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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체제전환운동으로, 조직하자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이하 ‘정치대회’)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괜히 머쓱하다. 벌써 넉 달이 흘렀나 싶다가도, 불과 넉달 전이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어쨌든 그 시간 동안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가 준비되어, 7월 17일 첫 전체회의가 열렸다. 

 

정치대회가 남긴 숙제 

정치대회가 제안될 때부터 정치대회가 끝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기대했고 다짐했다. 체제전환은 한순간의 마법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운동의 꾸준한 도전이 필요하다는 점이 다짐하게 만드는 이유였다면, ‘체제전환운동포럼’과 정치대회를 거치며 낯 모르던 이들이 마주하고 공통의 질문과 고민을 확인할 때의 설렘과 안도감은 기대의 이유였다. 30개의 원탁에 나눠앉아 토론했던 결과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원탁토론 결과 보고서’(2024.4.15. 발행)로 정리하고 보니, 체제전환운동의 흐름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숙제가 많았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저 홀로 할 수는 없기에 꾸준히 모이며 상호의존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른 운동이 가로지를수록 체제 비판과 대안을 더욱 선명하고 급진화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변혁할 운동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입장과 실천을 쌓아가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등 기대가 모이는 지점은 확인되었다. 계속해서 함께 모여야 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하지만 모이는 것만으로 기대가 충족되지는 않는다. 모이는 질서, 즉 연합체의 상과 기능이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치대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여러 우려가 나왔는데, 사회운동이 익숙한 연대체/연합체의 경험이 긍정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조직위원회, 가보자고~ 

체제전환운동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연합체의 모습이 어때야 할지 고민하기보다 ‘함께 모색’하는 흐름을 어떻게 이어갈지에 더 집중하기로 하면서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원회’)>라는 이름이 나왔다.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가 조직한 정치대회가 끝났다고 모임을 해소하지 말고 안팎으로 동료들을 조직하는 흐름을 이어가자는 취지다. 평가회의와 열린워크숍, 간담회 등을 통해 조직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면 좋을지, 어떤 활동을 벌이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왔다. 

체제를 전환하자는 말에, 아주 거대한 변혁의 구상부터 아주 소소한 일상의 변화까지 여러 기대가 버무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체제가 일상의 조건이 되고 일상이 체제의 조건이 되므로 체제전환운동에 거는 기대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념을 갱신하고 운동의 대안을 조직하고 지역과 현장으로부터 세력화를 시작하고 현실의 투쟁으로 가능성을 확인해가는 동시에, 자신의 운동을 재질문하고 다른 운동을 궁금해하고 분절된 운동의 경계를 넘나들기 위한 실천을 기획하며 답 없어 보여도 아무 말 아무 거에 도전해보자는 의견들이 오갔다. 

함께하고 싶지만 내 운동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고민이나, 운동이 갱신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과거의 경향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념만 강조하는 건 아닌지, 행동만 앞세우는 건 아닌지,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지, 너무 느긋한 건 아닌지 상반된 우려들이 나오기도 했다. 서로 다른 운동의 경험과 조건에서 언어와 감각의 차이부터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 매끄러웠을 리 없다. 하지만 그만큼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라 즐겁기도 했다. 조직위원회는 이런 과정을 이어갈 ‘우리’를 만들어가는 자리부터 되어야 했다. 

 

함께 준비체조 하는 상상

‘우리’를 가늠하며 첫발을 내딛는 자리로 1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정치대회 이후에도 체제전환운동을 만들어가자고 여기저기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모였다는 점만으로도 서로 반갑고 힘 나는 시간이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조직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2024년 사업계획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조직위원회는 자신을 ‘체제전환운동으로 스스로를, 동료를, 운동을 조직하는 기구’로 설명한다. 체제전환운동의 유일한 자리거나 자기완결적 조직이 되기를 지향하기보다 운동 안에서, 세상 곳곳에서 체제전환을 향한 흐름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매개하고 촉진하는 자리가 되자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체제전환운동의 흐름을 조직하고, 담론과 전략, 합력을 높일 수 있는 실천을 조직하자는 목적에 동의하는 단체 또는 개인이 조직위원으로 함께할 수 있다. 

하반기 사업계획으로 매체 발간과 수다회 등 기본사업을 꼬물꼬물 벌여보고, 여러 단체와 지역에서 공동실천의 경험을 쌓아보는 등이 정해졌다. 동시에 중기 전략을 만들기로 했다. 체제전환운동이 놓인 시대적 조건을 살피며 ‘우리’가 어떻게 따로-또-같이 움직일 수 있을지 그려보는 작업이다. 조금 더 길게 내다보며 한국 자본주의를 제대로 독파하고 체제전환의 전망과 전략을 고민하는 연구모임도 만들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는 함께 준비체조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운동의 자리에서 숨 가쁘게 힘겹게 경기 중인 선수들이 함께 모여 하는 준비체조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 실실 웃음이 난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  

정치대회 이후 22대 총선 결과가 나왔다. 누가 봐도 윤석열 대통령이 심판당한 선거였다. 그러면 ‘윤석열 심판’이 승리한 것일까? 여야가 막다른 골목만 찾아내려는 듯 출구 없는 정쟁을 반복하고, 대다수 사람이 직면한 위기는 공론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보수양당을 비판하던 사회운동의 위치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 ‘윤석열 심판’이 중요하다며 ‘더불어민주연합’을 추진했던 세력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상상력과 쟁점을 ‘윤석열 심판’으로 축소시키며 정치의 위기를 거들었을 뿐이다. 운동에 분기점을 형성하는 일도 더욱 긴요해졌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이 공허하지 않도록, 어떤 세력이 되어갈지 더 치열하게 도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