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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연대와 저항의 약속을 함께 다지다

밀양X청도 주민들과 함께 한 72시간 송년회

밀양 주민들을 처음 만났던 날은 2013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한없이 씁쓸했던 대선 결과, 그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깊은 좌절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소식에 마음이 무겁고 캄캄하기만 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 밀양 주민들이 1박 2일 간의 희망순례로 서울에 오셨습니다. 밀양에서 출발하여 부산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분향소를 시작으로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철탑 농성장, 평택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철탑 농성장,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의 굴다리 농성장로 이어진 걸음... 함께 만나 얼싸안고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향해 한없이 손을 흔들며 “사랑한다”, “함께 싸우는 우리가 있다” 외치던 밀양의 할매, 할배로부터 얻은 위로는 싸움을 이어갈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시금 확인한 희망. 그것은 밀양으로 향했던 희망버스로 이어졌습니다. 2013년 10월 다시 공사가 강행되면서 매일매일 전쟁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야했던 밀양의 할매, 할배들을 만나러 가자고 노동자들이 제안했지요. 암흑과도 같았던 시기, 사람이란 희망의 빛을 전해줬던 밀양에 이제 우리가 희망의 빛이 되어주자고요.

 

송전탑이 모두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송전이 시작되는 때 밀양의 주민들이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밀양과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청도 삼평리의 주민들도 함께 나섰습니다. 가장 아프고 속상한 때, 그러한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현장을,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72시간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12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이어진 여정이었습니다. 송전탑, 골프장,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파괴, 세월호 참사, 강제철거, 노점 탄압... 저마다의 싸움의 이유가 있지만,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렇게 연대와 저항의 약속을 함께 새기고자 나선 길이었습니다.

 

15일 이른 아침 밀양에서 출발한 버스, 청도에 들러 삼평리 할매들을 태우고 나니 45인승 버스가 사람들 온기로 꽉 찹니다. 한파가 찾아왔다고 했지만, 버스 안은 후끈후끈 오히려 열이 납니다. 첫 번째 행선지는 구미, 어느덧 굴뚝 농성 200일을 넘긴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를 만나러 갑니다. 마침 하루 전인 14일이 차광호 동지의 생일이어서 케잌과 생일축하 카드(플랑)를 준비했습니다. 차광호 동지가 오른 파란 굴뚝을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할매가 이야기합니다.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밀양과 청도 주민들이 온다는 소식에 KEC 노동자들도 농성장을 찾아왔습니다.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준비해준 따끈한 김치국밥을 함께 먹고 강원도 골프장 반대 주민들을 만나러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10년째 이어가고 있는 골프장 반대 싸움, 고속도로가 나면서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좋아지니 강원도에 신규로 건설 계획한 골프장만 수십 개라고 합니다. 골프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면서 이런 것을 공익시설이라고 주민들의 집과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해주고,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온갖 불법과 탈법이 난무한 상황에서 마을공동체가 깨진 지 오래란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강원도 골프장 반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밀양과 청도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런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요? 눈 소식이 잦은 강원도라지만 평소보다 많은 눈이 내려 오가기가 쉽지 않은 날이었음에도 강원도 곳곳에서 밀양과 청도 주민들을 만나러 오신 분들이 따뜻한 환영 속에서 이야기와 노래가 어우러지며 늦도록 송년잔치가 이어졌어요.

16일 강원도 홍천에서 다시 발길을 옮깁니다. 발이 푹 꺼질 정도로 쌓인 눈,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으면서도 이토록 많이 내린 눈은 처음 본다면서 환하게 웃고 사진 찍어달라는 할매들이 참 정겨웠어요. 둘째 날은 가야 할 현장이 많아서 두 조로 나누어져 이동을 했습니다. 한 조는 끈끈하게 밀양과 청도와 연대했던 충북 지역 동지들을 만나러 청주에 들렀다가 노조파괴를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나러 영동으로 향했습니다. 또 다른 조는 부당해고 10년 이제는 정말 끝을 내자며 단식 투쟁 중인 코오롱 노동자들, 그리고 2000일 넘게 정리해고 싸움을 하며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손 내밀고자 굴뚝에 오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만나러 과천과 평택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산 세월호 분향소에 모였어요. 영정사진을 마주하며 다시금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면서 이어진 가족대책위와의 간담회에서 밀양과 청도 주민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더더욱 꼬옥 서로를 안고 한참을 토닥였습니다. 저녁시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고난 받는 이들이 함께 하는 송년집회가 열렸습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비정규직․정리해고에 맞서 일터로 돌아가고 인간답게 일하기 위해, 노점 탄압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제2의 용산이 없도록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세월호 유가족들, 그리고 밀양과 청도 주민들이 한 데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이 시대 함께 겪는 이 고난이 우리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며 연대와 저항의 약속을 다시금 함께 다지는 시간은 꽁꽁 바닥이 얼 만큼 추웠던 날씨도 잊을 만큼 뜨거웠습니다. 귀 끝을 스치는 매서운 겨울바람보다 더 강하게 감싼 것은 함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로의 온기였어요. 거울과도 같은 서로를 통해 얻은 기운으로 72시간 송년회 마지막 날을 맞이합니다.

 

17일 아침 저 멀리 나주로 이사 간 한전을 향해 집들이 집회를 떠났습니다. 4시간 여 달려 나주에 도착하니 전국에서 동원된 경찰병력이 그득한 가운데, 따뜻한 차를 준비해놓고 밀양과 청도 주민들을 맞이하고 싶어 전남 지역 곳곳에서 모인 분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해주십니다. 한전 집들이 집회에 함께 하기 위해 밀양에서 출발한 버스 한 대가 이어 도착하면서 시작한 집들이 집회에서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은 폭력적으로 공사를 강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재산과 건강상 피해에 대해 조사하고 대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부디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한전에 전할 집들이 선물로 마늘과 쑥갓을 준비한 주민들, 그러나 선물을 전하기도 전에 경찰병력이 막아섭니다. 그렇게 몇 시간, 빗방울이 눈발로 바뀌어 휘날리는 가운데 몇 시간을 싸워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어느덧 어둑해진 시간, 집회 중 연행된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72시간 함께 했던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어요. 손잡고 끌어안고 토닥이며 무어라고 딱 말로 담기는 어렵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그런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72시간 송년회의 순간들을 돌아보니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그 언제보다도 든든함과 뿌듯함으로 꽉 찼던 시간이었어요. 2012년 한 달 여간 진행된 생명평화대행진에 함께 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었는데, 이번 밀양과 청도 주민들의 특별한 여정을 함께 준비하고 동행하는 행운(?)이 제게 주어졌던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삶터에서 일터에서 ‘사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함께 만든 72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다진 연대와 저항의 약속을 저 또한 깊이깊이 새기며 행동으로 이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