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인권단체 연대모임인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운영회의에 함께 하면서 인권운동사랑방과의 인연이 시작된 장길완 님을 만났습니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을 함께 하며 더욱 쫀쫀하게 만나게 됐는데요, 병역거부를 준비해온 장길완 님이 곧 대체복무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건강하게 대체복무를 마치고 인권운동의 동료로 반갑게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립니다.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장길완이라고 하고요, 민변에서 상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단답형 소개가 아쉬워 질문 보태봅니다. 자신을 색으로 표현하면? 아니면 닮고 싶은 색깔을 꼽아보면?
음... 빨간색이요. 너무 원초적이고 단순해서 말하기 좀 부끄러운데요, 빨강이 힘을 주는 색인 것 같아서요. 제가 일이 많으면 빨리 소진되는 사람이더라고요. 힘을 잘 내면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기에 열정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꼽아봅니다.
늘 유쾌해 보여서 에너지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힘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노하우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우선 꼽자면 이태원이나 종로 게이클럽 가는 거였죠. 근데 코로나 상황으로 게이클럽도 문 닫으면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답답하더라고요. 전 힘들 때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푸는 것 같아요. 이야기하고 나면 또 잘 까먹는 편이라 그런지 빨리 털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다음을 맞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운동적으로도 기존에 익숙하게 해온 것들을 못했잖아요. 집담회, 토론회, 집회 등등 같이 모여 고민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함께 만났을 때 얻게 되는 에너지가 있는데, 그게 확 줄어드니까 막막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스우파’를 보고 춤에 꽂혀서 요즘 스트릿댄스를 배우고 있거든요. 그런 것을 배우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동작을 잘 쓰지 않던 내 몸을 움직여가며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해볼까 고민하면서 이 동작 저 동작 해보는데, 그렇게 일주일에 하루 3시간 완전 격하게 유산소운동을 하며 평소 일할 때 하는 고민이랑 전혀 다른 류의 고민을 하고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전혀 다른 무언가를 배우고 해보는 것 추천합니다. ㅎㅎ
민변에서 여러 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또 많은 일이 있으셨을 텐데요, 활동하며 뿌듯했던 것 좀 소개해주세요.
민변에는 의제별로 나누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15개 위원회가 있는데요, 각 위원회를 상근자들이 나눠 맡아 지원하는 업무를 해요. 전 여성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소수자인권위원회를 함께 맡아왔는데요, 2019년 헌법재판소 낙태죄 폐지 결정 나오기까지 활동했던 게 우선 떠오르고요, 문화재청 한복가이드라인 대응했던 것도 기억나네요. 한복을 입으면 고궁 무료관람을 할 수 있는데, 생물학적 성별로 나눠 남성은 남성한복, 여성은 여성한복을 입어야 하는 거예요. 2017년 국가인권위 차별 진정을 하면서 진정인으로 함께 한 사람들이 성별과 다르거나 입고 싶은 한복을 자유롭게 입고 모였어요.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함께 궁으로 갔지요. 본인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겉모습만 보고는 통과시켜주더라고요. 제도가 설정한 기준점이 모든 시민을 포괄하지 못하고 어떻게 미끄러지는지, 정상성이라는 허구적 기준에 따라 누구는 통과하고 누구는 통과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동인권 관련해서는 참정권이 확대되는 계기가 주요하게 있었던 것 같고요. 아동학대도 큰 이슈였는데, 구체적으로 제도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아동학대대응시스템이 엉망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정상가족만을 전제로 사회적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있고요. 성소수자아동, 이주아동 이러한 교차점은 고려하지 않죠. 지금 대선철인데 매번 후보마다 아동친화적 국가 만들겠다고 하잖아요. 사회가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처럼 말하는데, 아동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셋팅되어 있는 문제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소년 사법시스템도 엉망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활동하면서 여러 단체를 만났을 텐데, 사랑방은 이렇다 할 만한 특징이 있나 궁금해요.
민변에서 활동하기 전후가 다른데요, 엄청 오래된 단체 그래서 활동가들 나이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랑방이라는 이름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곳을 떠올리게 해서 상임활동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근데 심지어 상임활동가도 있는 단체였어! 인권운동더하기, 차제연으로 사랑방 활동가들 만나고 같이 활동하면서는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 글도 잘쓰고 저어하다가도 발언시키면 잘하고 집회에서 경찰이랑도 잘 싸우고요.
