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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정의로운 전환, 이제 구호를 넘어 투쟁의 현장으로

─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첫 파업 투쟁에 함께하며

 

지난 5월 2일 부산에서 ‘공공운수노조 발전HPS 지부’와 기후정의 시민사회의 간담회가 열렸다. 발전 비정규직 노조인 HPS 노조가 ‘정의로운 전환, 총고용보장’을 핵심 요구로 내걸며 첫 파업투쟁을 준비하면서 마련된 자리였다. 그동안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발전 노동자들과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었지만, 하동과 부산 등지의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첫 만남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파업투쟁 연대라니. 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싸움은 곳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기후정의활동가,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와 머리를 맞대다

발전 HPS지부는 5월 28일, 29일 이틀간 노조 설립 사상 처음으로 파업투쟁을 벌여냈다. 발전소 원청업체인 한국남부발전의 본사가 위치한 부산에 모여 ‘정의로운 전환 이행하는 석탄발전소 폐쇄’,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총고용보장 쟁취’를 요구했다. 발전소는 필수유지인력 사업장이기 때문에 절반 정도의 조합원들만 파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노조에서는 조합원들이 파업 이틀 동안 각각 하루씩 파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파업 첫날은 남부발전 앞에서 파업출정식에 이어, 기후정의활동가들과 함께하는 ‘모둠별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석탄발전소 대규모 폐쇄를 앞두고 고용위기에 놓인 발전 노동자들은 기후정의운동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보통 집회 장소에서 대오를 이루며 앉아있는 모습을 보거나 대표자들의 발언 외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생각과 발전소 폐쇄 통보를 받은 현재 상황에 대한 마음,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정의롭게 전환하자는 기후정의운동의 요구에 대한 생각까지,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들에 내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그런데 ‘모둠별 간담회’를 준비하면서 함께 회의했던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이 말하지 않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면서 간담회 자체가 잘 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불안해했다. 돌이켜보면 노조 집행부 모두 ‘파업 투쟁’은 처음이라서 다들 초긴장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모둠별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수줍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남부발전이 HPS는 육성협력업체라며 함께 갈 것처럼 이야기해오다가 일방적으로 발전소 폐쇄를 결정하고 그 이후에도 고용과 관련한 어떠한 제스처도 없는 것에 분노했다. 하동석탄발전소 건설 때부터 30년 넘게 업체를 바꿔가며 일해오던 노동자는 2026년 하동발전소 폐쇄 소식에 막막함을,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청년노동자들은 이제 일을 익혀가고 있는 와중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라고 했다.

파업투쟁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고, 집회에도 처음 나와봤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민과 동료 노동자들을 만나가면서 알리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복잡한 발전소 원하청 구조에서 같은 곳에서 근무하더라도 업체가 다르면 서로 대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 심지어 같은 HPS지부 소속이라도 전국 곳곳에 흩어져서 일하다보니 이렇게 모이는 게 ‘파업 투쟁’이라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더 많이 만나야 한다고 했다. 각 모둠을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분위기를 파악하던 노조 집행부는 예상치 못한 조합원들의 모습에 놀라면서 굉장히 고무된 모습이었다.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소극적 태도를 걱정했지만, ’모둠별 간담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함께 이야기 나눌 자리를 누구보다도 원했던 게 현장 조합원이었다는 점이다. 발전소 폐쇄 소식은 들려오는데, 대안은 마땅치 않고 이런 답답한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늘어놓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파업 투쟁’은 발전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정말 첫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부산 시내를 울린 외침,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총고용 보장하라!

파업 이틀째인 29일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발전노동자 행진’이 부산 시내에서 진행됐다. 하동, 부산, 영월, 인천, 당진 등 전국 곳곳의 HPS 지회장과 기후정의활동가들의 차량 선동과 함께 힘찬 행진이 이루어졌다. 특히 부산 기후정의활동가들이 공공재생에너지를 상징하는 바람개비를 제작해서 나눠주었고, 행진 참여자들은 한 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총고용 보장하라’, ‘정의로운 전환 실현하라’ 외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그날 행진은 하루가 다르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많은 시민에게, 당장 고용위기에 처한 발전노동자들이 ‘공공재생에너지’로 정의롭게 전환하자고 제안하고 선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막연한 구호로만 느껴졌던 ‘정의로운 전환’이 이제 발전 노동자의 목소리와 팔뚝질 아래 구체적인 투쟁요구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330 충남노동자행진, 2달 뒤 부산에서 또 다른 행진이 시작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국 곳곳에서 공공재생에너지로 신속한 전환을 바라는 시민들, 석탄발전소 폐쇄는 정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노동자들,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과 함께 기후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기후정의활동가들의 싸움이 들불처럼 번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