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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누구의 주머니를 털 것인가

소득재분배를 위한 조세정책, 복지정책 논의해야

정부는 추석연휴가 끝난 9월 11일과 12일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안전행정부는 합동작전을 하듯이 담뱃값 인상, 주민세 인상 등 서민증세를 위한 법 개정안을 줄줄이 내놓았다. 그럼에도 담뱃값 2000원 인상으로 2조 8000억 원의 세수를 거둬들이면서 주말을 끼어서 고작 4일간 의견수렴을 받았다. 국민의 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태도다. 최경환 기재부장관은 인사청문회 때 담뱃값 인상안에 대해서 “다만, 담배세 인상폭 및 재원배분 방안 등에 대해서는 서민부담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그건 후보자 시절의 립서비스일 뿐이었나 보다. 

왜 담뱃값 인상인가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담뱃값 인상으로부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담배가 ‘건강위해 소비재’라는 일종의 낙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담뱃값 인상은 시민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종합적 금연대책으로 가격만이 아니라 흡연경고그림 등 비가격요소도 같이 내놓았다. 

그 외에도 정부는 통계 조작으로 담뱃값 인상 근거를 만들었다. 지난 7월 2일 복지부가 발표한 OECD 건강지표에 따르면 보건의료비 결정요인으로 흡연, 음주, 비만을 뽑아 분석했는데, 한국의 음주, 흡연 지표는 OECD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5세 이상 흡연인구 비율의 경우 21.6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복지부가 이번 금연 종합대책을 세우면 사용한 것은 평균보다 높은 ‘15세 이상 남성 흡연인구비율(37.6)’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정작 OECD 건강지표 중 OECD 평균보다 격차가 2배 이상을 벗어나서 건강정책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자살에 의한 사망률’이나 ‘국민의료비 중 가계비 지출비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따라서 담뱃값 인상 배경은 국민건강 증진이라 보기 어렵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담뱃세 인상으로 생긴 것은 다른 용도로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조차 현실과 다르다. 담배를 사면 담배가격의 14.2%는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이 중 1.2%만 금연사업에 사용할 뿐이다. 2003~2005년에 건강증진기금의 95% 정도가 건강보험 지원에 쓰였다. 지난해에도 기금 총 예산의 49%에 해당하는 1조 198억 원이 건강보험 재원으로 쓰였다. 건강복지를 위한 적극적 재정계획 없이 서민호주머니 털어 재정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2011년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소에 관한 리우 정치 선언’에도 명시되었듯이 “양질의 건강은 보편적‧ 종합적 ‧형평적‧ 효과적‧ 대응적‧ 그리고 접근이 가능한 실질적인 건강 체계를 필요”로 한다. 즉, 건강한 삶은 위한 재원 마련도 형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게다가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금연효과가 높은 가격대는 6500원 이상이었으나 4500원으로 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담배가격이 4500원일 경우 담배세수가 가장 커진다는 결과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인상의 목적은 금연권장이 아니라 세수 마련인 셈이다.

서민증세, 부자감세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서도 이번 담뱃세 인상에 분노하는 까닭은 국민건강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손쉽게 간접세로 세수를 확대하는 ‘서민증세’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9일 국세청이 발간하는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세입은 190조 200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1조 9000억원 감소했다.(소득세는 2조원 증가, 법인세는 2조원 감소) 줄어든 세입을 서민증세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시기 기재부가 9월 12일 입법예고한 '상속세 및 증여세·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따르면 설립된 지 30년이 넘는 명문장수기업은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때 가업상속공제 한도(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한도)가 1000억 원(현행 500억 원)까지로 확대된다. 그리고 상속을 받는 자녀가 직전 2년 동안 해당 기업에 근무해야 한다는 제한도 없앴다. 가업상속을 위해 주식을 증여할 때 내는 세금에 낮은 세율을 매기는 과세특례(일반 증여세율보다 낮은 세율)인, 10~20%을 적용하는 한도도 지난 달 현행 3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확대하더니 이번에 200억 원으로 2배나 확대했다. 서민의 세금부담은 늘리면서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은 감면하고 있다.

직접세인 소득세나 법인세는 개인의 소득이나 기업의 이익 수준에 따라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고소득층·대기업일수록 부담이 더 커진다. 이명박 정부시절부터 직접세인 소득세나 법인세를 인하하는 부자감세 정책을 펼쳤다. 두 번에 걸쳐 종합부동산세를 인하는 세수 감소 효과는 5년 간 63조 8000억 원에 달했다. 그뿐 아니라 2008년 세법개정으로 소득세율을 2% 인하했고 법인세율을 3~5% 인하했을 뿐 아니라 과표구간도 조정해 현재 2억 원 이하(10%), 2억~200억 원 이하(20%), 200억 초과(22%)이다. 그런데 비과세 감면이 많아 실효세율(법정부담율이 아닌 실제 세부담율)은 이에 못 미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억 원 초과 기업의 실효세율은 17.9%에 불과했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과표 5000억 원 초과 기업 60개사의 평균 실효세율은 17.1%로 더 낮았다. 2013년 정기국회에서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의 기재부 제출자료 분석을 보면,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국내 10대그룹의 공제ㆍ감면 혜택이 10조6000억 원이다.정부가 기업의 돈주머니를 채워주느라 동난 국가재정을 서민호주머니에 빼간다고 할 만하다. 

소득세의 경우 최근 2~3년 사이에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과표구간을 3억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낮추고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4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낮추는 등 부분적 증세를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민주화는 저리가라? 

