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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언어’를 찾아 헤매는 연구활동가

전희경 님을 만났어요

전희경 님은 언제나 논쟁의 맥락에 꼭 맞는 말, 타인의 이야기에 담긴 행간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말을 찾으려 노력하는 연구활동가입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전희경 님이 후원을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알아서 슉~ 사랑방 후원을 신청하셔서 참 뿌듯하고 든든했는데요. '운동의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랑방과의 인연도 더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희경 님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안녕하세요, 사랑방 후원인들에게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연구활동가로 활동하고, 대학생이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런 저런 강의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전희경입니다. 음. 뭔가 재밌게 소개하고 싶은데… 유머는 꽝이라 안 될 것 같아요. -_-;;;

옥희살롱에서 출간한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 스스로를 '연구활동가'로 소개한 글귀가 인상적이었어요.

아, 안 그래도 그 글귀 때문에 친구한테 구박받았습니다. 그렇게 거창하게 써 놓으면 연구활동가라는 이름을 누가 쓸 수 있겠냐며… (진땀) 듣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변명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필요한 문장이 태어나게 하려고 씨름하는 것이 연구자라면, 정치학이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운동을 만들어내려 애쓰는 것이 활동가라면, 우선은 ‘연구활동가’라는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가 나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쌓여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옥희살롱이 뭔가 중요한 걸 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느끼셨던 몇 년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책이 나오는 시점이었지요. 책 인쇄 직전 자기 소개글을 쓰는데,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이 책을 동료들과 함께 내는 이 시점에, 나는 누구인가’ 하고요. 옥희살롱이 ‘정확히 뭘 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짧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책이라는 실물을 통해 언어로 만들어내기까지의 시간과 과정을 생각하다보니…. ‘연구활동가’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 그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할 때 생기는 긴장감, 그런 것들이 좋아요. “연구도활동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누구를 준거집단 삼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달까요. 그치만… 역시 너무 거창하긴 했습니다.

나이듦과 생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제가 30대 초반에 나이듦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 가졌던 질문인데, 이상하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머뭇거리게 돼요. 약간, ‘어쩌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랑 비슷한데… 당연히 저의 개인사적인 경험이 있기도 하고, 또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로서의 어떤 책무(?)라고 생각했던 면들도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십여 년 전에 처음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질 때만 해도 나이듦, 노년, 질병, 돌봄, 죽음 같은 주제들은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었는데, 그게 정말 이상했어요. 왜 이런 주제들은 ‘사회복지학’이나 ‘인구학’, ‘의학’ 분야의 문제라고들 생각하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젊을 때 빡세게 페미니즘 운동 하다가, 아프고 나이 들면 페미니즘으로부터도 ‘은퇴’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어야 하고요. 이야기하다보니, 결국 제 이야기네요. 늙은 사람, 아픈 사람, 일상의 많은 시간이 돌봄으로 채워진 사람들의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답을 찾아가고 싶어요. 페미니즘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큰 것, 더 섬세한 것, 더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아놔, 또 거창해지네요. (긁적)

요즘 옥희살롱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옥희살롱은 창립하면서 나이/듦-몸-젠더-시간-죽음 등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에서 시작해서, 2~3년 단위로 ‘질문으로서의 병(病)’, ‘노년이라는 문제’ 등의 주제에 집중하며 천천히 활동해왔는데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옥희살롱도 작년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이 ‘재난적 상황’을 겪는 아프고 돌보는 사람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조사사업인 ‘감염병시대의 인권’에 연구활동가들이 참여하면서, (예방적)코호트격리를 경험한 노인요양시설의 현실에 대해 잠시나마 가까이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코호트격리 이전에도 ‘격리’에 근접해 있었던 상황들을 보면서, 그리고 ‘격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호하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보면서, 좀 더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겠다는 문제의식을 많이 공유하게 되었어요. 노인요양시설 안팎의 삶과 경험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건, 어쩌면 질문하지 않은 것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올해는 이 주제에 좀 더 힘을 기울여보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돌봄'이 언급되지 않는 영역이나 의제가 없는 것 같아요. 많이 바쁘실 것 같아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돌봄’은 굉장히 마이너한 주제라는 느낌이 컸어요. ‘중요하지만 내 문제, 내 의제는 아닌’ 주제였다고나 할까요. 그런 면에서 코로나19를 통과했던 지난해는 정말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중얼거릴 정도로 돌봄에 대한 담론이 폭증한 해이기도 했지요. 저도 쫓아가느라 헉헉대고, 때로는 체력이 안 되니 그냥 포기하기도 하면서 가고 있어요. 이렇게 모든 것이 돌봄과 연결되어 논의되는 상황이 반갑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좀 신중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개념이 너무 커지면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분석력이 떨어지고, 큰 이야기는 아무래도 급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옥희살롱은 옥희살롱답게 해나가자, 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옥희살롱의 별칭이 ‘시름시름 연구소’예요. 시름시름하면서, 계속 해봐야겠죠. 여기서 방점은 ‘계속’입니다. (웃음)

저와는 15여 년 전 여성운동을 하면서 만난 게 첫 인연이네요. (아련)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고 계신데, 요즘 대학 풍경은 어떤가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학문으로서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만, 여성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도 격화됐지요.

