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잘된 한국영화를 본 사람들은 항상 ‘한’을 이야기한다. “정말 잘된 영화야! 외국사람들은 ‘한’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절대 이해 못할걸! 슬픔, 분노···어떤 언어로도 표현이 잘 안되잖아!”
이렇게 ‘한’을 껴안고 사는 우리건만, ‘한의 치유’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사는가? 그것은 항상 거적에 덮인 채로 음지에서 썩고 떨어야만 하는 것일까?
치유를 거절하는 음지의 ‘한’에 대해 팔을 걷어 부친 사람들을 찾아가 본다. 40여년을 쉬쉬하다가 어느 날 매스컴에 방방 거리다가 슬그머니 우리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간 이름, 정신대! 그 역사적 상처와 현재의 피해자들을 돌보고 정의의 이름으로 역사에 새 간판을 달고자하는 「정대협」은 <여성평화의 집>에 위치하고 있다. 조그마한 지하 구석방에서 간사 2인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주한 다리가 웬지 무심해 보인다.
그간 「정대협」이 해온 일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를 먼저 살펴본다. 자료발굴사업도 그저 그렇고, 열심히 매달려 연구하는 학자도 별로 없고, 국회에서의 대정부요구도 미미하고, 정부는 배상 안받아도 괜찮다고 하고, 한마디로 뒷짐지고 팔짱 낀 자세다.
이는 오히려 일본의 자세와 반대되는 경향인데, 일본정부는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이지만, 정신대 문제에 대해 조상들의 잘못을 밝히자는 운동이 일본열도의 이 마을 저 마을 작은 단위까지 확산되는 크고 작은 흐름이 존재한다.
중‧고생의 수학여행이나 노조자치모임, 교사모임 등이 우리나라에 와서 피해사례답사와 그에 대한 교육을 「정대협」에 요청하는 일도 있고, 일본 사회당에서도 정신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에 진상규명 등의 문제제기를 했지만 당사국인 우리 정부의 반응이 없어 무색해진 일도 있다. 이런 점이 일본의 극히 일부분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더라도 왠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뀐 느낌이 든다. ‘우리’의 경우 ‘과거는 묻어버리자’는 정서가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정신대 문제를 ‘성’과 연결된 ‘수치심’으로 왜곡시키는 태도 등이 문제의 발전을 어렵게 했고, 뉴스의 초점이 됐을 당시에는 여러 대학의 총여학생회에서 정신대 문제 강연회나 좌담회를 앞다투어 개최했지만 그런 관심이 사회 전반적으로 후퇴했고, 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 등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대협」이 걸어온 길은 다음과 같다.
종교계(교회여성연합회 등), 연구모임(정신대연구회 등), 사회운동조직(여성운동연합 등)이 결합하여 19개 단체를 회원으로 하여 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만들었다. 조직구성은 최고의결기구인 대표자회의를 필두로 공동대표 3인(이효재, 윤정옥, 김희원), 실행위원회(13명), 총무 1명과 상근간사 2명으로 되어 있다. 「정대협」이 첫발을 내디딘 90년은 정신대 문제가 밝혀지면서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해였고,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과 더불어 신고센터가 개설되어 많은 사례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이에 「정대협」이 내건 목표는 7개항으로 ‘정신대 문제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범죄인정, 일본정부의 공식사과, 추모비 건립,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배상, 역사교과서에 기록하고 가르치는 것, 전범을 처벌하는 것이다.
91년에는 일본정부의 범죄성이 여실히 폭로되었고 92년에는 일본정부의 1차 공식보고서가 발표되고, UN 제소, 아시아 연대회의 결성, 정신대 할머니 생활기금 모금 국민운동본부 출범, 정부의 생활보호조치법안 시행 등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93년엔 일본정부의 2차 보고서가 나왔고 「정대협」은 책임자 처벌요구를 목표에 추가했다. 94년 현재에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고소‧고발장을 제출했으나 거부당한 바 있다. 고소‧고발장을 제출한 이유는 보상에 대신하는 조치로 얼버무리려는 일본정부에 대해 ‘전쟁범죄’를 인정하게 하고 국제법에 따른 법적 배상을 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런 활동을 크게 나눠보면,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수집과 연구활동, 홍보와 출판활동, 국제연대 활동, 일본정부에 대한 활동, 한국정부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활동, 피해자를 위한 지원활동 등인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진상규명활동은 올해 총독부 관련 자료발굴 사업을 중점적으로 벌일 계획이나 국내 학자들의 적극적 활동이 아쉬운 형편이다. 출판활동은 정대협 활동 소식이 격월간으로, 정신대 자료집이 4집까지 나온 바 있으며, 올해도 2권의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 중 주목할 부분은 국제연대 활동인데 오히려 국내에서의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보다 더 활발하다. 세계적 정서가 ‘한 국가가 이런 일을 제도적으로 입안하고 국가 공권력으로 강제시행 했다’는 데 대해 놀람과 분노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아시아연대(필리핀, 타이, 일본, 타일랜드, 홍콩, 인도네시아), 북미연대(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 시카고, 캐나다)와 일본에 3개 단체가 정신대 문제에 공동참여하고 있다. 국제활동을 통해서 북한과의 연대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바 있다.
「정대협」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하루는 정신대 할머니들과의 전화통화와 만남, 자료정리 등으로 채워지고, 일주일은 ‘수요시위’룰 준비하느라 채워진다. 92년 미야자와 일본 수상의 방한 때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수요시위는 많은 대중들이 참여하는 상징적인 행사로 굳어졌다.
앞에서도 정신대 문제에 대해 실종된 ‘우리’의 노력을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정대협」이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역사를 바로 알고자 하고, 바로 잡고자 하는 노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 민족자존과 민족정기의 회복이라는 것을 자기 일의 중심에 두고 생활하자는 것이다.
정신대 문제 진상규명,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 책임자 처벌, 국제법에 의한 배상 - 「정대협」이 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한 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