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는 내 인생의 재판 을 아그대다그대 이야기합니다
바람소리
기억나는 재판은 20대에 즉결심판을 수원지법에서 받을 때였다. 그때는 주소지가 불분명해서 통지서를 내가 받지 못해 거의 1년이 넘게 끌다가 우연히 집에 갔다가 받았다. 인천 부평공단에서 연대집회를 하다 연행된 사건이었다. 연행되고도 1년 넘게 지난 사건인데다 사건 종료일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즉결심판을 수원지법 판사실에서 받았다. 기억이 안 난다가 대부분이었고 결국 무혐의(무죄였나? 기억이 가물가물)를 받았다. 역시 난 관운이 없나보다.ㅋㅋ
ㅎㅊ
요즘 사랑방에 재판이 너무 많다. 내 첫 재판은 2008년 FTA 반대 집회 때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되면서 시작했다. 이후 다른 재판도 받아보고(오 무죄!!!) 증인도 나갔지만, 첫 재판에서 선고를 받을 때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재판장의 분위기는 잘못했다고 한번만 봐달라고 하는 분위기였다. 내 앞 차례에서 반성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나니, 뜬금없이 짜증이 났다. 그래서 끝까지 잘못했단 말은 하지 않고, 이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렇게 말한 건 잘한 것 같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잘못은 무슨!!
구석진
난 '재판'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착한 시민이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 될 텐데. '모르고'가 말도 안 되는 것일지 '착한 시민'이 그런 것일지. ㅋㅋ
정록
나에게 재판이라면 눈이 펑펑 내리던 2006년 2월에 받은 병역거부 재판이 전부다. 그날 판사는 현행법상 어쩔 수 없이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며 1년 6개월 형을 내리고 나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 없냐고 물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나는 머뭇거리며 '... 예... 뭐 특별히 할 말은.....'이라며 머쓱하게 호송대기실로 들어갔다. 나중에 사람들이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뻘쭘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고. 재밌게도 이와 비슷한 일은 병무청 신체검사장에서도 있었다. 내 시력을 검사한 군의관이 현역 입영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그때도 '예... 뭐 그냥.....'이라며 얼버무리다가 3급 현역입영 대상자가 됐었다. 법정최후진술을 잘했다고 구속이 안 될 것도 아니었으니 뭐 아쉬움은 없다 쩝......(현역입영대상자가 된 건 아직도 아쉬운 건가? ㅡ,.ㅡ)
세주
재판..작은 재판이어서 그랬는지 한꺼번에 우르르 재판장에 들어가서 순서대로 이름 불렸던 기억이 있다. 재판이 처음이라 판사한테 당했었지..ㅋㅋ 뭐 처음이더라도 상황 대처능력이 쫌 좋았으면 나았을 텐데. 지금 다시 그 상황 되면. 판사한테 한방 먹일 말을 날렸을 텐데ㅋㅋㅋ
미류
2006년 평택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닷없이 연행된 적이 있다. 약식기소가 되어,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변호사 선임 뭐 그런 것도 몰라서, 혼자 증인 신청하고, 판사가 불쌍했는지 국선변호사 불러줬는데 별로 호의적이지 않아서 거절하고, 경찰도 증인으로 불러서 신문하고 그랬는데, 어쨌든 무죄를 받아냈다. 그런데 사실 여전히 뭐가 쟁점이었는지는 아리송하다. 재판정 안에서의 쟁점은 늘 재판정 밖의 쟁점과 단절되고 법의 틀로 재구성된다. 그래서 2004년 전범민중재판과 2009년 용산국민법정을 내 인생의 재판으로 기억하고 싶다!
ㅁ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재판과 현실의 재판은 매우! 결코! 다르다는 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배우고 있다. (순진했거나 멍청했거나... 그래서 뼈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