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서는 임금팀을 구성해 임금투쟁에 대한 인권적 접근과 그 가능성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작년 말에 ‘노동자에겐 임금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짧은 글로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임금이 생계비, 경제적 권리 정도로 이해되거나 주장되는 현실에서, 노동자가 임금과 관련해 일터에서 어떤 변화를 요구한다면 그건 존엄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변화요구일 것이라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임금에 대한 권리는 액수뿐만 아니라 결정과정, 지급과정 모두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었지요.
이런 고민을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과 나눠보기 위해 올해 월담에서는 ‘임금’을 주요 기획 사업으로 구상하고 임금실태조사부터 임금교실까지 여러 활동들을 펼쳤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임금교실을 3차례 진행했습니다. 사랑방이 고민했던 ‘임금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공단 노동자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노조와 같은 조직이 없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임금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만큼, 큰 어려움 없이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그 다음이었습니다. 급여명세서를 받지 못하고, 달라진 임금액수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도 어려운 상황, 사장실로 불려가 임금에 대해 동의 아닌 동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매일 겪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에 대한 권리의식은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권리가 노동자들의 입에서 외쳐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임금교실에 함께 한 노동자들이 말합니다. ‘언제나 실천이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현장에서 한다는 것은 큰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다 우리 이야기이지만,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노동자들에게 임금에 대한 권리는 유령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임금교실에 함께 하면서 더욱 뚜렷이 느껴지고 의식되지만, 일터에서는 존재를 찾을 수 없는 유령. 특히 공단 노동자들처럼 노동자들의 의견을 모아낼 수 있는 어떤 조직도 없는 상황에서는 눈에 훤히 보이는 팽배한 불만조차도 쉽사리 이야기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단의 임금현실을 바꾸려면 이직을 하거나 잔업 특근을 더 많이 하는 개인적 해결을 넘어서 집단적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당장 다음 주에 있을 부장과의 면담에서 불만을 이야기하면 분명 자기만 임금을 올려줄 것 같다며 고민하는 노동자에게 선뜻 말을 건네기 어려웠습니다.
우리에겐 마땅한 권리가 있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선 사람을 조직하고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금교실에서 공단 노동자들과 만나면서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갖게 됩니다. 권리 따로, 조직 따로, 투쟁 따로가 아니고 쟁취여부를 떠나 권리가 외쳐지고 현실에 실재하기 위해서는 권리가 존재하기 위한 판을 짜야한다는 것.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임금에 대한 권리를 노동자가 입 밖으로 꺼내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 판을 깔고 조건을 만드는 작업을 사랑방, 월담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권리는 정말 실재할 수 있고, 그래서 권리는 원래 있는 게 아니라 조직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은 이미 조직되고 외쳐지는 목소리에 사랑방이 권리, 인권이라는 이름을 붙일 따름이기도 하구요. 소박하지만 임금교실도 그런 아주 작은 판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