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거리를 넘나드는 고양이 돌봄이, 자신만의 고집과 독특함이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랑방 활동가의 가족이자 사랑방의 후원인. 안성희 님을 모시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이름은 안성희고요, 일단 어떤 경우에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유머러스’한 사람. 별 ‘욕심 없이’ 사는 사람. 그리고 약한 자나 동물을 대신해 ‘기꺼이 싸울 수 있는’ 사람. 그런데 또 사람에게는 ‘고집’스러워요. 나만의 기준과 방식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정해요. 예를 들면 같은 행동을 해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너그럽고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은 무시하고. 물론 제가 좋아하는 사람도 계속 그 행동을 하면 나중 가서 차단해버려요. 이런 고집 같은 게 있다 보니 저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편인데, 저는 거기 만족해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순 없잖아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굉장히 긍정적이고 힘 있는 것들만 있네요.
아프다거나 힘든 건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에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서 몇 시간을 엄청나게 울었는데 제가 그때 딱 결심한 게 두 번 다시 울지 말아야지 였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 후로 눈물이 없어졌던 것 같아요. 슬픈 드라마를 보거나 애들(반려고양이들)이 하늘로 떠나갈 때 빼고는 눈물이 안 나요. 저에게 직접적으로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오히려 침착해져요. (마음에 드시나요?) 맘에 들고 안 들고는 없어요. 그때 그 결심이 이런 결과로 이어지는구나 싶지. 누구한테 아프다고 말하는 게 싫었어요. 제가 노래방 가면 꼭 부르는 18번 노래가 있거든요. 결혼하기 전에, 아마 20대일 때 자주 불렀을 거예요. 김기하의 ‘나만의 방식’, 손성훈의 ‘내가 선택한 길’. 이거 둘 다 나중에 나이 들어 가사를 보니까 그때의 나는 나 혼자 발악을 하고 살았구나, 꺾이지 않으려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떤 가사가 떠오르세요?) “난 결코 쓰러지거나 힘없이 꺾이지 않아.”~♫
2025년 새해가 밝고 한 달이 지났네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냥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아요. 설 연휴에 일주일 쉬었다가 출근할 때 동료가 “언니, 나는 하도 놀아서 다시 일 나오려니 힘들더라. 언니도 힘들지 않았어?”했는데 사실 전 기분 좋았어요. 차가운 바람도 좋고. (일을 좋아하시나봐요?) 일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하루종일 집에 있는다고 생각하면 못 살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애들(반려고양이들)은 이쁘지만 일이 많아요. 얘네가 자꾸 깨워서 잠을 제대로 잔 지가 오래됐거든요. 하루는 술 먹고 푹 자고, 다음 하루는 피곤해서 푹 잠들고. 이런 식이에요.
그래도 고양이들이 저한테 주는 좋은 기운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받으려고 함께 사는 건 아니지만서도. 첫 고양이 돌보면서 다른 고양이에 관심이 생기고 다른 길고양이들도 돌보게 됐거든요. 제가 밥을 주면 그걸로 살아가는 애들도 있다는 게, 제가 살면서 작은 좋은 일을 하는구나 하는 뿌듯함을 줘요. 그 느낌이 저한테 주는 의미가 커요. 가끔 살기 지겨울 때, 그래도 얘네를 돌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해요. 삶에 윤기가 나게 한달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어디서 가장 체감하세요?
일 끝나면 빨리 집 가서 쉬고 싶어요. 집에 가서도 할 일이 많아서, 빨리 일하고 빨리 쉬어야지 하는 생각을 계속 해요.
비상계엄 이후에는 좀 어떻게 지내세요?
핑계 같지만 체력젹으로 소모돼서 집회엔 잘 안 나가요. 그런데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에 여전히 관심은 있어요. 뉴스에 나오는 시위 장면을 보니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와서 하는 걸 보면서 ‘아, 젊은이들이 나섰으니까 이 나라가 엉망이 되진 않겠구나’ 안심도 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에 심각한 건 소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요즘이에요. 사실 저도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저와는 무관한 듯 지냈는데, 활동가가 가족이다 보니 깊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구요. 어떤 불합리한 일들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게 누군가에겐 미안한 일 같고 그래요.
탄핵 이후에 다가올 세상, 이 문제는 해결되면좋겠다! 있으신가요?
힘들여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이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회의원은 (돈을) 조금 받아도 소방관, 환경미화원들은 많이 벌 수 있는.((웃음)) 그래서 저희 빌라 청소하시는 분께 (돈을) 더 드리자고 2만 원씩 더 내고 있는 가구가 몇 집 되거든요. 거기 동참하고 있기도 해요.
노동 관련해서는 저와 평소에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죠. 가끔 제가 답답해서 왜 파리바게뜨는 불매하면서 쿠팡은 그리 잘 쓰냐, 뭐라 할 때도 있잖아요.((웃음))
그렇죠. 그 차이는, 파리바게뜨 빵은 제가 안 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쿠팡은 쿠팡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을 제가 이미 겪은 거예요. 퇴근하면서 피곤한데 굳이 마트 가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파는 데 가서 사 오는 게 아니라 주문하면 바로 올 수 있고. 그리고 싸기까지 하니까. 그 편리함에 제가 이미 젖은 거겠죠. 차라리 쿠팡 같은 곳이 또 새롭게 생기면 거기서 시키고 싶은데…
그럼 이번엔 성희 님의 노동을 소개해주세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옷 도매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온라인 쇼핑몰로 제품을 올리기도 하고, 불량 검수도 하고, 오염을 지우기도 해요. 일한 지 7~8년 된 것 같은데, 뭐 크게 사명감이나 성취감 같은 느낌이 와닿진 않아요. 하는 이유라면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제게 활기를 주는 게 있죠.
책 읽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요즘에도 책 읽으세요?
최근에는 책을 잘 못 읽어요. 원래 읽고 싶은 책을 도서관에서 예약해서 읽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그러는 게 힘들어졌잖아요. 그래서 전자책으로 읽으면 예약을 한참 기다려야 하니까 기다리다가 말고… 요새는 책을 사볼까 생각도 해요.
추천하는 책이 있다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2019년에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제가 5.18에 죄책감 같은 걸 갖고 있거든요. 제가 20대 젊었을 적인데, 그때 그런 일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못) 하고 시간이 지나갔다는 게… 그러다 보니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아요. 죽은 몸의 시각에서 쓴 부분도 인상 깊었고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떠오르는데, 보통 전쟁은 남자들의 몫으로 그려지잖아요.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죽고 그런… 그런데 전쟁을 여자들의 시선으로 써낸 게 새로웠어요.
마지막으로, 사랑방 후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게,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