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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맹의 인권이야기] 독일 사례로 본 징병제 폐지와 반군사주의 운동의 과제

독일에서 징병제가 사라진 이유

90년 걸프전 당시 자국 군대 파병을 검토하던 독일 정부는 참전을 결국 보류했다. 그 결정의 배경에는 2차 대전 이후 첫 해외파병이 될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한 사회적 논쟁도 있었지만, 전쟁에 당사자로 참여하게 될 이들의 집단적인 반발이 자리하고 있었다. 91년, 예비군 7,000명이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현역병 대상자 중 15만 명이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현역병 거부 수치는 전년도 병역거부자 수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는 자신들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여 전쟁을 수행할 군인을 원하는 독일군 입장에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그들의 관심은 징병된 ‘어중이떠중이’ 군인 대신 언제든 자기들 명령에 따를 수 있는 ‘전문’ 군인을 모집하는 데로 옮겨갔다.

그런 맥락에서 독일에서 징병제가 폐지된 것은 평화운동의 결과라기보다는 군 당국의 이익을 좇은 결정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Andreas 인용). 냉전의 종식과 맞물려 군 감축이 진행되면서 2000년에 14만 명을 상회하던 군 규모는 2000년대 중후반 이후 6만 명대로 급감했다. 그에 따라 징집 군인 수 역시 줄어들었고, 병역거부를 선언하려 해도 이미 넘치는 징집 대기자 수 때문에 군 면제 처분을 받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독일이 2011년 징병제를 유보(추후 언제든 손쉽게 징병을 다시 실시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그들은 ‘폐지’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하기로 한 결정은 프로페셔널한, 즉 살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군인 중심으로 군대를 재편해나가는 맥락의 연장선상이라고 봐야 한다.

징병제가 폐지된 나라에서의 병역거부 운동

징병제가 사라졌더라도 병역거부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는 ‘스스로’ 입대한 군인들의 병역거부권 문제이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과 영국군 중에 병역거부를 신청하거나 탈영을 하는 숫자가 증가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입대한 이들이 웬 병역거부냐는 반론에 대응하는 논리는 한국에서 예비군 병역거부를 옹호하는 근거와도 맞닿는다.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시간에 따라 변화 가능한 유동적 속성을 갖는다는 것까지 인정할 때 그 의미를 온전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캠프 엑스레이>에 나오는 것처럼 뭔가 그럴듯한 직업인 줄 알고 입대했다가 실제론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비인간적 명령에 따라야 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누구나 ‘인간’이길 다시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러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신병 모집 홍보관 모습<br />

▲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신병 모집 홍보관 모습


징병제가 없어진 서유럽 국가들에서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운동의 과제는 군의 신병 모집 전략에 맞서는 문제이다. 독일군의 경우 영국이나 미국처럼 다른 지원병 국가에서 보이는 모습과 동일하게 학교에 들어가 청소년들을 상대로 신병 모집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전문적’ 인력을 끌어오기 위해 전쟁과 살상의 이미지가 아닌 세련된 커리어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직접적 목표는 명령에 복종하여 총을 쏠 수 있는 군인을 모으는 것이지만, 잠재적으론 분쟁에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통념을 확산시키는 목표 또한 가지고 있다.

신병 모집 홍보관 내에 걸려 있는 광고들<br />

▲ 신병 모집 홍보관 내에 걸려 있는 광고들


어떻게 군사화에 맞설 것인가

“예전엔 병역거부자들 덕분에 전쟁과 독일의 군대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촉발되었는데 징병제가 없어진 이후론 병역거부자들이 사라지면서 그런 논의가 어려워졌다.” 옛 동독 지역인 노이디텐도르프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의 말이다. 자기들이 다시 전쟁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이 한국의 ‘전쟁저항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낯간지러운 결론으로 끝을 낸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지원병제는 특수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조용한 무관심을 조성한다. 이에 반해 보편적 의무로 운영되는 징병제는 어쩔 수 없이 전 사회적인 관심사가 된다”(정희진 인용)는 지적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앞서 할아버지나 정희진의 지적과 다르게, 독일 사회에서 전쟁에 대한 무관심은 징병제가 유지되던 때에 이미 시작되었다(Andreas 인용). 독일에서 병역거부 심사를 담당하던 위원회가 존재했던 1983년 전까지는 병역거부를 인정받으려면 “네 여동생이 강간당하고 있는데도 총을 들지 않을 것인가”라는 식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이 위원회가 사라지고 병역거부를 인정받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독일 병역거부 운동의 탈정치화가 시작했다고 안드레아스는 지적한다. 병역거부가 군사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단지 군 복무냐 대체복무냐의 양자택일 문제로 바뀌면서 ‘반군사주의’를 내건 병역거부자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군대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이상 독일 당국은 늘어나는 병역거부자 숫자에 어떠한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99년 나토의 유고 공습 당시 연립내각 집권세력이던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이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독일군의 해외 군사작전 참여를 승인했음에도 91년 걸프전 때와 다르게 그에 반대하는 병역거부자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렇게 탈정치화된 병역거부 운동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안드레아스는 말한다.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질문은 공허한 물음일 수 있다. 독일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평화운동그룹의 문제의식과 무관하게 국가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징병이 아닌 모병제로 전환했다. 징병제 종식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전문화된 살상 기술과 전쟁에 대한 무관심을 낳는 것에 불과하다면, 질문의 방향은 반군사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군사화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모병제에서도 병역거부자는 여전히 등장할 것이고 군사적 개입에 의한 갈등 해결이나 상명하복의 군사 문화는 더 세련되고 은밀한 방식으로 공고해질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독일에서 만난 활동가 중 거의 유일한 여성 활동가였고, 터키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에서 일하는 카린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스스로를 반군사주의 활동가로 소개한 그녀는 자신의 교육활동 역시 같은 선상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준비하는 행동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독일 군대가 어떻고 징병제가 어떻고 얘기를 하면 아마 바로 다 재미없다고 도망갈 것이다. 그보단 일상 관계에서 가령 싸움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다른 대안이 가능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인 내 권위를 아이들이 의심할 수 있을 때, 물론 실제 그러면 피곤하긴 하겠지만,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임

날맹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이며, '전쟁없는세상'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