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거부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일단 궁금해 합니다. 거부한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받아들여지는 정도에 따라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럴 수 있다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죠.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란 기대에 특별히 부응하지 못하면 사회 부적응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습니다. 대학이나 병역은 그런 특별한 이유가 있어도 거부행위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너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기도 합니다. 학교와 군대의 존재의미가 뭐고 왜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시스템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왜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지, 그런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왜 취업에 어려움을 겪거나 구속되어야 하고 감옥에도 가야하는지, 이런 질문은 거부행위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한 것’은 질문 자체가 불가능한 대전제가 되어버리고, 그것을 거부한 사실만 사건화 됩니다.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면 할수록 대전제로서의 지위는 공고해지고, 거부행위를 한 사람만 특별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무엇이 어떻게 왜 만들어낸 걸까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이런 고민들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잠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인문계와 실업계 사이에서 고민하긴 했지만, 진학 자체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죠. 물론 고등학교는 대학교를 전제해 둔 진학이었습니다. 그만큼 학교라는 시스템에 적응을 잘 했고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생의 조건에 별 고민 없이 부응해 왔습니다. 그러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생운동을 접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체제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병역문제도 비슷한 시기에 접하게 됐고, 아직 영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군대라는 시스템에 복종하길 거부한다는 의미로 거부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병역거부자’를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은 군대도 거부가 가능하며, 또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죠. 이렇듯 학교나 군대에 대해 저는 처음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옆에서 말해주고 보여주며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직접 실천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저는 아마 스스로를 병역거부자로 소개하지 못했을 겁니다.
수동성은 대학과 군대를 관통하는 문화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그런 수동성에서 고민을 시작했고, 병역거부를 만나며 수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의 선언과 행위가 당연해진 시스템에 얼마만큼의 흠집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병역거부가 거부로서 끝나길 바라는 병역거부자는 아마 없을 겁니다. 저 역시 최소한 거부행위가 수감으로 이어지는 상황만은 바뀌길 바랐고, 이후의 삶으로 거부의 내용을 증명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비양심적 병역거부라고 한 건 그런 의미였습니다. 병역거부를 하며 소견서에 썼던 이야기를 이후의 삶에서 녹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지금도 소견서의 내용과 정신에는 동의하지만, 소견서를 쓸 만큼 거부 이유를 거창하게 포장해 놓고 선언과 행위가 일회성이 아니길 바랐으면서도, 정작 현실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누군가 제게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병역거부 할래?!”라고 묻는다면, 저는 뭐라고 답하게 될까요?! 다시 병역은 거부해도 소견서는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병역거부 할래?!”와 같은 질문을 아직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병역거부 자체를 이야기할 만한 상황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건 아직까지 병역을 묻지 않는 이력서는 있어도 학력을 묻지 않는 이력서는 없었다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특히 주방이란 공간에서 일하는데 병역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가끔 ‘병역필’을 자격요건으로 삼는 주방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서비스업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배웠는지 보다 당장 그곳에서 일할 준비가 되었는지, 서비스를 위한 재교육을 얼마나 충실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판매 가능한 유무형의 완성도 있는 상품을 얼마나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병역은 군대와 닮아있는 수동적인 주방문화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부차적인 척도로 작용했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역을 거부한 저는 군대와 같은 주방문화에 적응을 잘 했고, 일을 하며 병역과 관련된 질문을 잘도 피해갔습니다.
사람들이 군대 갔다 온 이야기를 하면 저는 대부분의 경우 침묵합니다. 이야기의 화살이 저에게로 오지 않는 이상 먼저 말하지 않으며 속으로 그런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랍니다. 그래도 누군가 “군대...어디 나오셨어요?!”하고 물으면 병역을 거부했다고 말합니다. 그럼 그게 뭔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자기 주위에도 여호와의 증인이 있다는 사람부터, 왜 거부했는지를 묻는 사람까지 다양한 반응들을 보입니다. 그러다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왜 그랬는지’를 설명할 때입니다. ‘화장실 에피소드’까지 전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이력서에도 병역거부를 밝힌 적이 있지만 특별히 불이익을 받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 걸 보면, 병역거부와 그 이유가 같이 일할 수 없을 정도의 거부감은 불러일으키지 않나봅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매니저가 조용히 불러 병역거부에 대해 함구(?) 하라는 주문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일을 해야 했고, 병역거부 이후 말없이 조용히 지내는 건 제 전공이었으니까요.
시간을 되돌려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는 질문과 보다 나은 일자리를 위해 매번 스스로의 선택을 다시 생각해야하는 상황은 질이 다릅니다. 대학거부를 하셨던 분들도 당시로 돌아간다면 매번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며, 제도권으로의 진학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되는 상황은 밥벌이가 걸린 중요한 시점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이 거부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겠죠. 그래서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병역거부 할래?!”와 같은 질문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 질문엔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 묻어나진 않기 때문입니다. 거부도 곧 살기 위한 선택인데, 더 나은 삶을 위해 그 선택을 다시 고민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같은 선택을 한다는 건 점점 쉽지 않은 일이 될 거고, 선택을 저울질 받는 상황은 더 날카롭게 파고들 것입니다. 사실 병역거부자의 일상은 일상적으로 거부를 실천할 만큼 팍팍하지 않습니다. 예비군 훈련도 받지 않으니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으며, 가끔 전쟁을 가정한 질문들을 받지만 누구도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할 수 있길 바라진 않을 겁니다.
군인이 되는 학교인 군대를 거부한 병역거부자가 다른 학교는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병역거부 직전 대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군대와 같은 감옥과 주방을 경험하며, 군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에 군대 갔다 온 사람 못지않게 편입했습니다. 졸업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사회가 대학졸업에 두는 의미까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병역거부로서의 삶도 감옥을 졸업 하면서 졸업한 듯합니다. 그런 저에게 대학거부의 생생한 삶의 현장은 거부도 삶의 한 방식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들의 소견서 같았습니다. 보통 병역거부자는 감옥에 가기 전에 소견서를 쓰지만, 대학거부는 이미 거부의 순간부터가 소견서의 실천으로 다가왔습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거부행위를 공격하고 다시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삶을 거부하지 않으며 거부의 삶을 살아냅니다.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지만, 거부가 꼭 불가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포함하니까요. 절박함 때문에 병역거부를 다시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저도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 위한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덧붙임
타랑 님은 커피를 만들지만, 커피맛은 잘 모르는 한낱 바리스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