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5가를 걷노라면 어깨를 끼고 노래하고 외치며 종로로 진출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로에서 시작된 행렬이 종로 5가로 접어드는 좁은 길에 들어설 때면 창문을 두드리며 피켓을 들고 함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기독교회관 7층에서 농성을 하는 양심선언자나 양심수의 가족들이거나 했던 그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오래 기다리던 비를 맞는 사람들의 탄성과 같이 메아리치곤 했다. 그렇게 항상 시대의 고통과 억울한 사연을 안고 찾아드는 사람들에게 피난처와 싸움의 자리를 제공했던 곳이 바로 기독교회관 7층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이하 한교협인권위)이다.
한교협은 6개 교파(성공회‧구세군‧감리교‧기독교장로회‧예수교장로회‧복음교회) 1만2천여 교회로 이루어져 있는 조직이다. 의결기구로써 총회가 있고 실행위원회와 18개 위원회로 이루어져 있는데 18개 위원회 중에 특별위원회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인권위원회이다. 한교협이 24년에 생겼고, 인권위원회는 74년에 만들어져 올해 2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인권위에는 회장(오충일 목사),사무국장(김경남 목사), 사무국( 황필규 목사, 강해영 간사)과 광주, 군산, 대구 등 전국에 10개의 지역인권위원회를 두고 있다. 각 지역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위원은 전국적으로 6백여 명에 이른다.
한교협 인권위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은 말 그대로 깜깜한 ‘밤’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 삼선개헌, 민청학련사건 등 입을 열기에도 귀를 기울이기에도 모든 것이 두렵고 막힌 상황이었다. 이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강물같이 펼친다는 성서적 입장 속에서 사회정의를 외치고 실천할 권리를 보호하는 ‘도피성’, ‘성역’의 역할을 하고자 인권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인권위원회와 역사를 같이하는 대명사 ‘목요기도회’는 엄격한 언론통제의 상황 속에서 재야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이었고 인권침해사례가 호소되고 논의되는 장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함석헌 등 70-80년대 당시 대표적 인사들이 함께 자리하기도 했었다. 또 하나 인권상황에 대해선 ‘호외’라 할 수 있는 <인권소식>이 매주 발행되어 성명서와 농성소식, 양심선언 등 당시로선 어느 매체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소식들로 많은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그 <인권소식>이 92년 3월부터는 민주사회를 향한 인권전문지를 선언한 <월간 인권>이다.
목요기도회를 마치고 거리로 나서면 으레 연행되어 별을 달게 된 수많은 목사님들, 경찰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성역이었기에 농성자들과 양심선언자들의 발길에 문턱이 없던 곳, 반정부투쟁과 인권옹호가 하나였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사건들의 목격자이고 당사자이고 해결사였던 곳, 그래서 인권운동의 대명사격으로 자리잡았던 이름...... 그만큼 현재의 고민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각 운동단체들이 많이 전문화되고 자기고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과거에 밀려들고 갑자기 터지는 사업들을 뒷바라지하던 데서 벗어나서 사업의 선명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한교협 인권위의 토대를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 되야 한다고 본다. 과거 인권운동을 하는 목사라면 빨갱이로 치부되고 구속 등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전 교인을 이끌고 나가는 싸움보다는 독자적이고 즉각적인 결단을 내려야 했던 상황이 목회자로 하여금 홀로 십자가를 지는 활동을 하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의 예언자로서 활동하는 목회자 개인의 운동이 아니라 교인 전부의 운동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각 지역인권위를 중심으로 인권강좌 등을 개설하고 의식과 활동을 공유하는 작업등을 계획하고 있다. 70-80년대의 한교협 인권위의 활동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기대와 비판에 부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지만 목회자의 운동에서 전교인의 운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한교협 인권위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교회협의회(CCA), 미국(NCC USA), 일본(NCCJ)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정보와 지원을 받았던 일들이 큰 힘이 되었던 만큼 국제연대활동의 질과 양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세째, 현재 한교협 인권위의 고정적인 사업으로는 6월의 인권선교정책협의회, 12월의 인권주일 행사, 재소자 겨울나기사업, 일상적인 양심수‧장기수후원사업 등이 있는데 이것뿐만 아니라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사업들( 재일 동포 인권문제와 러시아 타슈켄트 해외동포문제, 사형제도폐지운동 등)에 힘을 모을 생각이다. 한교협에는 인권위원회말고도 특별위원회로써 여성위원회, 노동자‧농민 선교위원회(URM)가 있어 여성, 노동자, 농민인권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이 문제에 전념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007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숨막히게 전개했던 빛의 구실로써의 무용담(?)을 많이 듣고 싶었지만 그 주역이었던 분들은 하얀 머리에 굵은 눈썹을 자랑하며 사무실을 바쁘게 누비고 계셨다. 그분들에게 묻혀져 있는 고난의 이야기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농성자들과 함께 먹고 잘 때, 인간이 살아가는 것 같이 살아간다고 느껴지는 사람들과 고난을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올 때 가장 큰 위로와 보람이 된다는 목사님의 얘기 속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에 넘쳐흐르기 전까지 한교협 인권위원회가 꿋꿋하게 존재할 것과 이 일에 함께 하는 인권단체들이 서로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관계 속에서 함께 발전하고자 하는 소망이 묻어 있다.
<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
- 136호
- 류은숙
- 1994-04-02