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교 가정통신문 부모 학력 란에 무학이라고 적어야 했다. 그래서 마흔일곱 살에 야학을 갔다. 혼자 갈 수 없어 온갖 콜택시에 다 전화했다. 저를 업고 야학에 데려가 달라고 사정하고 또 사정했다. 8개월 만에 야학에 가 초등학교 검정고시로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나와 보니 너무 억울했다. 어렸을 때 병신이라고 놀림 받았고, 엄마는 장애인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은 지옥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을 살다 이제야 세상에 나왔는데 내 등급을 깎아서 활동보조를 없앤다고 한다. 비참하다. 다신 짐승처럼 살기 싫다."
2010년 9월 장애등급 심사 중단을 요구하며 중증장애인들이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했다. 몇 점 차이로 등급이 하향되는 건 단순히 숫자가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등급 하향으로 활동보조지원이 줄거나 끊기는 것은 장애인들에겐 생존의 문제였다. 이날의 절박한 외침이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의 시작이었다. 이후 2012년 8월부터 1842일의 농성 끝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7월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을 앞두고, 장애인들은 다시 거리로 나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죽음과 투쟁으로 이룬 장애등급제 폐지
2001년 1월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촉발했다. 2005년 12월 동파한 보일러 때문에 집에서 동사한 중증장애인의 죽음은 활동보조지원 제도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장애인들의 투쟁에는 동료들의 죽음이 함께 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도 그랬다. 1842일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을 이어가는 동안 농성장 맞은편에는 함께 했던 동료들의 영정사진이 하나둘 늘어갔다. 2012년 김주영 님, 2014년 송국현 님의 죽음으로 활동보조지원 신청자격이 1급에서 2급, 다시 3급까지 확대됐다. 활동보조지원 시간도 늘어났다. 장애인들의 죽음과 투쟁이 장애인 복지제도를 만들고 확대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격한 자격 심사가 동반됐다. 국가는 어떻게 제도를 더 누리게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더 제한할 것인가를 언제나 고심해왔다. 2007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총 9만2817명의 등급 재심사 결과, 등급 하향은 36.7%(3만4064명)에 달했고 등급 상향은 352명(0.4%)에 불과했다. 36.7%의 등급 하향 결과를 두고 보건복지부는 허위와 부정을 적발한 것처럼 선전해댔다. 등급 하향이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국가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2013년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등급 하향을 통보 받은 장애인이 위태로워진 삶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6년에는 서울 강서구에서만 활동보조지원 자격 심사를 받은 458명 중 181명(39.5%)이 등급 하향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래서 싸웠다. 등급 하향 반대가 아니라 장애등급심사를 중단하고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 요구했다. 알량한 장애수당·장애연금, 부족한 활동보조지원이지만 등급은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를 넘어 생사를 가르는 숫자였기 때문이다.
등급이 점수로 바뀔 뿐
그 결과 31년 만에 장애등급제가 7월부터 폐지된다. 일상생활 영역을 시작으로 2020년 이동 영역, 2022년 소득·고용 영역으로 확대해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1~6급으로 나누었던 장애등급은 중증과 경증의 장애정도로 바뀐다. 기존에는 등급에 따라 서비스 지원 신청 자격이 주어졌는데, 이제는 장애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장애인이 신청할 수 있다. 신청 서비스에 대한 지원 여부와 정도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결과로 결정된다.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요, 환경, 욕구를 반영한 개인별 맞춤형 지원을 제시했지만,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는 어떤 지원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를 묻진 않는다. 활동보조, 보조기기, 시설 입소, 주간활동, 응급안전 알림이라는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고를 수 있을 뿐이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자립생활 권리 보장을 요구해왔지만, 이와 배치되는 시설 입소를 복지서비스로 접근한 것도 문제다. 종합조사 결과에 따라 신청 서비스에 대한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데, 공개된 종합조사표는 기존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서비스 필요도 평가를 위한 기본조사'는 기존의 활동보조지원 인정조사와 거의 유사하다. 일상생활 동작과 수단적 일상생활 동작에서는 동작별로 얼마나 지원이 필요한 상태인지를 묻는데, 이러한 동작들의 총합이 곧 생활일 수는 없다. 최소한의 신체활동에 대한 보조는 생활지원의 기본 중 하나일 뿐이다. '사회활동'도 학교와 직장을 다니는지 여부로만 판단한다. 학교와 직장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맺고 싶을 수 있는데, 그러한 욕구는 고려되지 않는다. '욕구조사'도 함께 하여 반영한다고 하지만, 조사항목은 기본조사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최소치를 제시하며 도움 받고 싶은지 여부를 파악하는데 그친다. 신청자격만을 열어놓았을 뿐 점수 총계에 따라 서비스를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은 그대로다. 서비스 지원의 내용과 정도가 기존의 등급 대신 이젠 점수로 결정된다.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능력 없음을 인정받아야
장애유형은 다양하고, 같은 장애유형이라고 하더라도 개개인의 조건이나 욕구에 따라 필요한 지원의 내용이나 정도는 다르다. 장애등급 심사는 "~를 할 수 있나 없나"만을 끊임없이 검증했다. 등급에 따라 지원이 달라지기에 등급 하향은 당장 오늘을 위태롭게 하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등급 하향이 되지 않으려면 "할 수 없다", "하지 못한다"는 호소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심사'대상'으로서 자신의 능력 없음을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장애인을 능력 없는 존재로 낙인찍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했고 이뤄냈다. 새롭게 도입된다는 종합조사는 어떨까. 종합조사도 점수 총계가 지원의 정도를 좌우한다. 모든 조사항목에서 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똑같이 능력 없음을 호소해야 한다. 등급으로 능력 없음을 인정받게끔 강요하는 모욕적인 제도를 바꾸자고 했지만, 서비스 필요도를 증명하기 위해 똑같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서비스가 아닌 권리
장애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추켜세우지만, 과연 그 방향에 맞게 가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부족하기만 하다. 제도의 확대를 공언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예산 확대는 더디다. 장애등급제 폐지 요구는 장애인도 존엄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선언이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지원하라는 것은 존엄하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권리들을 장애인들에게도 보장하라는 요구였다. 등급에 따라 획일적인 서비스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저마다 다른 필요와 욕구를 사회가 보장하라는 요구였다.
그래서 다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 장애인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장애인에게 지정되고 할당된 자리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온 장애인들의 투쟁은 오늘도 이어진다. 주는 사람 맘대로 줬다 뺏었다,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