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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인권운동사랑방의 ‘가장 어린 활동가’ 어쓰를 만나다

활동가 인터뷰 '지금 만나러 오세요'

인권단체를 후원하(려)는 많은 분들이 ‘인권’에 많은 관심을 갖지만,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에 관심을 가질 기회는 흔치 않지요. 그래서 인권활동가가 ‘어떤 사람’들인지 만날 수 있는 기회, 사랑방 활동가 인터뷰 <지금 만나러 오세요>를 마련했습니다. ‘빠듯하지만 뿌듯하게’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 하기(with-sarangbang.or.kr)가 인권운동과 함께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며!

• 인터뷰어 : 김영옥(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 인터뷰이 : 어쓰 (상임활동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 그를 만나지?

인권활동가들이 꾸린 코로나19 관련 집담회의 뒤풀이 자리에서 비교적 길게 그를 만났다. 마스크로 얼굴을 2/3쯤 가린 터였지만 옅은 황갈색으로 물들인 머리에 살짝 부드러운 웃음을 띤 눈빛, 온기가 느껴졌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중 가장 어린 ‘이’라고 들었기 때문일까. 오랜 시간의 투쟁에 부대끼고, 바뀌지 않는 일상에 지친 어른 ‘이’들에게서 나는 짠내 대신 부드럽고 온기 있는 웃음을 감지한 것은? (내 안에 연령차별주의 문화가 내재해 있나?) 아무튼 말투에서 그가 속한 ‘세대’를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세대’는 문장 중간 중간 쉼표가 있음직한 자리에 단어의 끝을 살짝 힘줘 말아 올린다. 이후 그가 쓰거나 말한 내용들을 이것저것 찾아 읽고 들어보았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인터뷰가 가능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마주함의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니까. 어떤 자리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 그를 만나지? 가장 평범하게 시작하자. 20대 남성 인권활동가를 늙어가는 60대 여성 페미니스트가 만나는 자리로.

‘파란 하늘’

한 프로그램 대담에서 그는 ‘파란 하늘’을 언급한 적이 있다. 세상에는 ‘파란 하늘’처럼 어쩌지 못하는, 그러니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파란 하늘’을 두고 왜 ‘파라냐고’ 묻거나,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쓸모도 의미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낙천적인 것인가? 세상에는 속 끓일 일과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이렇게 일찍 알아버린 청년. 그가 하는 인권운동은 무엇을 바꾸려고 할까, 무슨 일로 속을 끓일까.

인터뷰는 이 ‘파란 하늘’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시작되었다. 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사실 낙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불안도 꽤 있어 동동대는 사람이지만 ‘비슷한 사람들과 서로 돕고 위로하며’ 정도껏 즐겁고 정도껏 행복한 생활을 유지한다. 훈련된 마음가짐의 결과랄까. 이것은 그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며 머물렀던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습득한 능력이다. ‘관계성이라든지 타인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며 살지 않던’ 그는, 공동체 지향성이 강한 이곳에서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면 도와주고, 울면 위로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체득했다고 한다. 음, 그렇군…!

인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젊은이,
인권운동이 뭔지 모르는 ‘노친네’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다

7080 ‘할아버지들’에게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는, 미리 보낸 질문지에도 불구하고, 망설임과 침묵 사이를 오갔다.

“할아버지한테 나를 소개한다면… 할아버지한테… 음, 할아버지한테….”

결국 이 장면은 회색 침묵 속에서 페이드아웃.

“소개라는 건 어쨌든 상대방에게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잖아요. 그런데 노년남성이 나를 이해할 거라는 기대가 별로 없기 때문에 나를 소개하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는 것도 새삼스레 떠오르네요.”

이해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다시 시도.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사랑방이라는 사회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이런 게 음… 제가 단체에서 일한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이 돌려주는 말이 ‘착한 일하네, 좋은 일 하네’거든요. 남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그렇게들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근데 제가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굳이 따지자면 저는 저를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 같거든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까, 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저는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대학 나오지 않은, 고등학교를 자퇴한 나 같은, 가방끈이 투명한 나 같은 사람도, 아니면 나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다니는 사람도 그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지금 이런 단체에서 운동을 하고 있어요.”

