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에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인권운동사랑방 풀뿌리 토론이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전국에서 모인 200여 명의 인권선언 추진단 전체회의에 사랑방 활동가들도 여럿 참여했었습니다. 전체 회의 이후 곳곳에서 풀뿌리 토론을 활발히 벌여보자고 했는데, 정작 사랑방 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선언 토론을 미처 못 하고 있었네요. 자원활동가들이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13명의 사랑방 활동가들이 모여 세월호 이후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권리, 인권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토론은 3개의 토론 꼭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날 사랑방 활동가들이 나눴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 드는 느낌/생각’
• 답답하다 / 어떻게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될 수 있지? / 절망감 / 두려움 / 잊혀짐
- 토론이 있었던 10월 24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나는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모여서 활발한 활동을 했음에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크게 달라진 것도 없이 시간만 흐른 채, 세월호가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시간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단체 활동가들에게는 세월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모으고 잘 싸워왔음에도, 바꿔내지 못하는 현실이 주는 두려움, 답답함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 먹먹하다-막막하다 / 산 넘어 산-한 동안 운명을 같이하는
- 세월호 활동에 구체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활동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먹먹함과 막막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활과 삶에 들어온 세월호를 느끼면서 한동안 운명을 같이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2)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던 문제들/순간/장면
• 유가족을 향한 폭력들(혐오발언, 일베 폭식 투쟁, 경찰폭력) / 피해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사회
-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보수단체가 유가족에게 행하는 혐오행동, 언어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경찰폭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던 사랑방 활동가들은 경찰이 유가족을 폭행하거나 감금하는 상황을 목격했던 경험들도 빠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이 정부/언론/보수단체들을 통해서 확산되고, 한 발 떨어진 시민들이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를 피해자로 대하지 않고,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몫까지 요구하는 일반적인 태도, 문화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도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 경기가 안 좋아졌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 / 순수하게 세월호만 이야기하지 정치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반응들 / 조직적인 언론 플레이(배상, 보상금 문제)
- 세월호 싸움이 정치화되었다는 둥, 유가족들이 운동단체에 휘둘린다는 둥의 이야기들은 세월호 싸움 자체가 굉장한 정치투쟁이라는 것을 부정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한편으론 세월호를 경기침체와 연결 지으면서 문제를 호도하거나 사람들의 피로감을 자극하려는 행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 위의 문제들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는 /하고 싶은 /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이런 권리들을 세월호 외에 다른 것들과 연결 지어 설명해봅시다. ‘이런 때 이런 권리가 필요할 듯하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세월호를 통해서 소중함을 느끼게 된 권리, 그리고 그런 권리를 실현하는 게 우리의 다른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들입니다.
• 사회가 ‘피해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
- 온전히 존중받을 권리 :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는 주민들에게 보상 더 받으려고 하는 거라고 하면서 주민들이 왜 그곳을 지키려고 하는지 듣지 않는다. 주민들에게 모욕감을 준다. 주민들의 질문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함께 했던 사람들을 ‘외부세력’이라고 공격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왜곡시킨다.
- 피해자다움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피해자다움이 강요되는 법 제도와 문화.
•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가져야 할 권리들
- 사회적 경험으로서 배상의 선례를 가질 권리 : 우리 사회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배상이 되고 있지만, 그것이 가진 의미는 별로 얘기되지 않은 채 배상이 이루어졌다거나 재심이 이루어진다는 소식만 전해진다. 중요한 계기들을 놓치면서 잊게 되는 것 같다. 간첩사건도 개인이 배상받는 것만이 아니다. 충분히 공유될 필요가 있다.
- 처벌에 대한 권리 :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도 진실과 정의가 보장되었으면 한다. 용서는 처벌에 대한 권리가 있을 때나 가능한 행동이다.
- 문제해결과정에 참여할 권리 : 국책사업. 강정이든 밀양이든 거의 비슷하다. 당사자의 의견이 배제된 상태에서 시작하고, 목소리를 내어 해결하려고 할 때도 배제된다.
- 청소년의 권리 : 태안해병대캠프 참사와 같은 해병대 캠프는 아이들이 원해서라기보다 부모들이 강제로 보낸 경우도 많다고 알고 있다. 탈북청소년들은 대안학교에서 기도와 예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정치적 권리 주체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 당사자나 피해자가 아니지만, 사건을 함께 겪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권리
- 애도할 권리 : 인간에게는 의례가 필요하다. 애도조차도 죄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많다. 한국전쟁이나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의문사. 우리 사회는 과연 충분히 애도해왔나? 각종 재난 참사로 희생된 분들도 빨리 잊으라는 강요에 시달려왔던 것 같다.
-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 양심에 따라 행동할 권리 : 경찰이나 검찰이 국가권력의 명령에 대해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듯. 직장 상사가 누군가를 찍어내려고 왕따 지시를 하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들도 있다.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인권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행동을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권리 : 세월호도 그렇고 ‘우리는 정치적인 것 아니야’ 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정치적 행동을 한다고 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들이 싸울 때도 ‘착한 장애인’ ‘순수한 장애인’을 강요받는다. ‘순수한 유족’을 강요당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쁜 장애인 되기’ 같은 기획도 있었다.
- 여유롭게 살 권리 : 집회 가서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철거민이나 노동자나 당해보니 알게 됐다고.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먹고살기 바빠서 몰랐다.” 일상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 노동자가 안전교육을 받고 위험이 예상될 때 중지할 권리 :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반복되는 안전사고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이런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 편하게 일할 권리이기도 하다.
토론을 하면서 세월호는 특정한 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가 드러난 모습일 뿐이라는 게 분명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인권을 말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건 세월호 싸움을 더욱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인권선언은 실현되면 좋은 이상향을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가 이 싸움을 통해 무엇을 쟁취하고 만들고자 하는지, 누구와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토론을 마친 후 들었습니다. 후원인 여러분들도 주변 지인들과 함께 부담 없이 인권선언 토론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송년회 프로그램이라면 너무 부담스러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