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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그집] 당신이 사는 곳

연재를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최고 명문대, 군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병역거부를 하던 날 찾았던 논산훈련소에서 연대장이 입영대상자들과 가족친구들에게 한 연설의 첫마디다. 썰렁함은 그렇다 치고 특유의 연대장 혹은 교장의 목소리의 느낌이 생생하다. 어쩌면 그렇게들, 자리에 맞는 목소리와 말투를 가질까. 높고 시린 푸른 11월의 하늘, 바싹 짧게 깎은 머리의 몇천 명의 사내들. 그 대열에 뛰어들지 못한 채 나와 저들의 경계는 무엇일까 생각했었다.

병역거부를 결정하기 이전까지의 고민의 시간에도, 또 선언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가 군인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이등병이 되고,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었다면 나는 계급에 맞는 목소리와 말투를 지녔을까? 그리고 나서는 평범한 예비역의 생각과 특징들을 얼마간 단련된 몸에 새겨 넣었을까?

오늘은, 재판을 받는다. 형식화된 재판에 대한 특별한 감정보다는 지고 살아왔던 짐들의 무게와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무언가 했어야 하는데 까먹은 것들에 대한 불안들이 느껴진다. 내겐 긴 여행을 앞두고 하는 출국준비와 비슷하기도 하다. 공항에 가서야, 비행기가 뜨고 나서야 실감이 나려나. 1년 6개월은, 길다고도 짧다고도 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태어난 나라와 지역, 거쳐 온 곳들, 살았던 이런 저런 형태의 집들, 속했던 사회들, 활동했던 단체들, 여행했던 곳들, 그리고 교통사고가 나서 아팠을 때까지, 나는 각기 다른 몸과 마음을 다듬게 됐던 것 같다. 감옥은, 학교나 군대가 그러하듯이 어떠한 종류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 곳이다. 앞으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게 될 이 집에서 나는 어떠한 종류의 인간이 되어갈까. 다른 공간과 위치에서 나는 어떠한 표정과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까.

얼굴을 마주한 대화도,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이메일도, 전화도, 문자도, 내게 익숙한 소통수단은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한 달에 몇 분 남짓한 면회시간을 제외하면 오직 손으로 쓰는 편지만이 밖으로의 유일한 소통수단이다.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익숙지 않은 수단으로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불안과 두려움, 막막함과 함께 어떤 방향으로든 변하게 될 나에 대한 설렘마저 느끼며, 재판 전날 밤을 수다로 지새운다.
덧붙임

본명은 성민, 이리저리 활동하고 살고 여행하다 2013년 11월 18일 입영을 거부하고 병역거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