자기소개를 하다말고 인터뷰어를 쳐다보며 하는 말.

“나이 많은 남성분들한테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이런 반박이 있을 수 있잖아요. ‘니가 뭐 얼마나 잘났다고 남 좋은 일을 해? 너나 잘 살아. 니 인생이나 살아. 엄마 아빠가 얼마나 슬프시겠니?’ (실제로 엄마 아빠가 좀 슬퍼하세요 ㅎ) 그런데, 탄핵촛불 대 태극기집회 등 보수성향의 남성 노년들과 거기에 대척되는 사람들, 이런 식으로 나누거나 범주화하는 게 얼마나 유의미할까요. ‘너 그렇게 살다가 늙어서 어떻게 먹고 살래?’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농담처럼 ‘나는 나이 들었을 때 국가가 내 생계 책임질 수 있는 세상 만들 거야, 그게 내 노후보장이라구!’ 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약간 비슷한 맥락에서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는 운동이나,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그런 소위 보수 남성세력에도 나쁜 게 아닐 텐데. 저들이 서 있는 자리를 무너뜨리거나, 저들을 곤궁에 빠지게 하기 보다는 저들도 곤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건데, 그렇다면 어떻게 저들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질문을 받다보니 그런 게 고민되기도 하네요.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거야’ 라고 말할 수는 없죠. 그들이 누리고 있던 젠더권력을 해체하고 무너뜨리는 게 또 우리 운동의 목표이기도 하니까.”

이 말을 한 뒤 그는 다시 조금 더 생각을 하더니 페미니즘의 예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다듬었다.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좋다, 나는 남성 페미니스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남성들의 말들이 썩 고깝지 않지 않았다. 단순히 성 대결로 이해해서는 안 되지만 이런 식으로 기존의 권력관계를 퉁치거나 흐리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을 하다 보니 이제 좀 더 분명해지네요. 보수노년 남성들과의 관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노력해서 나를 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보다는, 저 사람들이 변해야 나와 저 사람들이 만날 수 있다고. 그래서 그런 남성들에게 나를 소개한다거나,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고민이나 노력을, 아니 노력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럼, 가방끈이 아예 없거나 극히 짧은 7080 할머니들에는 자신을 소개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그는 전혀 망설임 없이 대뜸 대답했다.

“확실히 저한테 다르게 다가오는 게 있거든요. 노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노년이라도 이 두 그룹이 같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가방끈이 투명하다는 것은 제가 지니고 있는 약점이나 약자성, 혹은 취약성 같은 것을 숨기거나 하는 게 아니라 드러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려는 운동을 한다는 의미에서 어떤 종류의 취약함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제가 만날 수 있는 지점 아닐까요? 너의 취약함과 나의 취약함이 다르겠지만 그런 취약함을 서로에게 숨기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드러낼 수 있는 관계? 혹은 그걸 드러내면서 관계 맺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게 제가 운동을 하는 목적이에요.”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투명가방끈 운동’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고1 때 자퇴하고, 19살이 되었을 때 수능을 보지 않아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20대가 되었을 때, 그런 과정에서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같이 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고민인데요.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조직해서 수능 보는 날 광장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글을 쓰고 인터뷰도 했어요. 처음 만들어진 해 주목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인터뷰 기사 댓글에 이런 게 많았어요. ‘어차피 네가 좋은 대학 못 가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노력할 자신 없고 노력해도 안 되니까 너 지금 그렇게 깽판 치는 거 아니야?’ 고민이 많이 됐죠. 사실이기도 하니까. 지금 당장 다시 입시 공부한다고 해도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고. 그러면서 ‘아, 그래, 너 말 맞아. 나는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인데, 노력해도 좋은 대학 갈 수 없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만들고 싶어, 그래서 나 지금 이 운동 하는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죠. ‘나는 노력해도 공부 잘 못하겠어, 성적 잘 못 받겠어, 나는 성적 잘 받는 거에 노력하고 싶지 않아, 근데 그래도 나는 차별받고 싶지 않아. 나 안 하고 싶어, 나 안 할 건데, 안 한다고 내 삶이 망하지 않길 바라’ 이런 식의 발화들, 취약함을 드러내는 이런 발화방식은 한국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게 조금이라도 가능해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비교적 길게 설명한 뒤 인터뷰어를 쳐다보며 하는 말.