저도 아련…. (웃음)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한지는 꽤 되었네요. 이번 학기에도 다행히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저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배우고 고민하는 중요한 장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요즘 대학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깜냥은 못되고요. 사실 20여 년 전부터 서열화나 양극화가 너무 심화되어서,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대학 풍경’이라는 게 존재할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대학 여성학 강의실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는, 그 이전에 꽤 오랫동안 ‘페미니즘의 위기’나 ‘대학 여성운동의 위기’ 담론이 팽배했던 시기의 분위기와는 좀 다른 것 같긴 합니다. 특히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서 페미니즘을 접해 왔는데, 좀 더 학문적으로 공부하여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크다는 걸 느껴요. 강남역10번출구 여성살해사건 직후의 몇 학기 동안은 첫 시간에 자기소개 하면서 우는 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또 그렇지는 않고요. 저도 이런 징후나 느낌들의 의미를 읽어내려고, 그리고 변화하는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면에 있는 ‘마음’을 알고 싶고, 조직하고 싶은 게 제일 크고요.

‘여성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도 격화됐다’고 얘기하셨는데, 정말 그런 면이 있지만 또 동시에 어떤 이야기나 흐름들은 ‘여성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이 말한다고 ‘공론’이 아닌 것처럼, 격한 논쟁과 감정적인 균열들이 있지만 그것이 모두 ‘여성 정체성을 둘러싼’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거죠. 사회운동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속되는지, 변화를 일구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과 서로를 어떤 마음과 지향으로 조직해가야 하는지, 결국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인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누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여성 정체성’이 아니라요.

원래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에 변희수 하사 사망 소식을 들었지요. 서로 기대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서 위로가 되었고요.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 그날 귀가해서, 씻지도 않고 책장을 뒤졌어요. 시(詩)를 찾고 싶어서요. 뭔가 좋은 시. 말이라는 것이 무력하게 느껴지고, 걱정되는 얼굴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럴 때 읽을 만한 시가 없을까 하고요.…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우리’가 괜찮지 않죠. 그날 밤에 노래를 하나 찾았어요. 장혜영 님의 노래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요즘 계속 듣고 다닙니다.

너무 많은 일에 온 힘을 쏟고, 몸을 불살라 활동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지금 하고 있는 활동 외에(!) 관심이 가는 것이 있다면?

작년에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님의 페이스북에서 ‘안식년 동안 음미체(음악미술체육)를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라고 시작하는 문장을 봤어요. ‘나도나도!’ 라며 혼자 웃었습니다. 제 꿈은 ‘여러 우물을 파면서 많이 울고 많이 웃으며 사는 것’이예요. 개인적으로는 음악이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욕망은 주로 단체 PPT를 만들면서 해소(?)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2020년 사랑방 후원인 모집 사업 때 후원인이 되셨는데, 사랑방 카드뉴스를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하셔서, 이유를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아아 이러면 후원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라는 심정이었달까요. (웃음) “빠듯하지만 뿌듯하게” 슬로건이 너무 심금을 울렸어요. 사랑방 활동가들 한 분 한 분이 카드뉴스에 적은 문구들을 보니까 울컥하더라고요. “역량은 빠듯하지만, 눈치보지 않고 뿌듯하게”, “건강은 빠듯하지만 운동원칙을 지키며 뿌듯하게”, “하루는 빠듯하지만 역사 위에서 뿌듯하게”, “마감은 빠듯하지만, 협업은 뿌듯하게”, “변혁의 전망은 빠듯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랑방과 뿌듯하게”… 이런 문장들이요. 원칙, 역사, 협업, 변혁 같은 단어들. 아 근데 제가 원래 잘 웁니다.

혹시 이전에 사랑방과 만났던 기회, 맺었던 다른 인연이 있었나요?

좀 옛날 얘기지만, 직접적인 인연이라면 20년 전 <운동사회내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원회> 활동 할 때가 떠올라요. 그 때 100인위의 활동에 대한 입장이 ‘진보 운동의 리트머스지’라고 말해지는 상황이었는데, 공대위 활동을 같이 했었고 또 지면을 통해 지지를 표명해주시기도 했었죠. 너무 먼 과거인데… 서울시장위력성폭력 사건 등 최근 상황들 보면 이게 꼭 옛날 일만도 아닌 것 같아서 심란하고 열받습니다.

사랑방 소식을 받아 보고 계실 텐데, 관심 있게 지켜보는 활동이 있다면?

사실 SNS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그때 활동을 따라가고 있지는 못한데요. 저에게 사랑방은 ‘잘 모르겠는’ 사안이나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더 해나가야 할지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이 있을 때 찾아보게 되는 등대 중 하나입니다. 사랑방의 칼럼이나 성명, 입장문 같은 것들을 읽어보면서 배우고 안내받을 때가 많아요. 감사하고 소중하지요.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에 기대하는 것,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회의도 길게 하시고, 글 하나도 함께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며 활동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런 꼬장꼬장함(?) 감사하고 응원합니다. 울고 달려가고 고뇌하고 머리 아픈 와중에도, 틈틈이 언제나 ‘웃을 일’이 있으시길!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이 궁금하시다면? http://okeesal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