‘인권으로읽는세상’ 챙겨보는데요, 많은 인권의제를 다 쫓아가기 어렵잖아요. 어떤 관점으로 이 사안을 봐야 할지 맥이 안 잡힐 때 사랑방의 글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사랑방에서 내는 입장을 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주류질서에 대해 문제제기가 같이 되는데, 단순히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경계랄까 틈새 속에서 대안적인 상상력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가자 제안해준다고 생각해요. 인권, 평화, 다양성 이런 말들이 어떨 때는 자본주의와 어떨 때는 가부장제와 조우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랑방은 인권운동의 급진성을 계속 고민하고 이어가는 것 같아요. 치열하게 출근해서 활동하고 생활하고 복작복작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담인데요, 사랑방에서 10년 전쯤 자원활동을 했던 친구가 있거든요. 사랑방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2년 전에 만들었나, 다른 단체에 비해 엄청 늦은 편이었잖아요. 근데 그 친구가 사랑방 페북 보고 사랑방이 이런 것도 한다고 놀라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몽을 비롯해 차제연에서 활동하는 사랑방 활동가들은 홈페이지도 홍보물도 잘 만들고 SNS도 잘하는데, 사랑방은 정작 그거랑은 거리가 멀어서 무슨 간극이지 싶어 웃겼습니다.
묵직했다가 웃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타이밍에 길완 님이 생각하는 사랑방과 어울리는 색은?
주황색이요. (귤 닮은 로고 때문인가요? ^^;;) 중독성이 있잖아요. 겨울귤만이 아니라 여름귤도 맛있더라고요. 여름에 제주 갔을 때 여름귤이 별미라고 해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기회 되면 꼭 드셔보세요.
작년 #평등길1110으로 더 쫀쫀하게 만났는데요, 기억나는 에피소드 좀 나눠주세요.
평등길로 미류와 종걸이 걸을 때 경로 짜고 함께 걸을 사람 연결하는 역할을 했어요. 작년 초 차제연에서 계획 세울 때 도보행진이 들어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상은 없었거든요.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이 성사됐지만 국회는 아무런 논의를 안하고 온라인농성 끝나갈 즈음 어느날 미류가 연락하더니 총괄을 맡아줄 수 있냐고 했어요. 급하게 무슨 일을 하다 전화받은 거라 어떤 일인지 제대로 확인 못하고 ‘어어어어’했는데, 그렇게 험난한 여정에 제가 함께하게 된 거였죠. 첫 회의를 갔는데, 부산에서 서울? 둘이서? 너무 큰 사이즈의 일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싶었어요. 평등길 마치고 “둘이서 걸었지만, 한 번도 둘뿐인 적이 없었다”는 얘기가 인상에 남아요. 코로나 상황에다 지역에서 붙을 수 있는 사람들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고 막막했는데, 제가 너무 서울 중심으로만 생각했더라고요. 처음 접한 지역의 시민단체들, 장애인자립센터, 민주노총 지부까지 엄청 다양한 단위에서 붙었고 같이 걷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지역간담회도 줌으로 정말 많이 하고 평등버스도 다녀오고 그동안 평등의 감각을 곳곳에 심는 활동을 차제연이 해왔던 것 같은데요, 소위 말하는 성과라는 게 여론조사처럼 지표로 바로 보이지 않잖아요. 10만 행동을 시작으로 평등길에 이어 최근 유세단까지 점차 보이는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에 대해 한번쯤 들어본 분들이 오고, 들어보지 못한 분들도 와서 접하고, 오랜 시간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동안 노력해온 것이 실질적으로 가시화되어 보이는 게 감동적이더라고요. 차별과 불평등이 개인의 문제로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가 개입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제다, 그렇게 시민들의 의식도 사회도 변했는데 국회와 정치만 안변하고 그대로인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하며 총괄 맡은 날이 제가 나온 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이었거든요. 유세차로 학교 앞을 지나는데, 내가 다닌 학교 앞에서 이렇게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는 날이 오다니 신기했어요. 나에게 익숙한 공간, 내가 사는 공간을 활동의 공간으로 생각하지 못했었구나 싶더라고요. 주로 우리가 중요하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모이는 장소가 광화문 광장이라던지 국회 앞이라던지 상징성이 있는 장소잖아요. 평등길할 때 청주에서도 그랬고 많은 분들이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이렇게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걸으며 차별금지법을 외칠 줄 몰랐다,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다, 퀴퍼도 열고 반차별 활동 함께 하는 네트워크도 만들고 지역에서 계속 활동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싸워야 하는데, 다음에 올 싸움들을 함께 하기 위해 단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계기들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삶의 공간이 이전과 다르게 의미화된 것, 차제연 활동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뿌듯합니다!