“이해하실지 못 하실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들한테는 그래도 이런 소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가 닿았으면 좋겠어요. 아까 할아버지들에게 한 제 소개도 사실은 할머니들한테 할 수 있는 소개일 것 같네요.”

세대갈등, 세대 간 불화, 자원의 세대 간 불평등 배분, 돌봄 위기 혹은 돌봄 독박 등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가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함께 살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짐을, 심지어 불가능해짐을 암시하는 언설들이 도처에서 웅성거린다.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정치꾼들 때문에 ‘세대갈등’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담론 내지는 이론이겠지만, 그 실재 여부를 떠나서 세대 간 관계성을 직조하는 젠더/권력은 꼭 짚어 토론해야 할 문제다. 20대의 젊은이가 60-80대 늙은이를 자기 앞의 누군가로 상상할 때 노년남성의 자리는 아예 새까맣게 지워진다는 것, 노년여성에게는 대뜸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말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 차이는 중대하다. 어쓰의 자기소개는, 노년기가 어떤 시기로 이론화되든지 간에 (자아 통합 도모의 시기? 역할 상실로 인한 정체성 위기의 시기? 또는 사회적 낙인에 치여 비틀거리고 방황하는 시기?) 이 시기를 젠더 렌즈로 탐색해야 할 필요성을 또렷이 부각시킨다. 다른 연령대의 시민들과 적어도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으려면 노년들은 어떤 ‘노후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가?

권태롭지 않은, 의미와 가치가 있는 노년기를 보내려면 사회활동을 멈추지 말라는 제언들을 한다. 나는 인권활동가들에게 후원을 하고,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것을 썩 괜찮은 사회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더 나은 사회, 변혁의 꿈이 찬란하지는 않더라고 완전히 사그라지지는 않는 사회를 위해 어떤 ‘제안’을 하는지 (어쓰와 사랑방 활동가들은 ‘제시’가 아니라 ‘제안’임을 강조한다), 이들 스스로가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동행하는 일은 후원자들에게도 호기심과 열정, 기대감을 선사한다. 뛰어난 연대활동이고 활기찬 사회활동이다. 노년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인권운동단체들이나 여성단체들에 후원자로 등록하고 뿌듯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사방팔방으로 ‘자랑질’하는 것을 꿈꿔본다. 그리고 인권활동가들도 이 꿈을 함께 꾸기를 희망한다. ‘늙은이들’을 동료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지자로, 연대자로 ‘상상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할 터다. ‘그런 수고를 왜?’ 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혹은 어쓰의 말대로 (보수)할아버지는 안 되고, 할머니는 된다고 구별 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구별조차도 이런 식의 만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뒤에 가능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그런 마음으로 던진 마지막 질문은 ‘노년과 친구가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와 ‘본인은 어떤 할아버지가 되고 싶으세요?’였다.

노년과 친구가 된다는 것? ‘나’는 어떤 할아버지가 될까?

