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습니다. 슬픔과 분노로 모인 사람들의 힘이 학교 현장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많은 사람들이 분투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고민을 들어보고자 청소년인권활동가이자 ‘교육공동체 벗’ 편집자인 공현 님을 후원인 인터뷰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일단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이고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데 상근활동가는 아니고, 어중간한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현입니다. 지금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투명가방끈’에서 활동하고, ‘교육공동체 벗’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공현이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두발 규제나 체벌,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 같은 것들에 대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도 그냥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 임계점을 넘었다고 해야 하나? 고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제 블로그에 그런 걸 비판하는 글을 매일 쓰고 그랬더라고요. 그러다가 2005년, 고3 때 인터넷이나 신문을 통해서 촛불 집회 소식이나 두발 자유 서명운동 등을 접하고 청소년인권운동 단체들이 있다는 사실, 이런 운동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곳에 연락하고 찾아가고 하다 보니 직접 모임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학교에서 모임을 만들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 해온 것 같아요.
오랫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왔는데, 공현이 해왔던 활동 중에서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지금 어떤 활동이 필요할지 논의를 거쳐서 고민을 쌓아 올린 뒤, 함께 “이런 활동을 해보자!”고 결의해서 진행했던 활동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진행했던 학습시간 줄이기 캠페인이나, 처음 대학입시 거부 운동을 기획하면서 투명가방끈을 조직했던 과정처럼요. 반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타의적으로 해야 하는 대응 활동이 숫자로는 더 많은데, 그런 건 아무래도 별로 재미가 없다고 느껴져요. 자체적으로 기획했는지, 외부에서 제안받았는지 자체가 꼭 중요한 건 아니고, 저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랑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해서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가지는 어떤 충실함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상황이 긴박하게 굴러갈 때는 그런 과정을 충실히 밟을 여지가 별로 없으니까요.
요즘 가장 꽂혀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의 재생산과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와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어요. 아마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의 상황이 좋지는 않거든요. 활동가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고요. 물론 역량 강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활동가들의 안정적인 재생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라도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에 새로 결합하는 청소년들이 “이 운동에서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일을 너무 못하는 것 같다”는 식의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말을 듣고 생각해 봤는데,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청소년인권운동 자체가 초기였기 때문에 모두 다 조금씩은 서툴고 아마추어틱한 부분이 있었고, 그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저나 저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활동가들이 굉장히 연차가 오래된 사람들, 너무 확고한 활동가처럼 보이게 되니까 저희를 기준으로 비교하게 되는 거예요. 활동가들이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며 운동을 떠나는 일이 줄어들 수 있도록 청소년활동가 캠프를 기획하거나, 세미나/공부 모임이나 내부 교육을 열심히 여는 중이에요.
지난 8월 24일 열렸던 '교육주체 공동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안 폐기하고, 근본 대책 마련하라!>에서
최근 교사 사망이 알려진 뒤 학교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정부와 교육부는 공공연하게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키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는데요. 청소년인권활동가로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지금과 같은 학생인권에 대한 공세는 작년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고 지방선거에서 여당 기초의원과 보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일이 예상보다 조금 더 빠르고 전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거죠.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아마 2~3년 안에 유사한 정책이 나왔을 것 같아요.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만 해도 이미 예전부터 올라와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의 후퇴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최근 사건을 통해서 청소년 운동의 주장과 교사 대중 집단 사이에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이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고 느껴져요.
사실 교육이 성립하려면 학생의 동의와 참여가 있어야만 하는 건데, 사람들은 ‘왜 학생의 동의와 참여가 없는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지시하면 학생이 따르게 할 방법’만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호소가 ‘교권’이라는 개념으로 수렴되면서 학생인권 후퇴가 대안처럼 이야기되기도 하고요. 소위 말하는 교실 붕괴 같은 이야기는 이미 90년대부터 계속 나오고 있었고, 그게 점점 더 심화되는 중이잖아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문제가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왔어요. 근데 이에 대해서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건 굉장히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것밖에 없는 거죠. 교육과 학교의 역할을 묻고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정치적인 문제의식과 행동이 필요한데, 그런 논의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공현과 사랑방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왔을 때 제일 처음 만난 인권단체가 사랑방이었어요. 그 당시에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라는 연대체에 사랑방 교육실 활동가들이 함께했거든요. 맨날 사랑방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면서 알게 됐죠. 혜화에 있을 때 처음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충정로로 이사를 갔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대학교에서 무슨 NGO와 시민사회에 대한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 과제를 좀 날로 먹어보려고 사랑방 활동가를 인터뷰한 적도 있네요. 사랑방의 첫인상은… 활동가들이 술을 잘 먹는다는 것? (웃음)
그러다가 2016년 즈음 사랑방의 이웃 단체인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홍대 사무실로 출퇴근하기도 했어요. 사랑방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건 아니지만 밥을 같이 먹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운동에 대한 고민을 나눴고, 그런 시간 속에서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사랑방 활동가들이 뭔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툭툭 던졌던 것 같네요.