대체복무 소집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오래 전부터 병역거부 준비를 해왔는데, 어떤 상황인가요?
2018년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2020년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었잖아요. 병역거부 하면 대체역 심사를 받게 되고요, 인용 결정이 나면 대체역 편입을 기다리거든요. 작년 9월에 인용 결정이 나서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최근 소집 연락이 왔어요. 5월이나 6월 초에 소집되서 3주간 교육을 받고 근무할 교정시설 배치를 받으면 그곳에서 36개월 동안 일하게 될 거예요.
(심사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병역거부 소견을 내면 담당 조사관이 배정되서 3시간 정도 조사를 받거든요. 그럼 다시 소위원회로 넘어가서 거기서 또 사전심사를 받아요. 그리고 전원회의 본심사로 넘어가는데 대체역심사위원회 위원이 모두 29명이거든요. 그 위원들 앞에서 또 이야기를 해야 해요. 장관 후보자도 아닌데 국회 청문회에 앉아있는 느낌이에요. 그때 병무청이나 국방부 추천인사들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데, 위원 중에는 인권활동가들도 있어서 내부에서 정말 많이 싸우고 그래서 그나마 초창기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들었어요. 어딜 가나 인권활동가는 싸워야 하는 운명인가 봐요. 병역거부를 결정한 계기와 시기를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다루는데요, 병역거부 하는 사람마다 자기 생각이나 고민이 다를 수 있고 이어지는 건데, 무 자르듯 ‘양심’을 다루면서 그에 따른 건지 여부를 구분하고 심사해서 가부를 정하는 게 문제적이죠. 대체복무제가 물론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고 문제도 많고 저 심사받았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화가 났던 장면들도 분명 있지만, 15년 동안 병역거부자들, 평화활동가들이 싸워왔기에 마련된 제도잖아요. 그래서 그만큼의 의미를 확인하면서 다시 앞으로 점차 바꿔나가야 할 지점이 많겠죠.
소집을 앞두고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이 복잡할 것 같아요.
전없세 회원 중에 대체복무를 가는 게 제가 두 번째래요. 어떨지 파악되는 게 없으니 불안하기도 한데요, 또 너무 늦게 가지는 않길 바랐어요. 올해는 시작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급작스럽게 소집 연락이 와서 생각보다 빨리 정리하게 된 상황이에요. 그동안 활동하며 늘 주변에 동료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 공간은 고민을 같이 나눌 동료가 있을까 모르겠고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대체복무제를 먼저 도입한 나라들 여럿인데, 노르웨이는 대체복무 노조도 만들어져 활동도 하고 파업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교정직 공무원이 노조를 만들 수 없는 게 현실인데 놀랍죠. 국가가 승인해준 신념에 포섭돼서 이 정도면 끝, 이렇게는 아니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해온 고민을 그 안에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같이 나눌 동료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3년 잘 보내야죠. 사랑방과 같은 단체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한국사회 평화의 지평을 넓혀가실 거라고 믿으면서, 저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려고요.
이제 곧 대선인데요, 똑같이 갑갑한 마음일 듯한데 우리가 이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면 좋을까요?
잘 통과는 못할 거에요. 세상을 망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 빠지는 상황이긴 하지만, 정치라는 게 국회, 청와대에서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윤석열이 되면 검찰이 다 좌지우지할 거라고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렇게만 세상이 돌아가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온 시간이 있고, 평등길처럼 쌓여온 것을 보고 확인했던 시간을 잘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더 넓은 층위에서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시민들이 같이 경험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고민해갔으면 해요. 인수인계할 것 정리하면서 보니 이런 것도 했었구나, 이런 기억이 나에게 있구나 새삼 느낀 게 많았거든요. 힘 빠질 때 다시 힘낼 수 있게 기록을 잘하고 또 기억을 잘하면 좋겠어요. 우선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ㅎㅎ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가에게 하고 싶은 말?
사랑방 활동가들 너무 애정하고요, 국회 앞에서 깃발행동 할 때 촬영했는데 저 보고 ‘저분 경찰이야?’ 했다는 분 한번 술자리 하고 싶네요. 다들 인권운동만이 아니라 평소 운동도 하면서 건강하시길 기원하고요, 대체복무 마치면 다시 후원인으로, 활동의 동료로 만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