“청소년 운동은 연령(차별)주의와 싸우는 운동이기도 하거든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차별하면 안 된다, 하대하거나 아랫사람 취급하면 안 된다. 관계에서 나이에 따른 권력이나 위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운동이라서, 관계에서 나이를 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나이를 고려하지 않으며 관계 맺고 운동하는 게 익숙한 거죠. 그래서 ‘노년과 친구가 된다면?’ 이런 질문이 어색해요. ‘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거지, 10대나 40대랑 이야기하는 게 아닌 거죠. 그런데 그 어색함을 딛고 더 생각해보니까 어쨌든 그 ‘나이는 빼고 생각한다’는 것조차도, 뭐랄까, 범위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4-50대를 지나 60대 70대까지 가서 생각하니까 매우 다르더라구요. 그 나이대의 사람에게도 내가 스스럼없이 주목하거나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음, 할아버지가 된다는 건 진짜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옛날에 어렸을 때 밤에 자려고 누워 있다가 죽는다는 걸 상상하고 무서워서 운 적이 있어요, 혼자서. 땅속에 묻힌다, 내가 없어진다, 그런 게 무서워서 울었던 것 같아요. 저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 5~6살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요. 그 이후로 언제나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나이 드는 걸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공포라는 게 실체가 있는 공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태극기 부대를 보면서 많이들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저렇게 늙을까봐 두렵다’ 저는 그런 차원의 감정은 아니고, 그냥 정말 늙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거예요. ‘아, 이게 노년혐오랑 맞닿아 있는 거구나, 내가 정말 포빅하구나’ 싶네요. 지금은 옛날처럼 심각하지는 않아요, 나이는 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럼에도 나이든 내 모습에 대한 상상 같은 게 진짜 잘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나이든 남자를 볼 일이 많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이 많은 활동가가 없다는 걸 새삼스레 확인하게 되는 거죠. 사회운동의 여러 어른들은 너무 멀게 느껴지고, 나랑 같은 인권활동가라는 느낌은 별로 없으니까. 활동가로 살면서 늙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아직 많이 보지 못했죠. 인권운동의 역사가 짧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샘플이 많지 않으니까 내가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나 이해도 안 되고, 몸으로 이해하기는 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나이듦이나 늙음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고민한다는 게 보통 노후준비라는 방식으로 하게 되는데, 활동가는 노후준비를 탄탄하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잖아. 그래서 사실 저는 노후준비에 대해서도 생각을 안 하려는 편이거든요. 생각하면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지 해결되는 게 별로 없으니까. 하물며 노후준비도 그러니 그것을 넘어선 나이듦에 대한 고민 같은 걸 할 이유, 여력, 필요? 이런 게 없달까…. ‘파란 하늘’ 같은 거죠.”

다시 ‘파란 하늘’

그는 현재 은평구에 있는 (아파트라 불리지만 아파트라고 할 수는 없는) 건물의 6층에 살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6층에 도착하면 숨이 차올라 헉헉대는 그 앞에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전망 있는’ 집이다. 인권운동‘사랑방’과 은평구의 거주지. ‘전망 있는’ 두 개의 장소에 거주하다니, 그는 복이 있는 ‘젊은이’다. 이 복으로 그가 사랑방에 또 어떤 복을 가져다줄지, 궁금하다.

지속성을 보장해주는 유대와 연대, 관계성을 말하기도 어렵고, 사람들은 기껏해야 ‘헤쳐 모여’가 자유로운 네트워크 정도로만 소속감을 갖고 싶어 한다. 소위 유동성의 시대다. 이 시대에 이념의 투명성과 신념의 두께가 없이는 구현하기 힘든 인권‘운동’의 움직임을 어떻게 후퇴가 아닌 변신과 전환으로 계속 할 수 있을지? 92년에 태어난 그와 92년에 태동해 93년에 발족한 인권운동 사랑방 사이에 어떤 ‘신비로운 운명’이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사랑방도 그도 ‘잘 늙어가기’ 바란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사랑방’이다. 이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초짜/젊은 활동가들이 ‘저렇게 활동가로 늙어가는 거구나, 나도 계속 활동가로 나이 들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도록!

사랑방도 그도, 일시적인 (포기)판단과 필연적인 지킴 사이에서 현명하게 진동하는 ‘파란 하늘’의 진자운동을 잘 지켜내기를 빈다.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로부터, 몫 없는 사람들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싸움으로부터,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차별경험으로부터 변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사랑방의 믿음에, 그의 믿음에, 사랑방과 그를 믿는 나의 믿음을 보탠다. 노년들이 겪는, 겪게 될 차별경험이 이곳에서라면 새로운 변혁의 디딤돌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