조세징수체계와 사용처, 즉 조세정책은 그 나라의 정치방향, 누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가를 말해준다. 근대혁명인 1789년의 프랑스혁명 때 만들어진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도 조세조항이 있다. ‘13조 공공무력 유지를 위해, 그리고 행정의 제 비용을 위해 일반적인 조세는 불가결하다. 이는 모든 시민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되어, 조세가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위한 경제적 토대라는 점과 평등성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조세 징수는 능력과 처지의 차이에 따른 부담의 차이를 인정하여 소득재분배 효과를 이뤄야 한다. 실제 기업활동을 위해 기업은 국가가 만든 사회간접자본(도로, 항만, 토지개량 등)을 많이 사용하기에 대기업이 조세 형식으로 부담하도록 해야 공평하다. 또한 조세부담의 공평성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더 큰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더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조세를 통해 노동소득이나 자본소득의 격차를 완화하고 빈곤율을 낮추는 분배적 정의가 이루어질 때 그 사회는 건강하다. 종합소득세와 법인세를 비롯한 직접세의 누진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은 소득재분배만이 아니라 독점을 억제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주민세는 직접세인 지방세이지만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세대주에게 동일한 액수로 일괄 부과되기 때문에 서민에게 더 부담이 될 뿐 소득재분배와 거리가 멀다. 

지난 8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경우,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지니계수0.03포인트)가 OECD 국가 중 칠레(0.02포인트) 다음으로 낮았다. 기업이나 고소득자에 대한 비과세‧ 감면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소득공제 전체 규모 중 상위 20%가 32.9%를, 하위 20%는 10.2% 공제를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즈니스 프랜드리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를 통해 국가재정규모를 축소한 것은 일관성이 있다. 그에 비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건 박근혜 정부가 서민증세와 부자감세이라는 조세정책을 취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인 헌법 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가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내건 기치만 다를 뿐 실제 국정운영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다르지 않음을 서민증세와 부자감세는 보여준다.


조세불평등 심화

소득재분배는 공적연금, 실업급여, 기초생보 현금급여 등을 통한 공적이전과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를 각출하는 사회보장기여금, 직접세를 통해 이뤄진다. 현재 한국은 공적이전를 통한 재분배는 크지 않다. 김진욱의 ‘한국 소득이전 제도의 소득불평등 및 빈곤감소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직접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은 오히려 저소득층에게는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 누진적인 직접세는 국가재정을 노동시장 진입이 어렵거나 임금이 낮은 노인,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의 복지비용으로 사용하여 빈곤율을 완화시킨다. 또한 피케티의 주장처럼 부유세 등의 조세정책은 재력가 집안에서 태어났느냐 여부로 소득과 삶의 수준이 결정되는 세습자본주의를 피할 수 있다. 

개별소비세는 담뱃값을 올리기 위해 새로 추가한 세목이다. 하지만 개별소비세는 사치성 물품의 소비억제를 위해 도입된 특별소비세가 2008년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서민이 주로 소비하는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은 조세 성격에 맞지 않는다. 또한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넣음으로써 서민들이 내야할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납세자를 차별하거나 경제적 능력에 따라 평등한 조세부담을 해야 한다는 조세평등주의에도 어긋난다. 담배 가격이 2000원이 오르게 되면, 하루 한 갑 피우는 사람이 내는 세금은 121만 1070원으로, 연봉 5000만 원 봉급자의 연간 소득세와 같으며, 기준시가 6억8301만 원짜리 주택 소유자가 내는 재산세와도 같다. 결국 담뱃값 인상으로 미약하게 있던 소득세를 통한 조세재분배가 간접세인 담뱃세로 무색해지게 된다. 

가렴주구에 맞서 소득재분배를 위한 조세정책, 복지정책 논의해야

담뱃값 인상, 주민세 인상 등 깨알 같은 서민증세는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쥐어짜는, 21세기 가렴주구이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경제‧사회영역에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교육·의료·복지 등 사회 공공서비스 영역마저도 민영화로 민간에 팔아버리고, 감세를 통한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를 보장한다. 하지만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현상이 발생하거나 경제위기로 국가재정이 부족할 때 많은 국가에서 증세와 복지축소 중에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서고, 그것은 정치적 공론의 장을 거치며 결정된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국가인 미국만이 아니라 2008 금융경제위기 이후 유럽에서도 감세냐, 복지확대냐는 주요한 정치적 쟁점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런 논란을 피하고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꼼수로 헤쳐 나가려 한다. 조세라는 공공적 제도와 정책에 대한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의 주류 기득권 세력이 철저하게 탐욕적인 방식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국가기구나 공공적 제도를 사익을 위해 이용해왔던, (겉으로는 경제성장이니 신자유주의정책이니 할지라도!) 도둑정치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재정규모 상 계속 꼼수를 펼 수는 없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가 표방한 복지정책을 조금이라도 실현하려면 꼼수로는 불가능하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를 내세웠지만 재원마련 계획이 없어 출범 때부터 공허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복지확대를 위해 1970년대에 소득세 인상 등 증세를 꾸준하게 했다. 소득세만이 아니라 기업이 고용할 때마다 복지재정을 부담하게 했다. 또 조세의 누진도가 크고 보편적 복지를 갖춘 프랑스나 독일은 소득재분배 개선 기여도가 40%가 넘는다. 한국의 소득분배 개선기여도는 7.7%로 28개 국가 중 27위이다. 이렇게 낮은 이유는 사회복지지출이 낮고 조세의 재분배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조세정책은 그동안 개발독재시기를 거치며 수출기업에 대한 우대정책을 비롯한 대기업에 대한 지나친 감세정책을 했다. 

정부의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서민증세 추진을 계기로 조세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이러한 여론을 바탕으로 조세정책의 방향을 근본적 전환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 이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조세정책이 아니라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와 복지 확대라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