함시키고 임금액수에도 차등을 두고 있었던 거죠. 회사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가장 큰 보상기제가 임금차등 또는 승진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한 노무관리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할 때는 항상 임금과 연동되는 사측의 평가관행에 대한 폐지도 요구하게 되었더라구요. 그리고 한국의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에만 몰두하고 노동자 간 평등한 임금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많았는데, 저희가 본 자료에서는 자본가들이 임금 인상은 수용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게 임금체계, 임금지급기준과 같은 것들이었어요. 절대 침해될 수 없는 고유한 경영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노동현장을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거죠. 이것저것 공부해가면서 임금도 참 복잡하구나, 이게 단지 돈문제가 아니라 정말 정치적인 문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에 대한 권리의식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경우에 집단적인 행동에 나서게 될까라는 문제의식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단지 임금수준이나 대우와는 달리 노동자들이 개인을 넘어 다양한 집단행동에 나서게 되는 문턱, 계기의 형성은 의식이나 담론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리고 사랑방이 반월시화공단에서 하는 활동도 결국엔 뿔뿔히 흩어져 있는 노동자들의 결속과 행동이라는 조직화가 과제이다보니까요. 임금에 대한 인권담론이라면 관념적인 의식이나 이론 수준의 논의가 아니라, 조직화와 집단행동의 촉발, 촉매제라는 맥락에서 구성되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아니 생각해보면 인권이라는 권리의식은 원래 그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성과가 별로 없어서 민망하지만, 선선한 바람부는 가을에는 후원인들께 임금에 대한 인권담론을 펼쳐보이겠다는 약속(?)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