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8일 종각역 부근, 시커먼 '석유'를 형상화한 SK 본사 앞에서 기후정의동맹이 주최한 <횡재세로 기후정의 펀치를 날리자!> 집회가 열렸다. 집회가 있기 열흘 전에는 유례없이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다. 집도 차도 사람도 물에 잠겼다. 온 세상이 다같이 그 폭우가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 비는 폭우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
사람들이 SK본사 앞에서 요구한 건 횡재세 도입이었다.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위기와 끝나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치솟는 물가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삶의 질을 더없이 악화시키고 있지만, 에너지 대기업들은 그 덕분에 엄청난 초과이익을 누리고 있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한 정유 4사는 올 상반기 사상 최대인 12조원을 돌파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당장 누군가의 삶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이 불안정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데, 정작 이런 위기를 유발하고도 아랑곳 없이 부당 이익을 챙기는 ‘강도’ 기업들에게 그에 응당한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게 분노의 핵심 메시지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4일 기후정의동맹 주최의 <민자발전사와 정유사 초과이윤,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민자발전과 천연가스 직수입을 중심으로 민자발전 통제와 에너지 공공성 강화의 필요성이 주되게 제기되었다.
발제자로 나선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구준모 활동가는 민자발전사의 초과이윤 제어와 관련하여 횡재세와 전력도매가격 상한제와 같은 방안들이 있지만, 이에 대한 대기업의 심한 반발과 공기업에 대한 공격으로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논의가 차단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국면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정부는 한전의 적자와 부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노동자의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정비비용이나 임금을 줄이고, 팔 수 있는 자산은 모조리 팔아 공기업의 에너지 전환의 역량을 축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민자발전사들이 석유를 팔아 최대 호황을 누리는 동안 올 하반기 한국전력은 14조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도매전력가격이 인상되어도 이를 소매가격으로 반영할 수 없는 문제나 천연가스 낮은 가격으로 직수입해 가격 폭등 시 초과이윤을 남기는 에너지 대기업의 문제, 반대로 수입 가격이 높으면 수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체리피킹으로 인해 생기는 수급불안과 공급 불안정의 문제, 그로 인한 가스공사의 부담 등을 언급하며 현 에너지 산업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노총 김석 정책국장은 인간 삶에 필수적 공공재인 에너지에 대한 공적인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태양과 바람과 같은 공공재로 특정 자본가는 이윤을 얻는 반면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정체되고 불평등은 심화되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횡재세 요구 또한 이런 맥락 속에 놓여있으며, 이는 초과이윤 환수만을 위한 것이 아닌 현재의 체제를 바꿔내는 사회적 단초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토론자였던 서강대 김상현 교수도 마찬가지로 횡재세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이윤과 성장 정치경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흐름 안에서 배치되고 추진될 때에 횡재세의 의미가 반감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애초의 이윤과 성장 중심의 체제 기본원리를 두고 횡재세만 도입하는 것은 기후정의운동의 최종 목표일 수 없으며, 더 큰 사회 생태적 변화의 전망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식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지금과 같은 에너지 위기는 한시적인 현상을 넘어 삶의 일정한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에너지 공공성 강화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의 중요한 화두다. 8월 기후정의동맹의 연이은 횡재세 집회와 민자발전사 초과이윤 통제 토론회는 현 체제에서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자본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반면 노동자와 시민의 삶과 불평등은 커져가고 있는 현실을 확인시켰다. 또한 지금 여기 기후정의를 외치는 우리의 요구는 독점자본의 폭리를 정상화시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한다. 공공적, 민주적 그리고 생태적 에너지 체제전환으로 대중적 요구를 꿰어내는 행동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8월의 한가운데, 에너지 대기업 통제에 관한 기후정의동맹 집회와 토론회는 그런 행동을 위한 분노를 조직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그 분노를 큰 함성으로 만들 9월이 다가왔다.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 기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큰 힘에 맞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외치며 이제는 광장과 거리에서 만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