사랑방 활동 중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게 있나요?
작년까지는 기후정의동맹의 소식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나요. 저도 고민이 되는 주제이고, 기후정의라는 의제가 너무 중요한 것 같고,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얻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살펴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올해는 사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 보지는 못하고 있어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매번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나중에라도 찾아서 보는 편이에요. SNS나 뉴스에서 지나가면서 봤던 소식이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인권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어떻게 고민하고 이해할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뭐랄까, 교양 공부하는 느낌? 학습하는 느낌으로 읽고 있어요. 솔직히 가끔씩은 ‘좀 뻔한 얘기네, 다 아는 얘기네’ 하면서 쓱 넘길 때도 있긴 한데요. (웃음) 그게 글의 퀄리티 문제라기보다는 제가 원래 잘 알고 있던 이슈는 오히려 그냥 훑고 넘어가게 되고, 제가 잘 몰랐던 이슈를 좀 더 주의 깊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누군가는 원래 알던 이슈라고 해도 또 다른 누군가는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접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도 프레시안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몇 년째 하다 보니까 비슷한 주제를 다루거나 이전에 했던 얘기를 또 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누군가는 처음 읽는 얘기일 테니까,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현은 사랑방 후원을 추천하는 글을 써준 적도 있죠. (격월간 ‘오늘의 교육’ 2022년 3+4월호, ‘내가 밀고 있는 단체 - 인권운동사랑방’) 이 글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그 글을 썼던 당시에 신문 기사 등에서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에 대해서 “나중에 정치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나랏돈 빼돌리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관련된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었는데, 마침 ‘내가 밀고 있는 단체’라는 꼭지를 제가 쓸 차례가 되었거든요. 운동의 독립성, 정치성 등에 대해서 쓰려고 보니 사랑방이 떠올랐어요. 제가 봐왔던 사랑방의 특성들, 예를 들면 대표 없이 수평적 활동가 조직으로 운영한다거나, 조직을 키우기보다는 단체를 분리해서 독립시키는 방식을 지향한다거나, 단체 내 민주주의를 고민한다거나, 진보적 인권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성과 방향성을 뚜렷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한다거나, 이런 걸 사랑방에서 많이 배웠거든요. 운동의 독립성에 대한 고민도 그렇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단체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사랑방 후원인들이나, 혹은 사랑방 후원을 추천하고 싶은 분들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보면 좋을까요?
제가 후원하고 있는 단체들 중에서 가장 끝까지 후원을 지속하고 싶은 곳은 사랑방과 진보넷이에요. 뭐랄까, 꼭 필요한 이야기와 활동을 하는데 정작 많은 사람들한테는 후순위로 미뤄질 것 같은 느낌? 운동의 역사나 현황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런 단체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 잘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의제나 대상이 막 뚜렷하지는 않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꼭 있어야 하고 필요한 단체인 것 같거든요. 요즘 모금전략 트렌드는 구체적인 활동을 보여주면서 후원금의 용처나 효능감을 디테일하게 드러내는 식인데, 여기에 완전 반대되는 활동을 펼치는 단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있는데요. “어디에 후원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당신, 잘 모르겠으면 사랑방에 후원하세요!” 이렇게 어필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구체적인 의제나 눈에 보이는 활동을 기대하면서 후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더 포괄적으로 사회 전체를 나아지게 하는 활동에 힘을 보태고 싶은데 어딜 후원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여기 사랑방이 있습니다” 라고 드러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사랑방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처음 사랑방을 만났을 때도 사랑방은 이미 10여 년을 활동해온 단체였는데, 어느새 30주년이 됐잖아요. 그래서 솔직히 사랑방과 제가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있어요. 그냥 아직 안 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좀 고마운 것도 있고요. 또 조금 멀리서 봤을 때 사랑방 활동가들은 다들 너무 준수하고 훌륭한 활동가라는 느낌인데, 또 내부에서는 어려움을 겪거나 버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너무 빡세지 않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