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이젠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듯 날이 뜨겁다. 반월시화공단 골목에 위치한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하다 보면, 점심식사를 끝낸 노동자들이 한 뼘의 그늘을 찾아 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선전전을 하는 우리들 또한 조금이라도 그늘진 곳을 찾곤 했는데, 전국에서 가장 녹지가 많다는 안산이라는 게 공단에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은 올해 활동계획을 논의하며 그동안 주목해왔고 앞으로 고민해야 할 의제들에 대해 검토했다. 그리고 그간 다루지 못했던 ‘쉴 권리’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이전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8시간 일하는 경우 1시간의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하지만, 작업시간 중간에 휴식시간이 주어졌다며 이를 빼고 점심시간을 줄이는 사업장의 이야기를 접하기도 했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공단의 현실에서 ‘쉴 권리’는 일상과 맞닿아있지만, 우선적으로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아파도 일해야 한다”가 아니라 “아프면 쉬어야 한다”로 바꾸자는 사회적 제안이 일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시작하며 검토한다던 유급병가 도입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 되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대부분 중소영세사업장인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떻게 체감되고 있을까. 자신과는 거리가 먼, 그저 좋은 말이 아니라 일하면서 적절하게 쉬는 것이 ‘권리’로 여겨질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휴게시간, 휴게공간, 병가를 키워드로 현황 파악을 우선 하면서 이후 조사결과를 토대로 개선방안을 찾아보자는 계획이다.
매주 골목골목 식당을 돌면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첫날은 참여한 분들 다수가 이주노동자였다. 무슨 조사인지 관심을 보여도 조사 문항을 이해하기 어려워 여러 몸짓을 하면서 설명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에겐 회사에 휴게공간은 있지만 자신이 이용하기는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연차와 병가를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고, 병가가 있다고 체크해도 어떻게 얼마나 보장되는지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전과 오후 작업시간 사이 쉬는 시간이 없어 눈치 보며 화장실만 후딱 다녀오고 만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남은 점심시간 동안 눈 좀 붙여야 한다며 초조해하면서 조사에 함께 하고 빨리 발걸음을 옮기는 분들도 있었다. 수년을 일하고 있지만 휴식이 보장되는 건 요원하다며 백신 접종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듣기도 했다.
아직 조사 초반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쉴 권리’는 우리가 사람이라고 하는 감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게시간과 휴게공간을 통해 이야기되는 휴식의 권리가 단지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많은 것을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개조해 변모시킨다며 수천억 원의 재정이 쓰일 거라고 하지만, 번쩍거리는 고층 건물로 대체될 뿐 정부가 그리는 미래에 공단 안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후 만들어가야 하는 변화는 제도적인 변화 이상이어야 한다는 고민이 꼬리처럼 따라 붙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안전하게 일하기 위한 변화를 함께 요구하고, 이러한 과정이 권리 주체로서의 감각을 함께 쌓아가는 시간으로 쌓여지기를 기대한다. 뜨거운 여름, 월담이 공단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며 설레는 이유다.
△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블로그
격주로 살펴보는 공단뉴스를 비롯해 월담의 소식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