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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잘 떠나보내는 법

저희 집은 3명의 인간과 6명의 고양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6명의 고양이는 첫째 1명, 둘째 2명, 셋째 3명으로 구분됩니다. (몇 초 간격으로 태어난 애들은 대충 하나의 라인으로 묶어봤습니다) 이번 편지에는 이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첫째는 중학생이었던 제가 친구들과 냇가에서 놀다가 만난 애입니다. 도로로 후다닥 뛰어가는 애가 걱정돼서 쫓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꼬리가 접힌 걸 보고 다쳤나 싶어 허겁지겁 병원에 데려갔는데… 영양이 부족해서 꼬리가 말린거라 하더라구요. 아무쪼록 이리 오래 함께하는 사이가 될 줄 모르고 ‘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또 불렸을 세월이 벌써 15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고양이는 인간과 다른 속도로 시간을 지납니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대략 74년을 산 셈입니다.

냥이와 함께 살며 동네 길고양이도 챙겨주다보니 식구가 늘게 되었습니다. 그중 어떤 고양이가 애를 낳아놓고 떠나고를 반복하는 일이 생겼거든요. 저희 집을 신뢰하니 애를 맡겨두고 가는 것이죠. 암컷 길고양이들은 이렇게 동네 짱(?) 먹은 수컷의 애를 낳아 보호받는 게, 그 나름의 생존법이라고도 하네요. 한번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3명의 고양이를 창고에서 돌봤는데, 장마 때 하나가 물웅덩이에 빠져 죽어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4명이었는데, 그중 입양을 간 아이가 얼마 가지 않아 죽기도 했었구요. 그렇게 궂은 날씨에 걱정하고, 입양은 못 보내다 보니 신발장으로, 베란다로, 결국엔 거실로 들인 게 2016년생 둘째 라인과 2017년생 셋째 라인입니다. 이 친구들은 인간 나이로 40살에서 44살 사이로 가늠하면 됩니다.

간혹 ‘나만 고양이 없어’인 분들로부터 부러움의 눈빛을 받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생명을 돌본다는 건 크고 작은 품이 드는 일이고, 거기엔 무거운 책임감이 딸려오니까요. 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환경과 돌봄을 충분히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죄책감으로 쌓이곤 합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잘 살아내주는 것만 같은 고양이들을 보면 부채감까지 듭니다. 그래서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사실을 주변에 잘 안 알리고, 사진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대로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자랑하고 전시만 해대는 저 자신을 떠올리면 뭐랄까, 께름칙하달까요.

어쨌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반려자의 도리일 터. 그 일환으로 일단 캣폴을 사려고 합니다. 사야겠다는 말만 염불을 외면서 한없이 미뤘던 그놈의 캣폴! 5월 29일, 부산 HPS 파업을 다녀오는 길에도 이 친구들을 만족시킬 캣폴을 열심히 구상했죠. 자기 구역 욕심을 내는 애, 높은 곳을 잘 올라가지 않는 애, 인간 구경을 좋아하는 애, 푹신한 데서 자는 걸 좋아하는 애… 식구가 많을수록 신경 쓸 건 많아지기 마련이고, 저는 단번에 최상의 결과를 뽑으려다 보니 시간이 참 많이도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결판을 지을 때입니다, 라며 이 편지를 써내려가는 참이었습니다.

5월 31일, 새벽에 잠에서 잠깐 깨서 화장실을 가는데 둘째 중 한 아이가 따라오더라구요. 노랗게 뜬 얼굴로 뭐라 우는데,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금요일 오전 일정을 끝내고 오면, 어쩌면 떠나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에 연차를 내고 축 늘어지는 애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방에서 아이를 꺼내자마자 “어… 아이 상태가 너무 안 좋네요…”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항암치료도 어려운’,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오늘 내일’. 모든 말은 결국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였습니다. 이 또한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양이는 아픈 티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플수록 꽁꽁 숨어버리는 게 아프다는 단서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평소 저 자신이 관찰력이 좋다고 생각한 게 무색해지더군요. 자책과 후회를 해봤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였습니다.

아이는 6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자정쯤에 먼 길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집에 돌아온 후, 아이는 천천히 잠에 드는 것처럼 정말 미세하게 숨을 쉬다가, 간혹 아픈건지 크게 울다가, 또 자리를 옮겨 가쁜 숨을 내쉬기를 반복했습니다. 아이가 언제 떠날지 몰라 저는 밤을 새웠습니다. 이 상황이 그냥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지켜보다가,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말을 해주다가, 아이를 찍었던 사진을 여기저기서 그러모으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의사선생님의 예상보다 긴 시간을 머물다 고양이별로 갔습니다.

나와 다른 이를 삶에 들이는 일, 반대로 나 또한 그의 삶 일부가 되는 일이 마냥 부러움을 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겐 두려운 일에 가깝습니다.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하는 후회와 죄책감은 그 일부입니다. 그냥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시간 자체가 큰 구멍으로 남는 게 제일 두렵습니다. “이런 일이 앞으로 다섯 번이나 남았다니…” 위로를 건네는 장례업체 분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남은 아이들이 있지. 그것도 다섯 명이나. 정신을 차리고 캣폴을 주문했습니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올라와도 쓰담쓰담하는 일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레 하고 있습니다.

4일 화요일, 주문한 캣폴이 도착했습니다. 곧 사다리와 전동드릴도 사서 직접 조립하려고 합니다. 제가 만들어야 까탈스러운 제 입맛을 맞추고 마지못해 타협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체중계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일일이 급수와 배변을 세심히 추적하기 어려운 다묘가정, 체중 변화를 살펴보는 데부터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진작에 했었더라면…’이라는 후회로 수렴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 또다시 필연적으로 맞이할 후회를 최대한 줄이는 일이겠지요.

잘 떠내보내는법. 그건 사용하는 언어, 먹는 음식, 살아가는 방식, 그 무엇보다도 늙어가는 속도가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겠죠. 언젠가 아그대다그대에서 “나와 함께 자란 동물 형제자매들 덕분에 외동인 내가 관계에서의 돌봄과 배려, 존중을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떠난 친구로부터도 많은 걸 배웠네요. 제가 고양이를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고양이도 저를 돌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미 시간이 멈춘 이를 잘 떠나보내며, 남은 우리의 시간을 잘 살아내봐야겠습니다.

 

 *엄마와 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